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지사의 경기도에 ‘친문 핵심’ 전해철·김남수·강권찬 등 친문계 포진…대권 도전 포석?
“‘그 누구의 민주당’ 아닌 ‘국민의 민주당’ 돼야”…이재명 저격도
“참으로 개탄스럽습니다. 김정숙 여사 특검법이라니요? 영부인 외교에 대한 치졸한 흠집 내기가 도를 넘었습니다.” 최근 여당이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에 대한 맞대응 성격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 배우자 김정숙 여사 특검법을 거론하고 나서자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동연 경기지사가 6월5일 SNS에 이 같은 글을 올리며 반발했다. 이와 관련해 한 민주당 관계자는 “민주당 지도부나 여의도에서도 쉽사리 나서지 않고 있는데 친문(親문재인)도 아닌 지방자치단체장이 목소리를 낸 독특한 상황”이라고 평했다. 김 지사가 공개적으로 메시지를 낸 시점과 배경에 상당한 의미가 내포돼 있다는 해석이다.
당헌·당규 개정에 “왜 하필 지금” 반대 목소리
김 지사의 SNS에 김정숙 여사 특검법 관련 글이 게재된 지 6일 만에 민주당 당헌·당규 개정에 반대하는 글이 올라오면서 야권 전체가 술렁이기도 했다. 김 지사는 6월11일 SNS에 “민주당 당헌·당규 개정안에 이의 있다”면서 당원권 강화와 대권에 도전하는 당대표는 대선 1년 전 사퇴하도록 하는 당권·대권 분리 조항에 예외를 두는 내용 등이 포함된 당헌·당규 개정에 문제 제기를 하고 나섰다. 6월17일 완료된 해당 개정을 두고 정치권 일각에선 이재명 전 대표 일극(一極) 체제 강화를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 전 대표는 8월 전당대회 연임 도전에 앞서 6월24일 대표직을 잠시 내려놓은 상황이다.
김 지사가 ‘이재명 일극화’로 해석되는 일련의 움직임을 정면으로 비판했다는 점에 이목이 쏠린다. 그는 “1년 전 당권·대권 분리 예외 조항은 불신을 자초하는 일이다. 특정인 맞춤 개정이라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왜 하필 지금인지 모르겠다”고 썼다. 이어 “소탐대실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그 누구의 민주당’이 아닌 ‘국민의 민주당’이 되어야 한다. 정도(正道)를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에서도 극소수 외에는 반대 목소리가 나오지 않던 상황이었기에 민주당 일각에선 ‘김 지사가 비명(非이재명)임을 공식화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김 지사 주변에서도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최근 경기도엔 친노(親노무현)·친문 등 비명계 인사들이 모여들며 세를 구축하는 모양새다. 김 지사는 최근 친문 핵심으로 평가되는 전해철 전 의원을 도정자문위원장으로 위촉했다. 문 전 대통령의 최측근 그룹으로 여겨졌던 이른바 ‘3철’ 중 한 명인 전 전 의원은 지난 총선 안산상록갑 당내 경선에서 친명(親이재명)계 양문석 의원에게 패한 바 있다. 김 지사는 안정곤 비서실장과 신봉훈 정책실장도 지난달 새롭게 임명했다. 안 비서실장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 선임행정관 출신이고 신 정책실장은 노무현 정부 청와대 행정관을 지냈다. 지난 1월 임명된 김현곤 경제부지사도 문 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 선임행정관 출신이다. 현재 공석인 도 대변인에는 공모에 지원한 강민석 전 청와대 대변인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 전 대변인 역시 문재인 청와대에서 대변인을 지냈다.
김 지사는 도지사 취임 때부터 꾸준히 문재인·노무현 정부 출신 인사들을 영입해 왔다. 노무현 청와대 사회조정비서관을 지낸 김남수 정무수석은 김동연 경기도에서 정책수석-비서실장을 거치며 김 지사의 실세 최측근으로 꼽힌다. 문재인 청와대 시민참여비서관을 지낸 강권찬 기회경기수석도 김남수 수석과 함께 2022년부터 김 지사를 보좌하고 있다. 지난 1월 사임한 김진욱 전 대변인도 문재인 청와대 행정관 출신이었다. 김 지사 곁에서 경제부지사를 지낸 후 직전 총선 수원에 출마해 당선된 염태영 민주당 의원도 친문계로 분류되는 인사다.
