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활란의 이대생 성상납’ 근거로 민주당 김준혁 의원이 제시한 문건 분석
미군 장교의 “정사 의심” 정보 보고에 “출처·세부내용 없어” 결론
“낙랑클럽 문건은 미군 방첩대 전 사령관의 개인적 지식과 의견을 따른 것이다.” “(낙랑클럽 일부 회원의 매춘설은) 출처 및 세부사항이 알려지지 않았다.”
김준혁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수원정)이 ‘이화여대생 성(性)상납’ 발언의 근거로 제시한 미군 방첩대(Counter Intelligence Corps·CIC) 기밀 문건의 내용이다. 시사저널이 CIC 문건을 확인한 결과, 미 방첩대는 사교모임인 ‘낙랑클럽’의 주 회원이 이대생들이고 일부 회원의 매춘설을 제기한 정보 보고에 대해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문건에는 ‘이대생 성상납’ 또는 ‘성접대’가 직접적으로 명기된 대목도 없다. 앞서 김 의원은 2022년 김활란 전 총장이 미 군정 시기에 이대생들을 성상납에 동원했다고 주장했다.
4·10 총선 과정에서 불거진 ‘이대생 성상납’ 발언 논란이 재점화하는 분위기다. 이대학당과 이대 동문 등은 김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고, 김 의원은 맞고소했다. 현재 이대에선 온라인 서명운동이 시작되며 불이 붙은 상황이다(시사저널 <‘이대생 성상납’ 논란 둘러싼 양측의 쟁점은?> 기사 참조). 시사저널은 김 의원이 지목한 CIC 문건뿐만 아니라 선거 과정에서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제시한 국내 논문을 살펴봤다. 이 밖에 낙랑클럽과 관련한 국내 문헌도 참고했다. 그 결과 ‘이대생 성상납’을 단정 지을 만한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낙랑클럽의 간첩설·공산주의 연계설도 “증거 없다”
‘이대생 성상납’ 발언의 주요 근거 자료는 미군 방첩대(CIC) 기밀 문건이다. 김준혁 의원이 6월18일 기자회견에서 제시한 문건이다. CIC 문건은 1996년 중앙일보 현대사연구소가 발간한 자료집을 통해 세간에 알려졌다. 자료집 문서 대부분은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NARA)에 소장된 문서들이다. CIC는 각국 주요 인물의 신상조사를 기록했다. 공산주의 활동과 연계된 것으로 보이는 단체활동도 보고했다. CIC 문건은 이러한 목적으로 작성된 정보·첩보 보고서들로 구성됐다. CIC는 당시 한국에 주둔한 미24군단 예하의 정보참모부(G-2)와 함께 양대 정보기관으로 분류됐다.
이번 논란의 쟁점은 ‘낙랑클럽(Nang Nang Club)’이다. 이는 ‘미국 CIC 정보 보고서 1편-인물 조사보고서’에서 모윤숙씨와 관련한 사찰 기록에 담겼다. 1편 전체 분량 830여 페이지 가운데 63페이지(659~721면)를 차지한다. 모씨는 여류시인이자 국제펜클럽 회원으로 활약한 인물이다. 대한민국 정부 초대 문교부 장관을 지낸 안호상씨 부인이기도 하다. 모씨가 중심이 된 단체 ‘낙랑클럽’이 남한의 사교계를 뒤흔들었다는 것이 문건의 골자다. ‘이대생 성상납’ 주장이 시작된 지점이다.
미 정보기관이 낙랑클럽을 주목한 시기는 1952년 12월부터다. 미 언론사 ‘데일리 팔로알토 타임즈’가 1952년 9월24일 관련 내용을 보도한 이후다. 기사의 골자는 “(낙랑클럽의) 모윤숙 덕에 이승만 대통령은 주한 유엔군사령부(UNC)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낙랑클럽 회원들이 미군 등과의 파티에서 정보를 수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기사에선 낙랑클럽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활동한 여성 간첩 ‘마타하리(Mata Haris)’로도 간주됐다.
이를 계기로 미 극동군사령부와 한국 파견대 사이에 여러 통의 전문이 오갔다. 해당 기사가 “소식통을 인용하지 않은(without quoting sources)” 것으로 평가(1953년 1월9일자 전문)되면서 사실 확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는 휴전 성립 이후 북진 통일을 주장한 이승만 대통령과 미 정부 간 견해차가 드러난 민감한 시기다.
