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학교 동창이 가해자였다”…‘초범’이라 솜방망이 처벌 우려도
피해 교사 “1년 가르친 제자가 범인”…교내 소문으로 2차 피해까지

대구 서구의 한 중등교사 김명진씨(가명)가 지난 8월 딥페이크 피해를 당한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 속 내용. 가해자들이 지인 사진과 허위 음란물을 공유하고 있다. ⓒ독자 제공
대구 서구의 한 중등교사 김명진씨(가명)가 지난 8월 딥페이크 피해를 당한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 속 내용. 가해자들이 지인 사진과 허위 음란물을 공유하고 있다. ⓒ독자 제공

“제 얼굴을 합성하고 상품화했다는 게 너무 화나고 소름 끼쳐요. 저를 조롱한 대화 내용이 계속 생각나 사람 많은 곳은 피하게 됐어요. 이성과 대화하는 것조차 이젠 무서워요.” (딥페이크 피해자 이서영씨(가명))

‘딥페이크 성범죄’ 대응이 계속되는 가운데 피해자들의 상처는 점점 더 곪아가는 모습이다. 시사저널은 딥페이크 성착취물 범죄의 피해자들이 전한 ‘그 이후의 삶’을 들어봤다. 피해자들은 당시 느낀 성적 수치심과 공포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들의 고통은 부족한 경각심과 허술한 법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 “저는 성범죄라고 생각하는데 남들은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가해자가 초범이라 처벌 수준이 낮을 거라더라” 등 딥페이크 피해자들이 마주한 현실에 대한 답답함이 전해졌다.

 

“네 얼굴이 텔레그램에 퍼지고 있어”

20대 초반 이서영씨(가명·여)는 ‘텔레그램 딥페이크’ 단체 대화방에 자신의 얼굴을 합성한 음란물이 유포된 사건을 회상하며 울분을 토했다. 이씨가 피해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건 작년 말이다. 또 다른 여성 피해자인 중학교 동창의 연락을 받으면서다. 이씨는 ‘네 사진도 텔레그램에 퍼지고 있다’는 동창의 말에 해당 대화방에 들어가봤다고 한다.

당시 대화방에는 1000여 명이 있었다. 이씨의 중·고등학생 시절 사진과 신상 정보가 뿌려졌고, 이에 대화방 이용자들은 “다 벗기고 싶다” “임신시켜야지”라며 성희롱했다. 이씨는 “(가해자들은 대화방에 뿌려진 사진을 두고) 사람 취급도 안 했다. 가령 18세 여자의 사진이면 ‘18년산’, 20세면 ‘20년산’ 이런 식으로 불렀다”며 “제 얼굴을 ‘아헤가오’나 음란물에 합성해 공유하고, 심지어 1~5점으로 투표까지 하며 저를 능욕했다”고 토로했다. 이씨 얼굴이 합성된 ‘아헤가오’는 성관계 시 얼굴을 뜻한다. 가해자는 합성물을 대화방에 유포했다.

경찰 수사로 검거된 피의자 A씨는 이씨의 중학교 동창 남자였다. A씨는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던 올해 초에도 새로운 딥페이크 텔레그램방에 들어가 이씨의 사진을 또 올리고 조롱했다고 한다. 범행은 대화방 운영자에게 개별적으로 ‘지인 능욕’ 사진을 보내면 운영자 측이 합성물을 제작해 주는 식이었다.

문제는 처벌 수준이다. A씨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한 결과 유포된 합성물 외에도 이씨 사진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현행법상 배포할 의도 없이 제작·소장만 한 합성물에 대해선 처벌할 규정이 없다.

경찰은 A씨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다만 검찰 측에서도 이씨에게 “피의자가 초범이라 (이씨가) 기대하는 재판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진행하겠느냐”고 되물은 만큼 처벌 수준이 낮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씨는 “제 정신적 피해가 도저히 돈으로 치료될 것 같지 않아 (가해자와) 합의를 안 봤는데, 처벌조차 너무 약하다는 생각에 좌절감이 든다”고 호소했다.

