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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1당론’ 巨野, 50일간 45건 당론 법안 쏟아내…‘탄핵열차’ 시동도
밖으론 ‘협치’ 내부에선 ‘소신’ 원천봉쇄…비쟁점 민생법안들도 ‘올스톱’

제헌절이 지나도록 개원식조차 열지 못할 만큼 모든 게 멈춰버린 22대 국회에서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가동되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압도적 의석수를 가진 더불어민주당의 무더기 ‘당론 발의’다. 민주당은 개원 50일 만에 45개 법안을 당론으로 채택해 발의했다. 거의 하루에 한 건꼴로, 21대 국회 4년간 발의한 당론 법안 수 41개를 이미 뛰어넘었다. 이러한 과속이 설익은 법안을 낳고, 소신과 협치의 공간을 더욱 좁힌다는 지적이 나온다. 거대한 일사불란은 그 그림자도 짙게 드리운다.

22대 국회 첫날인 5월30일부터 7월18일까지 50일 동안 민주당이 제출한 45개 당론 법안 대부분은 여당과 강하게 대치 중인 ‘쟁점 법안’이다(표 참고). 민주당은 법안 발의부터 상임위원회 심사, 본회의 상정까지 속도를 한껏 높이고 있다. 국회 구성상 여당의 ‘제동’은 그 어느 단계에서도 먹히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가 7월2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박찬대 원내대표, 장경태 최고위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당론 법안 중엔 21대 국회에서 여당의 반대와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폐기됐다가 다시 살아난 법안도 상당수다. 대표적으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그리고 ‘선(先)구제 후(後)회수’ 방안을 담은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 등이 있다. 역시나 거부권 정국에서 폐기됐던 ‘방송3법’도 ‘방송정상화4법’이란 이름으로 재발의됐다.

‘탄핵소추안’은 벌써 5개에 이르며(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 검사 4명) 용산 대통령실을 정조준한 특검법안도 2개 발의돼 있다(해병대원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검찰과 감사원, 국정원까지 주요 권력기관 힘 빼기도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지금껏 그래 왔듯 건건마다 여당의 반대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본회의 재표결과 국회 마비 정국이 무한 반복될 것은 불 보듯 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특검·탄핵 달리는 동안 민생은 멈췄다

민주당이 당론 채택에 속도를 내는 데는 여당과의 입법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지지자들에게 윤석열 정부와 ‘잘 싸운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많다. 한 민주당 재선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 국회에서 ‘180석을 몰아줬는데 대체 무엇을 했나’라는 지지자들의 지적이 많았지 않나. 그래서 이번엔 초반부터 확실하게 달리는 것이고 이게 곧 총선 민의라는 게 당의 판단”이라고 진단했다.

여권에서는 민주당이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유도해 정부·여당의 정치적 부담을 키우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고 보고 있다. 170명 의원 모두의 힘이 실린 ‘당론 법안’을 늘리는 것도 이를 거부하는 데 더욱 부담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이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최근 “어차피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걸 알고 거부권 수만 늘리려고 막무가내로 통과시키는 것 아닌가”라고 야당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국민 입장에서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일방통행’식 쟁점 법안 추진이 여야 합의 처리가 충분히 가능한 ‘비쟁점 법안’까지 멈춰 세운다는 점이다. 개원 후 야당의 일방통행과 여당의 보이콧으로 인해 시급한 각종 민생법안 논의는 첫발도 떼지 못하고 있다. 21대 국회에서도 끝까지 밀리고 밀려 폐기된 ‘구하라법’(양육의무를 다하지 않았거나 자녀를 학대한 부모는 자녀 유산을 상속받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과 의료대란 속에 한시가 급한 ‘간호법 제정안’ 역시 발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당론 움직임이 일사불란할수록 민주당 밖에선 소통과 협치, 안에선 소신과 원칙이 설 자리는 좁아들고 있다. 당론의 엄중함과 무게감을 이유로 각각이 헌법기관인 의원들이 ‘반론’을 제기하는 게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최근 당론으로 탄핵소추안이 발의된 검사 4명 중 1명에 대해 기권표를 던진 곽상언 민주당 의원은 일부 동료 의원과 지지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고, 결국 사과와 함께 원내부대표직을 내려놓아야 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민형배, 장경태, 전용기 의원(왼쪽부터)이 7월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 ‘비위 의혹’ 검사 4명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제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거수기가 되거나, 모난 돌이 되거나

