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대통령, 28번째 민생토론회 광주서 개최
광주에 선물 보따리…“기다릴 만했다”
6개월 지각 민생토론회 “때 놓쳤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전남도청의 무안 이전은 ‘현찰’이고, 여수엑스포 유치는 ‘어음’이라고 설파했다. 이는 도청의 무안 이전은 기대 효과 보장이 즉각적이고 명확한 반면 여수 엑스포박람회는 미래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것을 염두에 둔 말이다. 수십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광주 민생토론회 성과를 놓고 DJ의 ‘현찰·어음 논쟁’이 소환되는 모양새다.
윤 대통령의 예상을 뛰어넘는 현안지원 약속에 광주시와 지역사회는 기대감으로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일각에선 “기다릴 만했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에 비해 ‘기대만큼 실망이 크다’ ‘때를 놓쳤다’는 혹평도 교차한다.
전남도는 지난 3월 민생토론회에서 윤 대통령이 언급한 SOC 사업 등이 내년 정부 예산안에 대거 반영됐다. 이에 비해 정부 예산안 데드라인인 8월 27일을 넘겨 광주 민생토론회가 열려 윤 대통령의 파격적인 지원 약속 대부분이 해를 넘기거나 장기 검토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전남도가 현찰을 챙긴 반면 광주시는 어음이 부도나지 않기만을 바라는 처지에 놓였다는 것이다.
소환된 DJ의 ‘현찰·어음 논쟁’
우여곡절 끝에 6개월 만에 열린 28번째 민생토론회가 지난 5일 광주에서 열렸다. 윤 대통령이 광주를 찾은 건 지난 5월 5·18민주화운동기념식 방문한 이후 110일 만이며, 민생토론회 차원에서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민생토론회의 호남 개최는 이번이 세번째다. 당초 지난 3월 광주·전남 공동으로 추진 된 것을 강기정 광주시장이 단독 토론회를 요청해 전남 단독으로 먼저 열렸고, 지난 7월에 정읍시에서 전북지역 민생토론회가 개최됐다.
그동안 윤 대통령은 27차례 민생토론회를 열었지만 광주를 찾지 않으면서 홀대론이 일기도 했다. 광주 민생토론회 일정이 잡히지 않자 강기정 광주시장은 지난 5월 24일 대통령실을 찾아 조속한 개최를 요구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일정상 이유로 개최 순서가 뒤로 밀리긴 했지만 이날 민생토론회에서 광주의 다양한 현안 사업에 대해 전폭적인 지원의사를 밝히며 지역 민심을 다독였다.
광주 민생토론회 개최 전에는 심상찮은 분위기가 감돌아 전북처럼 맹탕 토론회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으나 이를 뒤엎은 셈이다. 광주시 안팎에선 ‘100점 만점에 120점’이라는 반응과 함께, 추석을 앞두고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는 긍정적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尹 “적극 검토”에…수차례 박수갈채도
윤 대통령은 이날 광주시와 시민들이 현장에서 직접 건의한 사업에 대해서도 토론회 도중 관련 부처에 곧바로 사업 검토를 지시하는 등 매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윤 대통령은 과거 검사 시절 광주 근무 경험을 언급하고, 인공지능(AI) 2단계 사업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광주 군 공항 이전 등에 깊은 공감을 나타내 참석자들로부터 여러 차례 박수를 받기도 했다. 강기정 광주시장이 즉석에서 요청한 AI 집적단지 2단계 사업에 대한 예타 면제 건의를 즉석에서 “적극 검토해 보겠다, 과감하게 전향적으로 하겠다”고 화답한 것이 대표적인 장면이다.
강 시장은 “인공지능(AI) 인프라 구축 사업 관련 “2단계 사업은 속도의 경쟁이 필요해 곧바로 시작돼야 하는데, 예타 면제를 추진하겠다는 얘기를 대통령에게 꼭 듣고 싶다”고 요청했다. 강 시장의 요청에 윤 대통령은 곧바로 “하겠습니다”라며 “적극 검토하겠다고 오늘 말씀드리겠다”고 답했다. 요청을 한 강 시장도 윤 대통령의 빠른 답변에 깜짝 놀란 듯 웃음을 터뜨렸다. 강 시장 옆자리에 있던 호남 출신인 이정현 지방시대위원회 부위원장은 박수를 치며 기뻐하기도 했다.
