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문학훈 오산대 미래전기자동차과 교수
“전기차 화재, 모든 게 배터리 문제 때문만은 아냐…하부 스프링클러 구축도 필요”
8월1일 인천 청라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있던 벤츠 전기차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후 차량은 폭발했고 이 화재로 차량 140여 대가 불타거나 그을렸다. 단전·단수로 수백 명의 주민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국내 최대 피해가 난 전기차 화재로 기록된 이 사고로 인해 전기차에 대한 불안과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8월7일 시사저널과 만난 문학훈 오산대 미래전기자동차과 교수는 “이번 화재의 양상을 봤을 때 원인은 배터리 결함일 가능성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추정했다. 해당 벤츠 전기차엔 중국 업체 파라시스의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가 탑재됐다. 그는 “중국 업체들의 NCM 배터리 개발 역사가 길지 않아 품질을 보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문 교수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전기차 관련 시설 재정비와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충전 구역에 전기차를 주차해야 하고 해당 구역엔 포켓형 시설과 하부 스프링클러 등을 구축해 화재 진압이 용이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전기차 차주들도 배터리 충전량을 100%가 아닌 80~90%로 낮게 설정하는 등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인천 청라 전기차 화재의 원인은 무엇이라 보는가.
“이번 화재는 배터리 내부 단락(쇼트)이 원인으로 보인다. 배터리 셀 사이에는 양극재와 음극재를 분리하는 분리막이 들어간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인해 하나의 셀 분리막이 손상돼 양극재와 음극재가 접촉하는 쇼트 현상이 발생했고, 불이 다른 배터리 셀로 옮겨붙으면서 순식간에 열이 치솟는 ‘열 폭주’가 일어난 것이라 보고 있다.”
해당 차량은 충전을 하고 있지 않은 채 59시간 주차돼 있던 상황이었다.
“충전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진동이나 외부 열에 의해 배터리 셀 내부는 미세한 화학작용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리튬 이온이 양극과 음극을 오갈 때 음극 표면에 쌓이는 가지 모양의 결정체인 덴드라이트가 만들어진다. 이 결정체가 분리막을 뚫고 양극에 닿으면 내부 단락이 발생하고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사고도 이런 화학작용이 한계점을 넘어서면서 발생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벤츠 전기차에 장착된 배터리가 중국의 파라시스 제품으로 확인됐다. 해당 기업의 위상과 기술력 수준은?
“2009년 설립된 해당 기업은 배터리 생산량으로 보면 글로벌 8위 수준이다. 매출 규모도 3조원 정도 되는 작지 않은 회사다. 특히 벤츠는 파라시스와 협력 관계에 있다. 2018년 벤츠 모회사인 다임러는 파라시스와 10년간 170GWh(기가와트시) 규모의 배터리 공급 계약을 맺었다. 중국 지리자동차의 리슈푸 회장이 소유한 투자회사 TPIL이 벤츠의 최대주주에 오른 해이기도 하다. 2020년엔 벤츠가 아예 파라시스 지분 3%를 확보했다. 이번 화재 차량의 배터리는 파라시스 NCM(니켈·코발트·망간) 모델인데 중국 업체들이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에 비해 NCM 배터리 개발 역사가 길지 않아 품질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게 내 판단이다.”
8월6일엔 충남 금산에서도 전기차 화재가 발생했다.
“주차타워에서 충전 중인 차량에서 불이 났는데 해당 화재는 청라 사고와는 원인이 다르다고 판단한다. 청라 화재처럼 배터리에 문제가 있을 경우 하얀 연기가 먼저 피어나고 펑 소리와 함께 불꽃이 나는 증상을 보인다. 화성 일차전지 공장 화재 당시 첫 발화 모습을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금산 사고는 연기는 보이지 않고 빨간 화염만 보인다. 이는 배터리에서 모터로 전기를 공급하는 전압선 등의 전기적 합선에 의한 화재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여기에 견인차를 이용해 화재 차량을 밖으로 끌어낸 후 질식포를 덮어 진화했는데 배터리 문제였다면 차를 꺼내지도 못한다. 전기차 화재라고 전부 배터리가 원인이라고 해석해선 안 된다.”
전기차 화재가 반복되면서 차세대 배터리인 전고체 배터리가 주목받고 있다.
“인화성 액체 전해질을 고체로 대체하는 전고체 배터리는 배터리 폭발과 화재 위험성을 줄이면서도 에너지 밀도를 크게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고체 배터리로 가야 되는 건 당연하지만 성능 시험, 품질 안정화 등 상용화까지는 아직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삼성SDI가 2027년 전고체 배터리 양산을 목표로 고객사를 대상으로 샘플 공급에 나서는 등 속도를 내고 있고,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도 개발 중에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번 화재로 인해 전기차 시장이 상당 기간 위축되는 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기차 차주들의 불안도 날로 커지고 있다.
“많은 전기차 차주들이 모르는 내용인데, 배터리 충전량을 설정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그래서 급속 충전 같은 경우엔 80%로, 완속 충전은 90% 정도로 설정해 놓으면 배터리로 인한 화재 발생 위험을 낮출 수 있다. 아울러 주행 중에도 신경 써야 한다. 주행 중에 전기차 화재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차체 하부에 있는 배터리에 충격이 가해져 발생한 결과다. 배터리는 진동, 온도 등에 상당히 민감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때문에 과속 방지턱을 지나갈 때 신경 써서 운전하는 등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내연기관차와 달리 전기차는 관리해야 하는 포인트가 상당히 많다.”
전기차 충전기 설치 위치에 대한 갑론을박도 펼쳐지는 상황인데.
“현행법상 100세대 이상 신축 아파트는 총 주차면 수의 5% 이상, 기존에 지어진 아파트는 2% 이상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해야 한다. 다만 지상이든 지하든 설치 장소는 무관하다. 하지만 이젠 지상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지하주차장에서 화재가 났을 경우 화염이 빠져나갈 곳이 없고 더 큰 위험은 소방차가 진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일부 아파트에선 전기차의 지하주차장 진입을 금지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정부에서 지원금까지 지급하며 전기차 확대에 나서고 있지만 전기차 차주들은 졸지에 죄인 취급을 받고 있다. 그러나 강제로 진입을 막는다면 재산권 침해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아울러 현실적으로 요즘 지상주차장을 보유한 아파트가 몇이나 되는가. 이런 상황이라면 전기차는 전기차 충전 구역에만 주차하게 하고 해당 구역은 화재가 나더라도 불이 번지지 않도록 포켓 형태의 시설을 구축해야 한다. 이곳엔 전기차 화재 특성을 고려한 하부 스프링클러 역시 설치해야 한다. 현재의 스프링클러는 마치 우산 위에 물을 붓는 격이다. 관건은 비용이다. 이를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일부 지원을 하고 차주들 역시 부담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주민들 간 갈등 해결이 쉽지 않다.”
이번 사고로 ‘전기차 공포’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모든 전기차는 위험하다’는 인식이 퍼지는 상황은 안타깝다. 실제 화재 사례는 전체 전기차 생산량의 0.025%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100% 안전한 제조물은 없다. 물론 전기차가 한번 화재가 나면 진압이 쉽지 않은 점은 있다. 문제점을 지적하고 팩트는 전달해야 하지만 과도하게 공포심을 조장하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산업 측면에서도 전기차와 배터리는 중요하다. 현재 중요한 것은 정부가 충전기 등 시설 측면에서 보완하고 전기차에 대한 관리법 등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점이다. 전기차 차주들의 경우 전기차에 대한 지식을 익히는 것이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