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사위 항공사 특혜 채용 의혹’ 수사 3년째…딸 다혜씨 압수수색으로 ‘문재인 뇌물죄’ 수사 공식화
대가성·직무 관련성·부정청탁 등 뇌물죄 구성요소 성립 논란…압수수색 적법성도 쟁점
전임 대통령의 ‘아픈 손가락’이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다. 검찰은 8월30일 문재인 전 대통령의 딸 문다혜씨의 서울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했다. 문 전 대통령의 전 사위이자 문씨의 전남편인 서아무개씨의 항공사 특혜 채용 의혹을 밝혀내기 위한 일환이다. 그런데 압수수색영장에 문 전 대통령이 뇌물수수 피의자로 적시된 사실이 알려지며 분위기가 급박하게 돌아갔다. “잊히고 싶다”며 초야로 떠난 퇴임 2년 차 대통령이 혐의를 쓴 채 정국의 뇌관으로 부상한 것이다. 야권은 “정치보복” “논두렁 시계 2탄”이라며 수사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했다. 반면 검찰은 입장문까지 내며 수사는 정당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쟁점들이 생겨났다. 사법 논리의 적절성과 압수수색의 적법성 등이다. 핵심 쟁점 세 가지를 따져봤다.
우선 이번 사안은 뇌물의 성격과 전달 과정이 뚜렷한 단순 뇌물 사건이 아니다. 문 전 대통령이 뇌물수수 피의자로 규정되긴 했지만, 지금까지 문 전 대통령이 금품이나 그에 준하는 이익을 직접 받았다는 정황은 나온 바 없다. 검찰이 지목한 금품의 직접 수령자는 엄연히 서씨다. 이번 사안이 지금까지 오게 된 것도 2021년 제기된 서씨의 ‘타이이스타젯 특혜 채용 의혹’이 출발점이었다.
쟁점① 문재인과 딸은 ‘경제공동체’?
해당 의혹의 골자는 이상직 전 의원이 2018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중진공) 이사장에 임명된 대가로 그가 실소유한 태국 저가항공사 타이이스타젯에 서씨를 부당 취업시켰다는 것이다. 검찰은 타이이스타젯이 서씨에게 지급한 월급과 주거비 등이 총 2억2000여만원에 달한다고 파악했다. 이는 문씨 가족의 태국 생활비와 자녀 학비로 쓰였다. 이 돈이 사실상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이 전 의원의 뇌물이라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그런데 이 돈을 뇌물로 규정하려면 입증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뇌물이란 한마디로 직무에 관한 불법적 대가다. 즉 ‘대가성’과 ‘직무 관련성’이 핵심 요소다. 또 뇌물 전달을 중재한 피의자는 문 전 대통령이고 뇌물을 수취한 사람은 서씨이므로, 적합한 죄명은 제3자 뇌물공여죄로 볼 수 있다. 이것이 성립하려면 ‘부정한 청탁’이 추가로 증명돼야 한다.
당초 이 전 의원은 타이이스타젯과의 관계조차 부인했다. 하지만 전주지방법원이 지난 1월 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의원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면서 소유 관계가 사법적으로 입증됐다. 다만 검찰은 인사 청탁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적 근거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검찰은 제3자 뇌물공여죄 적용을 검토하다가 방향을 튼 것으로 전해진다. 새롭게 적용을 검토 중인 논리는 ‘경제공동체’다.
경제공동체는 법적 정의가 확립된 개념은 아니다. 대신 판례에 자주 등장한다. 주로 가사사건에서 이익을 공유하는 부부 사이가 경제공동체로 판단된다. 이 개념이 널리 알려진 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재판 때다. 2019년 대법원은 박 전 대통령과 최서원씨(개명 전 최순실)를 경제공동체로 인정했다. 이에 따라 최씨가 받은 34억원 상당의 말 3필은 곧 박 전 대통령이 받은 뇌물이 됐다.
만약 문 전 대통령과 딸 부부도 경제공동체 개념으로 엮을 수 있다면, 검찰은 이 전 의원의 청탁 여부에 대한 입증 책임을 덜게 된다. 이 경우 묵시적 청탁도 유죄의 근거가 된다. 그러나 경제공동체 논리를 끌어오는 데는 난관이 있다. 다혜씨 부부는 경제적으로 독립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아들이 화천대유에서 50억원을 받아 뇌물죄로 기소된 곽상도 전 의원에 대해서도 법원은 “아들이 독립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했다.
문 전 대통령은 2020년 12월 재산 내역을 신고할 때 다혜씨에 대해 ‘독립생계 유지’를 이유로 고지를 거부했다. 서씨는 타이이스타젯 취업 전에 게임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검찰은 ‘독립생계’ 주장을 깨는 데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문 전 대통령이 다혜씨 부부의 생활비를 지원하다 서씨의 타이이스타젯 취업 이후 중단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대법원은 공무원이 다른 사람의 생활비를 부담하다가 그 사람이 뇌물을 받음으로써 지출을 면하게 됐다면 단순수뢰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본다.
