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마→입당→선대위 내홍→단일화→20대 대통령 당선까지
“저 윤석열,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루겠다는 절실함으로 나섰습니다.”
지난해 6월29일, 당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서울 양재동 매헌 윤봉길기념관에서 첫 정치선언을 통해 ‘정권교체’의 뜻을 밝혔다. 그렇게 ‘검사 윤석열’은 ‘정치인 윤석열’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255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꿈을 이뤘다. 당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몇 차례의 굴곡이 있었고 때론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윤 당선자의 ‘결정적 순간들’을 시간순으로 정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 윤 후보를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했다. 윤 후보는 문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뢰 속에 2019년 7월 검찰총장에 취임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임명을 기점으로 갈등을 빚게 된다. 조 전 장관의 인사청문회가 열리던 날 검찰은 조 전 장관의 부인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전격 기소했다.
조 전 장관 후임으로 추미애 전 장관이 취임한 뒤엔 이른바 ‘추·윤’ 갈등이 부상했다. 윤 후보는 추 전 장관과 신경전을 벌이면서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급부상했다. 그리고 지난해 3월 검찰총장직을 사퇴했다. 그는 사퇴의 변으로 “이 나라를 지탱해 온 헌법 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며 현 정부를 직격했다. 윤 후보는 검찰총장 사퇴 117일 만인 지난해 6월29일 서울 양재동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윤 후보는 지난해 7월30일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했다. 입당 시기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호남을 방문하던 때라 ‘대표 패싱’ 논란이 일었다. 경선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TV토론 중 윤 후보 손바닥에 적힌 ‘왕(王)자’가 화면에 잡히면서 무속 논란이 불거졌다. 아내 김건희씨의 ‘과거사’와 장모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홍준표 의원과의 치열한 대결에서 ‘당심’을 등에 엎고 지난해 11월5일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경선에서 승리했지만 ‘정치 초보’였던 윤 후보는 위기를 마주해야 했다. 특히 지난해 11월 말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문제가 불거지며 이준석 대표와 갈등을 겪었다. 급기야 이 대표가 선거대책위원회 하차를 선언하자 이 대표와의 갈등 봉합을 위해 윤 후보는 12월3일 이 대표가 있던 울산으로 향했다. 이날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까지 선대위에 영입하면서 갈등은 극적으로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당내 크고 작은 갈등이 계속됐다. 그러자 윤 후보는 1월5일 선대위 전면 해체를 선언했다. 동시에 김종인 전 위원장과 결별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이튿날에는 이 대표 퇴진을 요구하는 의원총회에 등장해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고 주장, 이 대표와의 갈등을 다시금 풀었다. 이후 이 대표와 윤 후보는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등을 내놓으며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를 시작했다.
윤 후보는 사실상 단일화가 무산됐다고 평가 받던 지난 3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긴급 회동했다. 이 자리에서 지지부진하던 야권 후보 단일화를 성사시켰다. 그리고 10일, 윤 후보는 숱한 위기를 딛고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문 대통령은 10일 오전 윤 후보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대선 승리를 축하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