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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손잡고》에서 K팝 현지화 그룹 탄생까지

K팝(K-pop)이란 명칭을 누가 처음 무슨 목적으로 쓰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유력한 설이 있을 뿐 정답은 없다. 다만 K팝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된 맥락을 추적해볼 수는 있다.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한국 대중음악은 한국을 넘어 세계로 나가기 시작했다. ‘H.O.T.’ ‘S.E.S.’ ‘클론’ ‘NRG’ 같은 팀들이 중화권과 일본에서 인기를 모으며 ‘한류’라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국제무대에서 활동했던 한국계 가수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가왕’ 조용필은 1980년대 중반 일본에 진출해 나름의 성과를 거뒀고 계은숙, 김연자, 나미 등도 일본에서 한국 가수의 저력을 확인시켜줬다. 물론 일본 음악인 엔카를 내세워 일본 시장에서 거둔 성공을 가요의 세계화라 말하기엔 부족한 느낌이 있겠지만 당시 보잘것없던 한국 대중음악의 위상이나 열악한 산업의 크기를 감안한다면 어쨌든 선구적인 업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SM엔터테인먼트가 탄생시킨 영국 보이그룹 ‘디어 앨리스(DEAR ALICE)’가 8월1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소호 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덱스터 그린우드, 제임스 샤프, 블레이즈 눈, 올리버 퀸, 리스 카터 ⓒ연합뉴스

최초의 글로벌 K팝 《Hand in Hand》

서구 음악시장으로 눈을 돌려보자면 유일하게 세계무대에 족적을 남긴 팀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불멸의 주제곡 《손에 손잡고(Hand in Hand)》를 불렀던 교포 그룹 코리아나다. 1960년대에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하던 가족 음악가들이 1970년대 말 스위스로 본거지를 옮겨 ‘아리랑 싱어즈’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이게 코리아나의 전신이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차트에서 나름의 명성을 쌓은 이들은 1988년 올림픽의 주제곡 《손에 손잡고》로 커리어의 정점을 찍는다.

당대 미국 최고의 작곡가 중 한 명이었던 조르조 모로더가 빚어낸 아름다운 선율과 작사가 톰 위트록의 가사가 어울린 이 곡은(참고로 이 두 사람은 영화 《탑건》의 주제곡인 《Take My Breath Away》와 《Danger Zone》을 만든 콤비기도 하다) 비공식 기록이지만 유럽과 아시아를 중심으로 천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고 전해지며, 역대 올림픽 최고의 곡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정작 이 곡이 K팝의 역사에 끼친 중요한 영향에 대해서는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손에 손잡고》는 단순히 올림픽 테마곡이 아니라 당시 한국이 갖고 있던 세계화에 대한 의지와 포부가 그대로 담겨 있는 곡이었다. 세계적인 작사·작곡가의 손에서 탄생했고, 세계무대에서 활동했던 교포 뮤지션들에 의해 녹음되어 전 세계가 보는 무대를 통해 공연됐다. 한국계 뮤지션이 부른 곡으로는 최초로 세계 음악 차트에서 정상에 올랐는가 하면, 담은 메시지마저도 평화와 화합에 관한 것으로 대단히 글로벌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같은 문구를 지금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K팝에 대입해 봐도 아무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K팝이라는 장르 혹은 산업이 오랫동안 품어왔던 어떤 글로벌한 지향과 포부가 이미 1988년 《손에 손잡고》를 통해 싹텄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1988년을 기점으로 오늘날까지 K팝이 걸어온 지난 36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결국 세계화에 대한 포부가 어떤 전략을 통해 구현돼 왔는지에 관한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을 음악 산업에서는 ‘현지화 전략’이라 부르기도 한다. ‘현지화’는 보통 서구(혹은 미국의) 자본주의 문명이 세계화의 물결을 통해 전 세계를 지배하는 과정에서 취한 산업적 전략의 하나로 로컬리제이션 혹은 글로컬리제이션이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언어, 문화, 인종이 다른 세계인들에게 어떻게 그들의 문화를 적절하게 변형해 효과적으로 팔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의 결과인 셈이다.

