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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태어나 포항에서 숨진 시인 이야기 《모란봉에 모란꽃 피면 평양 가겠네》

포항의 호미곶에 가다가 ‘흑구문학관’으로 안내하는 표지판을 본 사람이면 궁금하지 않았을까. 검은 갈매기를 뜻하는 흑구가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가. 그곳을 그냥 지나친 여행객들에게 본명이 한세광인 옛 문인 한흑구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주는 포항 출신 문인이 있으니, 이대환 작가다. 그는 한흑구 탄생 115주년을 맞는 올해, 한흑구의 문학적 일대기를 93편의 작은 이야기로 엮은 《모란봉에 모란꽃 피면 평양 가겠네》를 펴냈다.

모란봉에 모란꽃 피면 평양 가겠네│이대환 지음│아시아 펴냄│428쪽│2만원
모란봉에 모란꽃 피면 평양 가겠네│이대환 지음│아시아 펴냄│428쪽│2만원

이 작가는 한흑구의 작품과 그 상황을 통찰한 해설을 곁들였다. 1909년 평양에서 태어난 한흑구는 숭인학교를 나와 1929년 2월 보성전문학교 상과를 중퇴한 데 이어 5년여 미국 유학을 하고 시인, 소설가, 수필가, 번역가로서 1934년 봄날에 평양으로 돌아왔다.

한흑구는 신문은커녕 잡지 하나 없는 ‘조선 제2 도시 인구 16만 평양’의 전근대적 현실을 개탄하며 종합지 《대평양》과 《백광》 창간 및 발행을 주도하고 왕성하게 활동하던 중 1937년 안창호, 이광수, 주요한, 한승곤(아버지) 등과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고초를 겪었다. 그 후부터 평양을 떠나 평남 강서군 산골에 칩거하며 일제의 회유와 압박을 거부해, 친일문학연구자 임종국씨의 말처럼 ‘단 한 편의 친일 문장도 쓰지 않은 영광된 작가’로 남았다.

책 제목은 첫 번째 아리아 ‘애인보다 가까운 조지훈과 함께 다시 모란봉에 올라 보고 싶지만’의 한 문장에서 따왔다. 한국전쟁 중 가족을 이끌고 피란길에 올랐다가 수영비행장에 주둔한 미군 지휘부의 통역관이 된 한흑구는 공초 오상순, 조지훈, 청마 유치환 등 종군 문인들의 저녁 술자리를 책임지는 임무에 충실히 임했다. 국군과 유엔군이 평양을 수복하고 문인 대표들도 평양으로 날아가게 되자 조지훈은 평양 토박이 한흑구에게 동행을 강권했는데, 한흑구는 “나는 모란봉에 모란꽃이 피면 평양에 가겠네”라면서 사양했다.

“그날부터 한흑구는 평양을 영혼으로만 살아가야 했을까. 모란봉에는 모란꽃이 피지 않는다. 모란이 없기 때문이다. 한흑구는 현실에서 평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운명이었다. 모란봉이란 피어나는 모란꽃을 닮아서 매겨진 이름이라니!”

그러나 70세에 다가서며 생의 종점을 예감한 한흑구는 가슴 깊이 봉인해둔 향수 주머니의 실밥이 터져 버리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래서 ‘글로 만든 평양 안내지도’라 불러도 손색없을 ‘모란봉의 봄’ 같은 수필을 쓴다. 아흔 번째 아리아 ‘꽁꽁 봉인해 둔 침묵의 향수에 속절없이 그만 실밥이 터지고’다.

한흑구는 황혼의 시간에 포항 바닷가를 거닐며 쓴 수필 ‘나는 한 마리 갈매기요’에서 스스로 갈매기로 등장해, 드디어 갈매기는 떠돌이 방랑자가 아니라 터를 잡고 정착한 새라고 말했다. 그가 발표한 마지막 글은 1979년 10월 《샘터》에 실린 ‘신용이 광고다’로 도산 안창호 정신을 선양한 내용이기도 했는데, 아흔두 번째 아리아 ‘갈매기같이 살겠다며 마지막으로 도산 안창호를 호출한 검은 갈매기’로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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