1953년 8월5일, 결정적 전문이 미 극동군사령부 G-2에 날아왔다. 한국에 파견된 하워드 W. 해리스 대위의 보고 내용이다. 이는 1953년 7월27일 G-2 지시에 따라 미 방첩대 704 파견대의 문서를 토대로 작성됐다. 보고 내용에는 낙랑클럽 조직 등에 관여한 인물로 모윤숙씨가 거론됐다. 낙랑클럽이 조직된 시기는 1948년 혹은 1949년이라고 판단했다.
목적은 “외국 귀빈과 한국 정부 고위 관료와 군 장성들, 외국 정부의 중요한 사적 대표들을 환대하기 위해”라는 내용도 담겼다. “회원은 주로(primarily) 부산에 있는 이화여대 졸업생 가운데 교양 있고 매력이 있으며 영어를 잘 구사하는 주최자(hostesses)였다”고도 했다. 논란이 된 대목은 이후부터다.
“낙랑클럽의 구성원은 기혼여성, 미혼여성, 근로여성 등으로 구성됐다. 회원은 처음 약 150명이었다. 이후 70~80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회원은 낙랑클럽을 사업 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중략) 사업상 혹은 정치적 목적으로 방문하는 외국 관리들과 식사를 하거나 (중략) 낙랑클럽 일부 주최자의 대접 활동이 공식 매춘부(official prostitutes)처럼 손님들과 동거(cohabitiing)하는 것으로 확대됐다는 주장도 제기됐다(alleged). (중략) 미 정부를 대표하는 미국인 그룹의 한 임원은 조직의 하위 구성원들이 낙랑클럽 회원들과 정사를 나눴다고 의심했다(expressed suspicion).”
미 방첩대는 낙랑클럽의 구체적 활동을 주목했다. 이들이 공산주의와 연계됐을 수도 있다는 것도 이유였다. 그러나 이건 R. 타우쉬 대령은 1953년 9월7일 낙랑클럽의 공산주의와의 연계성이나 회원들의 정보 수집 등 의혹과 관련해 “현재까지 증거가 없다(to date there has been no evidence)”고 판단했다. 일부 회원의 매춘·동거설에 대해서도 “출처 및 세부 사항이 알려지지 않았다(Source and details unknown)”고 밝혔다.
낙랑클럽을 거론한 원 문건에 대해서도 “전 사령관의 개인적 지식과 의견을 따른 것이다(complied from the personal knowledge and expressed opinions of Major Gregory McDermott, former Commander of the 704th CIC Detachment)”고 평가했다. 미 방첩대는 낙랑클럽을 정식 조사하지 않기로 했다.
국내 논문·문헌에도 이대생 성상납 언급은 없어
김준혁 의원은 4월초 국내 논문을 근거로 제시했다. 이임하 성공회대 교수의 ‘한국전쟁과 여성성의 동원(2007)’이다. 논문에는 “일부의 여성지도자들은 외교와 미군(UN군) 장교들을 위안한다는 명목의 ‘파티대행업’에 나섰다”며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 각료와 유력 인사들의 절대적 지원을 받으며 파티대행업에 나선 여성지도자는 김활란과 모윤숙”이라고 명시됐다. “낙랑클럽을 조직해 여학생 등을 동원해 파티대행업에 나섰다”는 것이다. 김 전 총장에 대해선 “한국전쟁 발발 직후 공보처장에 임명됐다”고도 했다.
다만 이대생 성상납을 언급한 부분은 없다. 되레 “김활란이나 모윤숙에 의해 동원된 젊은 여성들이 파티에서 직접적인 성적 유흥을 제공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아래 인용문에 나타난 것처럼 이미 사회는 미군(UN군)과 자주 접촉하는 그녀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고 설명했다. 42페이지 분량의 논문에 등장한 이대생 부분은 이에 불과하다. 논문이 인용한 자료 역시 미 CIC 문건이다.
낙랑클럽은 ‘이대생 성상납’ 주장의 주된 근거로 활용됐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낙랑클럽 회원이 직접 단체활동을 공론화한 전례도 있다. 이화여전 영문과 출신의 전숙희씨다. 1919년생 전씨는 미 군정 시기 통역관을 지낸 인물이다. 수필가로도 활동하며 계간지 《동서문학》을 창간했다. 그는 2005년 출간된 책 《8·15의 기억 -해방 공간의 풍경, 40인의 역사체험》(한길사)에서 낙랑클럽에 대해 “미군들에게 한국을 이해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이를테면 한미친선을 위한 모임”이라고 했다. 아래는 전씨가 책에서 서술한 내용이다.