광주시는 한정된 시간과 기회에 지역 발전을 이끌 수 있는 현안과 관련한 고민을 한 번에 털어낼 수 있었다며 ‘만족’해했다. 광주시 한 관계자는 “강 시장이 윤 대통령에게 요청한 사안 중 극소수만 검토해보겠다는 답변이 나올 줄 알았는데 예상 밖으로 윤 대통령이 대부분 사안에서 흔쾌히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답변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기대컸던 만큼 ‘아쉽다’…“추진 과정 지켜봐야”
반면에 ‘아쉬움과 실망이 크다’는 결이 다른 평가도 나온다. 광주 현안 사업들에 대해 단순히 나열하는 선에서 그쳤고, 구체적인 계획이나 시기를 밝히는 것 대신 단순히 “지원하겠다”는 식으로 마무리하면서 ‘말 뿐인 토론회’ ‘맹탕 토론회’라는 뒷말도 나온다.
조선익 참여자치21 대표는 “전반적으로 광주에 대한 대통령 공약 사항에 대해서 다시 언급을 했고 광주의 현안이라고 할 수 있는 AI 사업이라든지 미래차 산업, 복합 쇼핑몰 문제 등등해서 광주 시민들이 관심 가질 부분에서 이야기를 쭉 했다”며 “하지만, 단순하게 예산을 지원해 준다는 이야기 외에 현재 어느 정도의 사업이 진행되고 있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원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답변이 부족해서 아쉬운 점이 컸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윤 대통령이 ‘적극 검토하겠다’는 일부 현안사업에 대한 약속은 향후 추진 과정을 지켜봐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이 앞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약속한 일부 사업들은 뚜렷한 진척이 없다. 대통령의 약속과 정부 부처의 움직임이 별개인 경우가 상당수였다. 예산을 이유로 거부하거나 타 시도와의 형평성, 경제적 타당성 등을 따지며 차일피일 미루거나 추진하더라도 사업비를 깎아 사업 진행이 더딘 경우도 많았다. ‘광주 어음론’이 대두되는 이유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윤 대통령이 민생토론회에서 언급했던 K-디즈니 사업과 관련, 전남도는 ‘K 디즈니 조성 인력양성 및 콘텐츠 제작비’(154억·총 사업비 462억)를 정부에 요구했지만 반영되지 않아 국회 심사 과정에서 사업 타당성을 설득하겠다는 입장이다.
전북의 경우 윤 대통령이 전북 민생토론회에서 약속한 4500억 원 규모 새만금 농업용수 조기 공급과 2차 전지 대학원 신설은 후속 조처들이 속도는커녕 한 발짝도 진척이 없다. 완주군의 경우 2026년까지 ‘신뢰성 검증센터’ 등 인프라를 확충해 수소 상용차 혁신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겠다고 약속했으나, 정작 정부의 완주 수소산업 관련 예산이 반영되지 않았다. 민생토론회 공약들이 정부 부처들 이기주의에 진전은커녕 얼마든지 틀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재탕, 삼탕으로 언급된 사업도 있어 ‘말로만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신축에 1181억원, 국립광주박물관 내 도자문화관 건립 등 구체적 플랜을 공개했을 땐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이전 정부에서 결정된 사업이나 이미 착공식까지 끝난 사업들이다. AI 영재고 2027년 개교, 미래 모빌리티 산업 생태계 육성, 광주~영암 초고속도로(아우토반) 건설 등은 모두 2년여 전 대선에서 공약한 사업이다.
정준호(더불어민주당 광주 북구갑) 의원은 토론회 이튿날인 입장문을 내고 “대통령의 약속은 기대된다. 그러나 실천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신속·지원·노력이라는 각종 말잔치에 광주를 맡길 수 없다”며 “당장 달빛철도 건성 예산은 제외된 상태고, 아시아문화중심도시 특별회계 예산은 올해보다 삭감됐다. 예산·법안·행정절차 등 후속조치로 진정성을 입증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역 현안들에 대해 광주시와 정부 측이 서로 사전 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엇박자를 낸 정황도 일부 나타났다. 윤 대통령은 광주 복합쇼핑몰 사업과 관련한 교통 문제에 대해, BRT에 대한 언급만 했을 뿐 ‘(가칭 광천선) 도시철도 건립’에 대해선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비록 최종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이끌어 내긴 했지만 윤 대통령은 “처음 듣는 이야기다”라며 의아해하기도 했다.