그런데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어떻게 대중음악의 세계화를 처음부터 꿈꾸게 되었는지 그 욕망의 근원을 콕 집어 말하긴 어렵다. 비좁은 내수시장의 한계를 돌파하고자 하는 의지, 일본을 비롯한 해외문화 개방과 유입 과정에서의 자연스러운 역수출, 팝 음악을 듣고 자란 1세대 K팝 제작자들의 자기실현 및 사업적 욕망 같은 것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졌을 것이다.

어쨌든 1990년대를 지나며 한국 대중음악은 자연스럽게 더 큰 시장들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2000년대 초반 일본 시장에서 보아가 거둔 역사적 성공은 그 전략의 유효성을 증명한 사례이기도 했다. 이에 발맞춰 ‘가요’로 불렸던 한국 대중음악은 자연스럽게 K팝으로 바뀌기 시작했는데 이 같은 뉘앙스의 변화는 결코 우연이라 볼 수 없다.

하이브의 북미 걸그룹 ‘캣츠아이’ ⓒ하이브 제공

K팝 현지화 전략의 마지막 단계는?

2000년대 중반 이후 본격적인 2세대 K팝의 시대가 열리면서 K팝의 현지화 전략은 산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그간 K팝 그룹의 현지화는 보통 언어적인 부분과 국적·민족적인 부분에 집중돼 왔는데, 이는 민족국가 단위로 나뉘어 100년 이상 지속해온 음악 산업에서 그것도 비주류 음악인 K팝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를 타파하는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미국과 일본 같은 상위 시장을 효과적으로 공략하려는 의도였다.

태국 출신 멤버인 리사의 존재감이 블랙핑크를 태국에서 국민 그룹 수준의 인지도를 확보하도록 만든다든지, 일본인 멤버를 세 명이나 보유한 트와이스가 일본 시장에서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리는 것과 같이 K팝은 현지인(외국인) 혹은 해외교포를 활용한 전략을 발판으로 K팝이 갖고 있는 로컬의 한계를 극복해낼 수 있었다.

이는 뉴진스와 같은 글로벌한 미학적 취향을 가진 걸그룹의 탄생으로까지 이어진다. 이 논리대로라면 K팝의 현지화 전략은 결국 현지인 혹은 외국인들로 이루어진 K팝 그룹의 탄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고, 그것이 우리가 현재 목도하고 있는 K팝의 마지막 발전 단계일 가능성이 크다.

SM이 최근 론칭을 발표한 영국 그룹 ‘디어 앨리스(DEAR ALICE)’나 하이브의 북미 걸그룹 ‘캣츠아이(KATSEYE)’는 대중음악 역사에서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는, 궁극의 ‘무국경(borderless)’ 팝 음악에 대한 K팝만의 솔루션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한국인’ 혹은 ‘한국어’가 아닌 한국의 ‘원천기술’을 활용해 K팝이라는 산업을 정의하겠다는 의미다. 즉, 어느 누가 어떤 장르의 음악을 하든 그것이 K팝의 훈련생 기술과 미학적 기준을 통해 구현되는 한 그것은 범K팝으로 정의될 것이라는 생각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로컬 장르가 세계로 퍼진 힙합의 경우나, 로컬 음악 장르를 세계화해 해외에 수출한 보사노바의 경우와도 다르다. 정확히는 ‘한국성’의 근거가 애매한 한국 음악, 심지어 한국인이 참여하지 않는 한국 음악의 시대가 이제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건 그게 정말 K팝인가 하는 철학적인 질문에만 머무르기보다 이제 ‘K’가 희미해져 가는 K팝 시장 혹은 글로벌 팝 시장에서 한국은 무엇을 근거로 그 주도권과 우위를 점유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될 것이다. K팝의 진짜 기회 혹은 위기는 바로 이 시점에 논의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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