“낙랑클럽에서는 외국인들을 접대할 때 말도 모르고 매너도 안 좋으면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이 나빠질 테니까, ‘한국은 저희가 본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만 사는 나라가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귀부인도 있고 이런 지식인들도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활동을 했어요. (중략) 미군들의 파티가 열리면 낙랑클럽 회원들을 초대해요. 그럼 우리는 가서 대화도 하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이 사람들이 으레 음악을 틀어 놓고 춤을 췄어요. 댄스파티라는 게 처음에는 낙랑클럽과 미군들이 유행시킨 거죠. (중략) 이야기하고 춤추고 우리끼리 교가도 부르고 그랬어요. 김활란 박사도 오셨죠.”
낙랑클럽의 주 회원이 이대생들이라는 대목도 없다. 전씨는 회원에 대해 “적어도 일제시대 외국 유학을 갔다 올 정도의 교육받은 사람들, 또 잘살고 좋은 일도 많이 한 사람들, 그런 집의 부인들을 중심으로 해서 모윤숙씨가 만들었다”며 “미혼은 한 명도 없었다”고 했다. 낙랑클럽이 미군과 한국군을 잇는 역할도 했다고 한다. 영어에 능숙하지 못한 한국군 장교·정치인들이 낙랑클럽의 도움을 받아 미군과 소통했다는 취지다. 전씨는 “미군들은 일본의 속국으로만 알았던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 예술, 미풍약속 등을 거의 낙랑클럽을 통해 알게 됐다”고 했다.
“김활란이 이대생들을 미군 장교에 성상납시켜” 발언으로 촉발된 논란
22대 국회에 입성한 김준혁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수원정)은 ‘역사학자’로 통한다. 특히 ‘정조 전문가’로 이름이 알려졌다. 그가 대중에게 친숙해진 계기는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김 의원은 JTBC 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래스》 등에서 정조 시대 등 역사 지식을 흥미롭게 전달하며 얼굴을 알렸다.
김 의원의 연구물에서도 정조 전문가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조선후기 정조의 불교정책(1998년)’을 주제로 중앙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 논문 주제 역시 ‘조선 정조대 장용영 연구(2007년)’다.
정조 시대에 중점을 둔 저서와 학술 논문도 다수다. 《수원화성: 정조의 꿈이 담긴 조선 최초의 신도시》(주니어김영사), 《정조: 이산, 새로운 조선을 디자인하다》(웅진씽크하우스), 《정조의 창덕궁 내원(內苑) 군신동행과 연회 정치》(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정조는 왜 화성을 건설했을까?》(내일을 여는 역사) 등이다. 김 의원은 2014년부터 한신대학교 평화교양대학 조교수, 부교수를 지냈다.
김 의원의 정치 이력은 문재인 정부 시절 시작됐다. 2017년 4월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나선 문 전 대통령의 중앙선거대책위원회에서 문화유산콘텐츠발전특위 위원장을 맡은 것이 일례다. 이후 2021년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냈다. 민주당 정당혁신추진위원, 전략기획위원회 부위원장, 정당혁신추진위원, 경기도당 대변인 등으로도 활동했다.
김 의원을 설명할 때는 수원을 빼놓을 수 없다. 수원환경운동센터 공동대표, 수원시 3·1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 집행위원장 등의 이력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는 지역 전문가이기도 하다. 이 때문인지 김 의원은 2022년 6월 지방선거에서 수원시장 예비후보로 나섰다. 당시 최종 경선까지 갔지만 이재준 현 수원시장에게 패했다.
국회 첫 입성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수원정에서 내리 3선에 성공한 박광온 의원과 당내 경선에서 맞붙어야 했다. 유력 후보로 현역을 꺾으며 출마를 확정지었지만 이번에는 과거의 ‘막말’ 논란에 휩싸였다. 김 의원이 2022년 8월 유튜브 채널 ‘김용민TV’에서 “종군 위안부를 보내는 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이 김활란”이라며 “미 군정 시기 이대 학생들을 미군 장교들에게 성상납시키고 그랬다”고 발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당시 이대 측은 후보직 사퇴 등을 요구했고, 김 의원은 사과했다. 김 의원은 결국 ‘민주당 텃밭’에서 가까스로 당선됐다. 이수정 국민의힘 후보와의 득표율 차이는 1.73%포인트에 불과했다(김준혁 50.86%, 이수정 49.13%).
김 의원은 현재 교육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당내에선 ‘친명계’로 분류된다. 정조 전문가인 그는 이재명 민주당 전 대표를 주제로 한 저서를 내놓기도 했다. 《이재명에게 보내는 정조의 편지》(더봄), 《왜 이재명을 두려워 하는가》(더봄)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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