文청와대 출신 강민석 대변인도 기용 유력
김 지사가 임명권자인 경기도 산하 공공기관에도 친문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경기도 싱크탱크인 경기연구원 주형철 원장은 문재인 청와대 경제보좌관을 지냈고 강성천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장도 문재인 청와대 산업통상비서관 출신이다. 강 원장은 전해철 전 의원 이전에 경기도 첫 도정자문위원장이기도 하다. 김혜애 경기환경에너지진흥원장 역시 문재인 청와대 기후환경비서관 출신이다.
정치권에선 경기도 인사를 포함한 일련의 김 지사 행보에 대해 추후 대권 도전을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2022년 대선에 새로운물결 소속으로 출마했으나 이재명 전 대표 지지를 선언하며 사퇴한 바 있는 김 지사는 차기든 차차기든 향후 대권 도전에 나설 주자군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 전 대표와는 잠재적 경쟁자인 셈이다. 이에 김 지사가 친노·친문계를 우군 삼아 비명계의 구심점이 되려는 구상을 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민주당 내에는 비명계의 구심점이 될 만한 인물이 없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친문계 인사는 “김 지사 주변에 친문계가 몰리는 게 실제로 친문과의 교감이 있거나 친문이 김 지사에게로 결집하거나 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면서도 “김 지사가 추후 대권 등 더 큰 도전을 하려면 세력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런 의미에서 친노·친문과의 접점을 지속적으로 늘려가는 게 필요하다고 봤을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 인사는 김 지사 ‘비명계 구심점설’에 대해선 “지금 당장은 알 수 없지만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나”라며 “당이 단 한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많은 미래 권력이 동시에 존재하는 건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라고 했다.
이 인사는 김 지사가 올해 초 문 전 대통령을 찾아간 일에 주목하기도 했다. 김 지사는 지난 3월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참배하고 이어 양산 평산마을을 방문해 문 전 대통령 내외를 예방했다. 예방 직후 김 지사는 “제게 더 큰 역할을 해달라는 당부의 말씀과 저도 그 당부에 부응해 역할과 책임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이야기도 (문 전 대통령과) 나눴다”며 “당의 중요한 자산으로서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더 큰 역할을 해달라는 말씀을 주셨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동연 지사는 여의도와의 스킨십도 부쩍 늘리는 모양새다. 그는 6월20일 국회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을 만나 경기도 주요 입법과제인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 특별법 등 '경제 3법'에 힘을 모아 달라고 요청한 후 개헌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지사는 우 의장을 만난 직후 취재진이 '친노·친문 규합설'에 대해 묻자 "특별한 정치세력하고 관련 있는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그런 의식을 한 적도 없고, 경기도의 발전 또 앞으로 도정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서 힘을 보태주실 분들을 많이 오시게끔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문석, 김동연 저격 “분노 억누르기 힘들어”
김 지사의 이러한 행보를 경계하는 당내 움직임도 포착된다. 친명계로 분류되는 민형배 민주당 의원은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 사건으로 9년6개월을 선고받고 항소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이재명 지사 시절) 사건과 관련해 경기도에 자료를 요청했지만 제출하지 않고 있다며 “계속 자료 제출을 거부한다면 검찰을 돕는 것”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경기도는 즉각 반박 입장문을 내고 “깊은 유감의 뜻을 밝힌다”며 “김광민 경기도의원(이화영 변호인)이 요청한 자료는 최근 국민의힘 국회의원도 제출을 요구했다. (그때도) 경기도는 ‘수사·재판 중인 사안’으로 정치적 악용의 소지가 있어 제출을 거부했다”고 했다.
강성 친명으로 분류되는 같은 당 양문석 의원은 더 직접적으로 김 지사를 저격했다. 양 의원은 최근 이재명 대표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에 글을 올려 “이화영 전 부지사 변호인 측 자료 요청에 ‘정치적 악용 소지’라는 변명을 앞세워 자료 제공을 거부하는 것에 민주당원으로서 분노를 억누르기 힘들다”며 “김 지사, 당신의 작고 소소한 정치적 이득보다 옳고 그름, 정당한지 부당한 지를 먼저 헤아리는 정의로운 기준을 기대한다”고 했다. 민주당 내에선 “김 지사에 대한 친명의 본격적인 견제가 시작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