광주시의 준비 부족도 드러났다. 광주 군공항의 무안통합공항 이전 문제의 경우 이번 토론회 의제에 포함조차 되지 않았다. 한상원 광주상의회장이 토론회 말미에 긴급질의 형태로 정부 차원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묻힐 뻔 했다. 이와 관련 광주시 관계자는 “민생토론회에 앞서 오랜 기간 정부 측과 현안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며 “일부 현안들이 누락되거나 제대로 대통령에게 전달이 안 된 것은 아쉽지만, 시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충분히 했다”고 말했다.
민생토론회 덕 본 전남도…尹 언급 사업 ‘속도’
전남도는 일찌감치 연 민생토론회의 덕을 톡톡히 봤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전남도 예산(8조 8928억원)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민생 토론회에서 언급된 사업들 상당수가 반영돼 향후 후속 절차를 속도감 있게 추진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월 전남도청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서 남의 SOC 사업으로 영암~광주 초고속도로 건설(사업 예산 2조6000억원), 강진~완도 고속도로 건설(1조5965억원), 전라선 익산~여수 구간 고속화(3조357억원) 등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민생토론회에서 “강진~완도 고속도로를 건설해 전남 남부권 관광과 산업 발전의 새로운 기틀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토론회 당시는 기획재정부 주관으로 예비타당성조사가 진행 중이었는데, 정부 예산안 발표를 며칠 남겨놓고 타당성조사를 통과하면서 내년 정부 예산안에 곧바로 사업 추진을 위한 기본계획수립비(37억)가 반영되는 등 타이밍까지 맞아떨어졌다.
영암~광주 초고속도로 건설(사업 예산 2조6000억원) 사업의 경우 올해 예산에 반영됐던 용역비(3억원)가 민생토론회 이후 곧바로 예산 집행으로 이어졌다. 전라선 익산~여수 구간 고속화(3조357억원) 사업은 전남도의 ‘전라선 고속화 예타 대상사업’에 대한 진행 보류 요청 이후 국토부가 용산~여수 간 30분 단축(설계속도 250㎞/h)이 가능한 개선안을 제시하고 지난달 말까지 시·군 의견 수렴을 받아 검토 중이다.
남부권 광역관광개발사업도 윤 대통령이 관심을 보인 사업이다. 그는 당시 “남부권 광역관광 개발사업으로 전남에 1조 3000억원을 투입해 지역 특색을 살린 관광·문화 콘텐츠를 만들겠다”고 강조했었다. 내년도 전남도 예산안에는 이같은 남부권 광역관광개발사업으로 추진할 26개 사업 예산 247억원이 반영됐다.
‘타이밍 놓친’ 광주시…“기회 놓쳐 진도 늦어”
일부에서 전남도 사례와 비교해 ‘때를 놓친’ 광주 민생토론회에 대한 아쉬움의 장탄식이 터져 나온다. 지난 3월 전남도와 공동개최를 거부하는 바람에 주요 사업의 정부 예산 반영 등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조선익 참여자치21 대표는 “가장 마지막에 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좀 더 빨리 만나서 현안을 얘기했다면 모든 사업이 빨리 진행될 수 있지 않았겠느냐”며 “강기정 시장은 늦게 했지만 좋은 성과가 있다고 평가했지만 좀 더 빨리 했다면 강 시장의 공약이나 윤 대통령의 광주공약이 조금 더 진도를 많이 나갔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 예산안 발표(8월 27일) 이후에 열리면서 ‘실기’했다는 아쉬움이 묻어난다.
“姜 시장, 승부사 기질 발휘로 대어 낚아”
시청 주변에서는 개최시기 지연에 따른 리스크를 강 시장이 개인기로 돌파, 전화위복이 됐다는 분위기다. 일부에서 자칫 “지원하겠다”는 형식적 답변으로 맹탕 토론회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강 시장이 윤 대통령으로부터 “적극 검토하겠다”, “세심히 챙기겠다” 등 보다 긍정적인 답변을 이끌어냄으로써 대어를 낚는 성과를 거뒀다는 것이다.
광주 시정에 밝은 한 인사는 “강 시장이 이번 민생토론회에서 정치인으로서 승부사 기질과 행정가로서 추진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애초 검토가 안 됐던 현안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을 이끌어내 광주 주요 현안 추진에 가속도가 붙게 됐다”고 평가했다. 강기정 광주시장도 “예상 밖에 큰 성과를 거둬 괜찮다”며 ‘만족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