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학교 고액 해외여행 실태’ 보도, 사회적 파장 확산…시·도교육청, 내년부터 관할 중·고교 직접 찾아 점검키로
“학교 주관 해외여행에 못 간 게 상처였던 딸이 울면서 ‘아빠, 동생은 꼭 보내줘’라고 말하더라.”
고등학생 딸을 둔 아버지의 제보로 시작됐다. 시사저널은 지난 9월부터 학교 주관 고액 해외여행의 문제점을 단독·심층 보도해 왔다. 원흉은 ‘불신 덩어리’ 대입(大入)이었다. 시사저널 보도(시사저널 1508호 참조)를 통해 고액 해외여행의 실태와 대학 수시모집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불합리성이 낱낱이 까발려졌다. ‘이대로 둬선 안 된다’는 경각심을 사회에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해당 문제에 수수방관하던 교육 당국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학종 불신’ 해소” 학생부 전수조사
교육 당국은 시사저널 보도와 국회 국정감사 지적 이후 중·고등학교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부정·편법 기재를 뿌리 뽑기 위해 전수조사 수준의 실태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시·도교육청은 내년부터 관할 지역 내 대부분의 중·고교에 직접 찾아가 학생부 기재 실태를 조사할 계획이다.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지난 7월25일 발표한 ‘2019학년도 수시모집 요강 주요 사항’을 보면 전국 4년제 대학은 내년 봄 신입생(34만7478명) 중 76.2%인 26만4691명을 수시모집으로 뽑는다. 1997학년도 입시에서 수시모집이 처음 도입된 이후 역대 가장 높은 비중이다. 수시모집에서 학종이 차지하는 비중은 32.1%(8만4860명)다. 특히 소위 ‘인(in)서울’로 불리는 서울 소재 대학들의 학종 선발 비중이 상당히 높다. 학종은 학생부에서 비(非)교과 영역도 종합 판단해 선발하는 전형이다. 학교생활을 성실히 해 온 학생들이 유리하다지만, 평가 근거나 기준 등이 모호해 ‘깜깜이 전형’이라 비판받기도 한다. 각 학교들이 무리하게 해외여행을 추진하는 것도 바로 이 학종과 관련이 있다.
우선 교육부는 올해 안에 각 시·도교육청의 단위학교 학생부 기재 지도·점검을 의무화하는 내용으로 법령을 개정키로 했다. 시·도교육청 평가 시 현장방문 점검만 인정토록 하는 지표도 내년 초 신설한다. 일부 학교만 조사하거나 서류 점검으로 현장방문을 대체하는 등 학생부 기재 지침 준수에 대한 모니터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조치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부가 단위학교를 감사할 권한은 없는 가운데 (감사 권한을 가진) 시·도교육청이 실시하는 실태점검은 실효성 논란을 불러왔다”며 “중·고교를 전수조사 수준으로 직접 돌아보게 하면 문제가 다소 보완될 것”이라고 밝혔다.
각 시·도교육청은 내년 중 방학 등을 이용해 관할 중·고교의 학생부를 조사한다. 지침 위반 사항은 적발해 징계할 방침이다. 지침 위반 적발 시 고의성이나 과실 경중에 따라 학생부를 작성한 교사 혹은 학교 관리자가 징계를 받는다. 앞으로 시·도교육청은 이렇게 매년 1회씩 조사한 뒤 결과를 교육부에 보고해야 한다. 교육부 스스로 기존 조사의 실효성 문제를 인정했듯 그간 학생부 기재 지침 위반사례는 비일비재했다. 특히 예외 규정이 모호하게 서술된 것이 사각지대를 키우는 데 한몫했다.
교육부가 배포한 ‘학생부 기재요령’은 ‘학교장이 승인한 경우에 한해’ 외부 활동을 기재할 수 있다며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이에 대해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애매한 예외 사항과 당국이 일일이 검열하기 어려운 상황을 틈타 교외 수상경력, 해외 경험 등 학생부 기재 금지 사항을 암암리에 다 적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EBS 장학퀴즈에서 상 탄 걸 4번이나 언급해 명문대에 진학한 고교생도 봤다”면서 “이런 게 비일비재하다. 현행 제도에 구멍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해외 경험은 편법 기재도 난무한다. 학생이 해외여행 보고서를 써내면 학교가 이에 대해 시상하거나(교내 수상 경력 기재), 입학사정관들에게 보내는 학교 소개 글에 해외여행 프로그램이 명시되는 등 우회적으로 어필할 방법이 많다고 교육계 관계자들은 전했다.
그러면서도 ‘왜 그래야 하는지’ ‘진짜 대입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설명은 누구도 명확히 하지 못한다. 서울의 한 특목고 교사는 “해외 경험이 대학 진학에 직접 플러스 요인이 된다고는 말 못 한다”면서도 “(고등학교들 사이에) ‘옆에서 간다는데 우리도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있어 학교 해외여행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100만원 이상, 많게는 500만원 가까이 되는 학교 해외여행 경비를 향한 여론의 시선은 싸늘하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이 많다. 또 상당수 고비용 해외여행은 지원자를 받아, 학생 일부만 데리고 가는 식이다. 금전적 이유 등으로 해외여행에 참가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상처를 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아울러 학생부 부정·편법 기재에 대한 제재는 규정 못지않게 허술했다. 시사저널이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협조를 얻어 교육부 내부 자료를 조사한 결과, 학생부 해외 경험 기재와 관련해 주의를 받거나, 적발·징계 조처된 건수는 지금껏 단 하나도 없었다. 교육부가 김 의원실에 제출한 다른 자료에 의하면, 학생부 교내 수상 경력 작성지침을 위반한 고교는 지난해 197개였다. 위반에 대한 제재 사실은 전혀 없었다. 김 의원 측은 “해당 학교들은 지침을 위반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수백만원대 학교 해외여행, 3년간 300건 넘어
교육부는 학교 해외여행 추진 실태 역시 제대로 조사하지 않아왔다. 지난 9월11일 시사저널은 2016년 현황 자료를 교육부로부터 단독 입수해 학교 해외여행 실태를 보도했다. 당시 교육부는 2017년 이후 현황은 아예 파악하지 않아, 고액 학교 해외여행 문제에 손을 놓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시사저널 보도가 나온 뒤에야 2017년 1월부터 올해 8월 현재까지의 최신 데이터를 확보했다. 시사저널은 김해영 의원실로부터 해당 자료를 전해 받아 다시 단독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2016년 1월부터 2018년 8월까지 학생 1인당 경비가 100만원이 넘는 고액 해외여행(수학여행·봉사활동 등 포함)을 다녀온 초·중·고교가 총 184개교(연도에 따른 중복 포함), 300건(한 학교에서 여러 팀으로 나눠 가는 경우 포함)이었다. 금액별로 추려보면 100만원 이상 200만원 미만이 230건, 200만원 이상 300만원 미만이 40건, 300만원 이상이 30건이었다. 학생 1인당 해외여행 경비가 100만원 이상인 건수는 2016년 94건에서 2017년 122건으로 늘었다. 올해 데이터의 경우(1~8월 합계 84건) 본격적인 수학여행 시즌이 미포함된 것을 고려할 때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이를 넘어설 여지가 있다.
학교 급별로 구분하면 100만원 이상 해외여행 건수는 초등학교에서 61건, 중학교에서 26건, 고등학교에서 213건으로 고등학교가 가장 많았다. 초·중·고교 소재지별로는 경기도(94건), 서울특별시(73건), 충청남도(20건), 부산광역시·인천광역시(각 18건), 울산광역시(15건), 전라북도(11건) 등 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