20대 초반 여성 이서영씨(가명)가 작년 말부터 올해 초 사이 피해를 당한 '딥페이크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 속 내용. 대화방에서는 피해자들의 사진을 공유하고 피해자 나이에 따라 "17년산", "19년산" 등으로 폄하했다. ⓒ독자 제공
20대 초반 여성 이서영씨(가명)가 작년 말부터 올해 초 사이 피해를 당한 '딥페이크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 속 내용. 대화방에서는 피해자들의 사진을 공유하고 피해자 나이에 따라 "17년산", "19년산" 등으로 폄하했다. ⓒ독자 제공

교내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 조치도 없다

“선생님, 이것 좀 확인해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선생님 사진이 돌아다녀요.” 9월2일 시사저널과 통화한 대구 서구의 한 중등교사 김명진씨(가명·여)도 자신의 사진이 텔레그램 딥페이크 대화방에 떠돌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약 한 달 전 또 다른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자인 한 여학생이 알려주면서다.

‘지인방’이라는 대화방에는 김씨 사진을 올린 가해자가 ‘지인 능욕해 달라’는 등 딥페이크 성착취물 제작을 의뢰하는 내용이 담겼다. 김씨와 사건을 제보한 재학생, 해당 학교 졸업생 등 총 5명이 유사한 피해를 당했다. 김씨는 범행이 발생한 대화방에 들어가 직접 내용을 확인했다고 한다. 당시 약 2200명이 들어있던 대화방에선 같은 학교 학생과 교사의 사진이 오갔다. 이에 “능욕해 주실 분” “△△△ 약점 있는데 협박해 주실 분” 등 모욕글이 끝없이 쏟아졌다. 한 학교 예체능 교사 얼굴에 전신 나체 사진을 합성한 성착취물이 유포되기도 했다.

수사 결과 가해자는 해당 중학교 2학년생 B군이었다. 그는 김씨가 작년 한 해 동안 가르친 학생이었다. 김씨는 곧바로 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를 신청했지만 B군에 대한 처벌은 등교 중지 5일, 특별 교육 10시간 등에 그쳤다고 한다. 김씨는 “(학교에선) 해당 조치를 내린 걸로 상황이 종료됐다. 학교폭력과 달리 교권 침해는 학교 측 조치에 만족하지 못해도 더 이상 방법이 없다. 후속 절차가 없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학교에 딥페이크 TF까지 꾸리며 나선다는데 피해자에게 도움이 되는 변화는 없다”고 비판했다.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교내 경각심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특히 피해자에 대한 익명 보장이 허술해 2차 피해까지 속출했다. 김씨는 “한 동료 교사는 제 실명을 거론하면서 이번 사건을 학생들에게 누설하기도 했다”며 “제가 너무 지쳐 이사를 결심했다는 등 사실과 다른 소문까지 퍼지면서 심적으로 더 힘들어졌다”고 호소했다. 이어 “학교 측은 제가 SNS에 남들 보라고 올린 사진을 그 (가해) 학생이 퍼나른 것뿐이라는 분위기”라며 “저는 분명히 성범죄라고 느끼고 있는데 남들은 그렇지 않더라”고 털어놨다.

김씨는 또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시켜주길 바라지만 (학교는) 그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며 “특히 피해 학생 중에는 B군과 같은 반인 여학생도 있는데, (B군이 등교 중지 조치가 끝나고) 돌아오는 상황에 대해 굉장히 두려워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해당 사건의 경우 B군이 의뢰한 성착취물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다. 텔레그램 운영자가 제작한 성착취물은 주로 개인 대화방을 통해 배포됐는데, 현재 B군이 ‘지인 능욕’을 의뢰한 사실만 확인됐고 합성물에 대한 증거가 없는 것이다. 이에 따라 B군에 대해 모욕죄 등 혐의는 성립될 수 있으나 디지털 성범죄 혐의로는 처벌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와 관련해 김씨는 휴대전화 압수수색 등 경찰 수사가 더디게 진행된 점을 지적했다. 그는 “만약 경찰이 가해자를 검거하고 바로 휴대전화를 압수했다면 합성물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사건을 신고한 뒤 경찰에 여러 차례 (가해자) 포렌식을 요청했는데 1~2주가 지난 후에야 시도했고, 가해자는 그새 휴대폰을 없앴다”고 주장했다.

