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트라우마센터장의 현장 기록 《트라우마 해방 일지》
“혼자만의 힘으로 트라우마를 이겨낼 수는 없다. 트라우마의 회복과 외상 후 성장은 본인과 주변, 사회가 함께 힘을 모을 때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트라우마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며, 주변의 위로와 지지 속에서 용기를 내어 기억을 다루어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올해로 11년째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을 만나고 있는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이 그간의 기록을 정리한 《트라우마 해방 일지》를 펴냈다. 그는 “트라우마는 소수에게만 찾아오는 특별한 불운이 아니라, 누구나 살면서 한 번 이상 맞닥뜨리게 되는 인생의 불청객”이라며, 직접 당사자들을 마주하며 느낀 생각과 사실을 통해 간접적으로 우리 사회에 ‘처방’을 내려준다.
“‘이런 일은 남의 얘기인 줄만 알았어요.’ 재난 상담을 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해마다 중규모 이상의 재난이 10여 차례 이상, 인명 피해 300명 넘게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재난이 내게도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자주 망각한다. 우리는 안전이라는 착각과 환상을 갖고 살고 있다. 내가 있는 곳이 충분히 안전하고, 위험으로부터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있다는 착각 말이다.”
트라우마에는 갑작스러운 사고와 재난, 범죄, 성폭행, 부고 등 큰 위협의 ‘빅 트라우마’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자주 접하게 되는 사건들도 있다. 학창 시절의 따돌림, 미세한 차별과 모욕, 갈등,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등 ‘스몰 트라우마’라고 분류되는 일상 속의 상처다. 또 우리 사회 전체에 일어난 큰 규모의 사건을 말하는 ‘집단 트라우마’가 있다. 개인이 아닌 공동체에 벌어진 일을 접하고도 우리는 심각한 고통과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느낀다. 트라우마는 당사자들의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심 센터장은 단연코 아니라고 말한다.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트라우마 사건이 첫 번째 화살이라면 두 번째 화살은 자신만의 동굴에서 나와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 맞닥뜨리게 된다. 트라우마는 단순히 고통스러운 기억을 회상하는 것과는 다르다. 당사자에게 트라우마는 ‘지나간’ 기억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생생하게 재생되고 있는 실재다. 그래서 주변에서 말하는 ‘다 끝난 일이잖아. 그만 잊어’라는 위로는 당사자의 마음에 닿지 않는다.”
심 센터장은 어디를 심하게 다치거나 병에 걸려서 증상이 심하면 최대한 안정하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트라우마로 충격을 받은 경우도 이와 똑같다고 설명한다. 충격이 가라앉을 때까지 추가적인 위해를 피하고 심신의 안정을 위해 수면, 식사, 휴식과 같은 자기 돌봄은 필수이고, 주변 사람들은 필요한 것이 없는지 잘 살피고 도와줘야 한다고.
“안전한 환경은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안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믿을 수 있는 사람과 닿아있다면 심리적으로 안전감을 느낄 수 있다. 역경에 처한 사람에게는 곁에서 도와주고 보살펴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지지해 주는 사람과의 연결감은 회복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열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