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관부터 이진숙까지, 방통위 1년 간 49차례 회의 통해 의결한 안건 144건 살펴보니…
모두 ‘2인 체제’로 통과시킨데다 전체 회의 중 61% 서면으로 진행
윤석열 정부 들어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자리가 ‘스쳐가는 권력’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이동관·김홍일 전 위원장은 각각 4개월, 7개월 만에 자진 사퇴하면서 법률 보장 임기인 3년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신임 이진숙 위원장은 사퇴하지 않았지만 임명 하루 만에 탄핵소추안이 발의돼 직무 정지된 상태다. 1년 새 세 번째로 맞이한 수장마저 자리 보전이 불안한 상황이다. 위원장의 잦은 교체 속에 방통위는 그동안 뭘 했을까.
시사저널은 이동관 전 위원장이 취임한 지난해 8월28일부터 이진숙 위원장이 취임한 현재까지 약 1년 동안 위원장을 비롯해 방통위 상임위원이 의결한 안건을 모두 살펴봤다. 해당 기간 안건을 논의한 회의는 총 49차례 열렸다. 여기서 의결한 안건은 모두 144건이다. 매주 약 2.7건의 안건을 통과시킨 셈이다.
비공개 안건, 이동관 전 위원장 12건으로 최다
통과 안건 144건 가운데 회의록을 비공개한 것은 18건이다. 이 중에는 공영방송 현안과 맞물려 민감한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주로 한국방송공사(KBS)∙한국교육방송공사(EBS)∙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MBC 대주주) 등의 이사 임명·해임 또는 추천에 관한 안건이었다. 해당 안건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방통위원장을 지명할 때마다 야권에서 반발해 온 공영방송 장악의 의도가 담겨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비공개 안건 18건 중 이동관 전 위원장이 12건, 김홍일 전 위원장이 2건, 이진숙 위원장이 4건을 처리했다.
과정은 비공개에 부쳐졌지만 그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흘러갔다. 이동관 전 위원장은 임기 시작 전 해임된 남영진 전 KBS 이사장과 윤석년 전 이사를 대신할 보궐이사로 서기석 전 헌법재판관과 황근 선문대 교수를 임명했다. 모두 보수 성향 인사들이다. 이로써 여권과 야권이 4대 7이던 KBS 이사진 구도가 6대 5로 역전됐다. 이에 따라 지난해 11월12월 문화일보 논설위원 출신 박민 KBS 사장이 임명됐다. 이후 이 전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이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지난해 11월30일 자진 사퇴했다.
후임으로 임명된 김홍일 전 위원장은 막판에 공영방송 이사진 교체 작업을 진행했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 6월28일 회의를 열고 ‘KBS·EBS·방문진 임원 선임 계획에 관한 건’을 처리했다. 야당이 그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6월27일)한 직후다. 탄핵안이 통과되면 직무가 정지되기 때문에 일정을 급하게 잡았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방통위는 당시 안건 회의록을 공개했다.
회의록에 따르면, 김 전 위원장은 “현재 공영방송 이사 선출 등과 관련된 개정법률안이 국회에서 발의되어 논의되고 있지만 현행법에 따라 공영방송 이사 추천 및 선임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방통위의 당연한 책무라고 생각한다”며 “선임 절차에 대략 4~5주 기간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더 이상 임명 절차를 늦출 수 없다”고 밝혔다. 김 전 위원장은 이사 선임 계획안을 의결한 지 4일 뒤인 7월2일 자진 사퇴했다.
김 전 위원장은 떠났지만 방통위는 그가 의결한 대로 방문진과 KBS·EBS 이사 공모 절차를 실시했다. 이때의 공모 결과는 이진숙 위원장이 7월31일 취임하자마자 방문진과 KBS 이사진 선임을 의결하는 토대가 됐다. 이날 회의록은 모두 비공개 상태다.
비공개 회의록 외에 문제로 지적되는 부분은 또 있다. 지난 1년 간 모든 안건이 위원장과 상임위원의 ‘2인 체제’ 하에서 통과됐다는 점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위원장과 상임위원 등 2인, 국회가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 등 5명의 위원으로 구성하는 게 원칙이다. 위원 2명은 어디까지나 최소 의결 정족수다. 작년 12월 서울고등법원도 위원 2명의 심의·결정과 관련해 “입법 목적 저해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야당 역시 “2인 체제 하에서의 의결 강행”을 이진숙 위원장에 대한 탄핵안 발의의 배경 중 하나로 꼽았다.
"서면 결의 반대하면 대면 회의"…'2인 체제'에선 유명무실
절반이 넘는 회의가 서면으로 진행된 점도 넘겨짚기 힘든 대목이다. 1년 간 개최된 49차례 회의 중 서면회의는 30번(61.2%) 열렸다. 이 중 9번은 이동관 전 위원장이, 21번은 김홍일 전 위원장이 주최했다. 특히 되풀이되는 방송심의 재심안건은 제외하더라도 ‘극동방송의 외국자본 출연 신청 승인 건(2월27일)’ ‘라디오방송국 변경허가 건(5월14일)’ 등 방송사의 주요 경영 방향을 결정하는 안건도 서류 검토로 대체한 점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동관 전 위원장의 경우 사퇴 당일인 작년 11월30일 ‘방송법 등 일부개정 법률안에 대한 재의요구에 관한 건’ 등 8건을 몽땅 서면으로 처리했다.
방통위 회의운영에 관한 규칙 14조에 의하면, 서면 결의하는 안건은 ‘토론을 요하지 않는 일상적·반복적이거나 경미한 안건’과 ‘긴급 처리할 필요가 있는 등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경우’로 제한된다. 위원이 서면 결의에 반대하면 대면 회의로 진행된다는 규정도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2인 체제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규정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