당내에서도 ‘당론 정치’가 과도한 게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없진 않다. 일단 당론 추진 과정이 지나치게 빠르고 ‘하향식’이란 지적이 나온다. 예전엔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법안을 충분히 논의한 다음 당론 채택 여부를 결정했다면, 최근엔 ‘선(先) 당론 채택 후(後) 보완 논의’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법안 하나하나에 대한 의원들의 숙의 과정 없이 당론이 무더기로 쏟아지고 있다는 비판도 자연히 이어진다. 실제 의원총회에서 노란봉투법 등 7개 쟁점 법안에 대한 당론 채택이 예고된 7월11일, 민주당 의원들이 모인 단체 채팅방엔 ‘당론의 내용조차 제대로 모르고 투표를 하라는 게 맞느냐’는 항의성 글이 공개적으로 올라오는 일도 있었다. 앞서 6월28일 정책의원총회 자리에서도 “‘당론’이라는 명칭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는 의견이 표출된 바 있다.

당내 불만들이 밖으로 알려지자 황정아 대변인은 “한꺼번에 너무 많은 당론을 채택하는 것 아니냐는 개별 의견이 일부 있었던 건 사실”이라면서도 “대세에 지장이 없고, 충분히 (당내)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 괜찮다”며 진화에 나섰다. 지도부도 ‘당론으로 채택된 법안 내용도 수정할 수 있다’고 달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여전히 ‘당론’이라는 이름하에 의원들은 거수기 역할에 그치고, 모난 돌은 정을 맞는 분위기라는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우려와 지적에도 민주당의 당론 추진에 ‘브레이크’는 당분간 없을 전망이다. 오히려 더 선명한 쟁점 법안들이 ‘당론’ 명찰을 달고 추가로 쏟아질 준비를 하고 있다. 민주당은 조만간 검찰청을 폐지하고 공소청과 중수처(중대범죄수사처)를 신설해 검찰의 수사·기소를 완전히 분리하는 검찰 개혁 패키지 법안을 당론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을 추진해 달라’는 국민청원에 따라 대통령 탄핵 열차에도 서서히 시동을 걸고 있다. 여야의 ‘극한 대치’가 ‘무한 대치’로 끝없이 펼쳐질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터져 나오는 이유다. 거대한 일사불란이 만든 그림자가 22대 국회 전체를 집어삼키고 있다.

 

■이에는 이, 당론에는 당론? 여당엔 ‘액셀’이 없다

‘당론’으로 달리는 거대 야당에 맞서 국민의힘도 각종 법안을 당론으로 채택하며 화력을 모으고 있다. 7월18일 기준 국민의힘은 17개 법안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당 소속 108명 전원이 서명한 저출산 대응 패키지 4개 법안을 비롯해 국민의힘 별도의 간호법 제정안, 미래 산업 육성 법안 등을 제출해놓은 상태다.

법안 추진에서 수적으로나 속도 면에서 더불어민주당에 단연 밀리는 모양새다. 국민의힘은 지난 5월말 당 워크숍에서 ‘민생공감531’이라고 명명한 5대 분야 31개 법안을 조속히 당론 발의하겠다고 목소리를 모은 바 있다. 하지만 50일 가까이 지나는 동안 이 중 절반만 겨우 발의했다.

비슷한 시기의 워크숍에서 57개 당론 발의를 약속한 후 실제 45개를 실행한 민주당과 대조되는 동력이다. 여소야대 탓에 단독으로 그 어떤 법안도 통과시키지 못한다는 무력감이 짙게 깔려있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전당대회에서 심각한 ‘자폭전’까지 펼쳐지고 있는 탓에, 법안 주도권을 속수무책 빼앗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내에선 ‘뾰족한 답이 없다’는 토로가 이어진다. 한 초선 의원은 통화에서 “야당이 조금도 협치의 공간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소수 여당’이 할 수 있는 건 저들의 입법 독주를 지켜보는 것,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건의하는 것, 그리고 국민들께 심판을 요청하는 것뿐”이라고 털어놨다. 국회에 협치의 공간이 다시 생겨나지 않는 한, 집권여당의 당론 법안은 이대로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고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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