학부모단체가 9월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딥페이크 성범죄 근절 및 근본적 종합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학부모단체가 9월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딥페이크 성범죄 근절 및 근본적 종합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딥페이크 공화국’ 된 한국…해외는 어떨까

단 1분이면 만들어지는 딥페이크 성착취물, 피해자는 전국적으로 수천 명에 달한다. 경찰청이 딥페이크 성범죄 집중단속을 시작한 지 단 5일 만에 118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검거된 피의자 7명 중 무려 6명이 10대다. 이미 학생들은 “까불면 너도 능욕해 버린다”는 무서운 농담을 거리낌 없이 주고받고 있고, 학부모들은 “내 아이가 피해자도 가해자도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졌다. 텔레그램을 통해 대놓고 일어나는 범행에, 걸리더라도 처벌은 ‘솜방망이’다.

한국은 ‘딥페이크 성범죄 취약국 세계 1위’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가장 큰 이유로 처벌 공백이 꼽힌다. 현재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처벌 규정은 2019년 ‘N번방’ 사건 이후 만들어진 ‘성폭력처벌 특례법 14조 2항’뿐이다. 이 조항은 특정인의 얼굴·신체·음성을 대상으로 한 영상물 등을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하는 형태로 편집·합성·가공하는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다만 지난 5년간 딥페이크 성범죄로 기소된 71건 가운데 35건은 집행유예에 그쳤다.

심지어 합성물을 유포할 목적이 입증되지 않으면 처벌하기가 어렵다. 시청 및 소장은 처벌 조항조차 없다. 왜 그럴까. 해당 법안이 만들어진 4년 전 국회 회의록을 들여다봤다. 입법 당시 ‘유포 목적이 입증됐을 때로 처벌을 제한하는 건 협소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유명인들 놓고 혼자 작업할 수 있는데 처벌이 너무 과하다” “예술작품이라 생각해 만들 수 있지 않냐”는 반박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N번방’ 사건의 중대성을 두고도 딥페이크 성범죄의 잠재적 위험을 도외시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반면 해외에서는 딥페이크 성착취물에 대해 훨씬 엄격한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딥페이크 성착취물의 공유·유포 여부와 상관없이 제작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또 유죄 판결을 받을 시 ‘무제한 벌금(unlimited fine)’과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미국은 피해자에 초점을 둔 민사 구제책을 시행 중이고, 독일은 지난 7월 형법 개정안을 발의해 딥페이크로 인한 인격권 침해와 처벌 규정을 강화했다. 특히 범죄 예방 및 증거 보전을 위해 범행에 사용된 장비를 몰수하는 조항도 포함됐다.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97 경찰청 전경 ⓒ시사저널 최준필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97 경찰청 전경 ⓒ시사저널 최준필

한편 윤석열 정부는 텔레그램과의 협의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불법 정보에 대한 자율 규제를 위해 ‘상시 핫라인’을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은 TF를 꾸리고 한동훈 대표가 강조해온 촉법소년(형사 처벌을 안 받는 10세 이상 14세 미만) 연령 기준 하향, 허위영상물 처벌(최대 징역 5년)을 불법 촬영물 처벌(최대 징역 7년)에 준하는 수준으로 강화하는 방안 등을 논의할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조인철 의원이 가해자 처벌 및 플랫폼 책임 강화를 담은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나섰다.

이에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시사저널에 처벌 강화만큼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보호관찰법상 딥페이크 성범죄 피의자에게 심리상담 명령 등 준수사항을 추가할 수 있다”며 “범죄의 피해 양상을 정확히 인지시키고, 잘못을 뉘우치도록 하는 실질적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피해자들에 대해선 “‘피해 영향 진술서’를 법원에 제출해 가해자의 처벌 수위를 높이거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아내도록 시도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