쟁점② 사위가 받은 급여가 ‘뇌물’?
검찰이 경제공동체 논리를 빌려 뇌물죄 적용을 시도한다 해도 넘어야 할 단계는 또 있다. 뇌물죄의 본래 성립 요소인 대가성과 직무 관련성이다. 지금까지 검찰의 수사 상황으로 보면, 대가성의 경우 일부 개연성을 부여하는 정황이 있다. 서씨의 타이이스타젯 채용을 둘러싸고 석연치 않은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우선 서씨의 급여를 차치하더라도, 그는 항공업 관련 경험이 전혀 없는데 타이이스타젯에 상무로 들어갔다. 이에 대해 문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윤건영 의원은 “타이이스타젯은 항공회사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는 9월3일 MBC라디오에 출연해 “태국에서 항공권을 판매하는 직원 4~5명의 아주 작은 회사”라고 말했다.
윤 의원이 언급한 회사는 정확히 ‘이스타젯에어서비스’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시사저널은 2021년 5월 타이이스타젯 감사보고서와 현지 기사 등을 단독으로 인용 보도한 바 있다. 여기에 따르면, 이스타젯에어서비스는 이스타항공의 태국 티켓 총판회사로 타이이스타젯의 지분 99.95%를 보유했다. 타이이스타젯은 보잉 737-800기를 리스로 운항하고 태국 민간항공국(CAAT)으로부터 승인을 받은 정식 항공사다. 즉 두 곳은 별개의 회사로, ‘서씨가 항공사에 무경력으로 뽑혔다’는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문제는 직무 관련성이다. 문 전 대통령에게 뇌물죄를 적용하려면 그가 최고 인사권자로서 이 전 의원의 중진공 이사장 선임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확인돼야 한다. 중진공 이사장직은 대통령이 임명권을 행사하지만 후보군은 임원추천위원회를 거쳐 중기부가 제청하게 돼 있다.
이사장 임명 경위를 밝히기 위해 검찰은 조현옥 전 청와대 인사수석을 입건(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하고 임종석 전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두 사람은 비공식 회의에서 이 전 의원 내정을 결정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또 검찰은 문재인 청와대에서 민정수석을 지낸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도 8월31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했다. 그러나 임 전 실장과 조 대표 모두 진술을 거부해 수사는 난항을 겪고 있다. 이사장 임명 의혹은 뇌물죄를 밝힐 대가성의 한 축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증거 보강이 필요한 부분이다.
일각에선 검찰이 ‘포괄적 뇌물죄’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추측도 제기된다. 이는 1997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 공판 때 대법원이 인정한 죄목이다. 당시 대법원은 “뇌물은 대통령의 직무에 관해 공여되거나 수수된 것으로 족하고 개개의 직무행위와 대가적 관계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판시했다. 대통령에 한해 대가성과 직무 관련성을 폭넓게 허용할 수 있다는 판례다.
하지만 이를 적용하는 데 따르는 후폭풍은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인은 “포괄적 뇌물죄는 마치 데우스 엑스 마키나(문학에서 결말을 짓기 위해 등장하는 개연성 없는 사건)와 같은 급진적 개념”이라며 “군사정권에서 수천억 뇌물을 받은 전두환·노태우를 옭아맨 논리를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적용하는 건 무리한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쟁점③ 검찰이 가져간 ‘태블릿’은 누구 것?
이번 수사와 관련해 불거진 또 다른 쟁점은 압수수색의 적법성이다. 이는 정치보복 논쟁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불을 지핀 결정적인 계기는 압수수색 물품 목록이었다. 처음 공론화한 사람은 윤건영 의원이다.
1월16일 검찰은 서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타이이스타젯 채용 과정에 대가성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취지에서다. 다음 날 윤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아들이 사용하는 게 명백한 태블릿까지도 압수수색을 했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이후 8월30일 문씨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지자 윤 의원은 다음 날 페이스북에 “초등학생 아이의 아이패드를 압수하는 게 상식입니까”라고 다시 지적했다. 검찰은 매번 ‘그런 적 없다’고 부인하다 9월1일 재차 입장문을 냈다. “자녀 교육용임이 확인된 태블릿은 처음부터 압수를 한 바 없다”는 게 요지다.
양쪽의 설명을 종합해 보면, 서씨 자택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나온 태블릿은 총 3대다. △외관상 교육용이 명백한 학습패드 △화웨이 태블릿 △아이패드 등이다. 이 중 검찰이 압수하지 않았다는 것은 학습패드고, 압수한 건 아이패드다. 윤 의원은 아이패드에 대해 “(문 전 대통령) 손자가 사용했던 사실이 분명히 확인됐음에도 태블릿 내 메일이 문씨 계정으로 로그인돼 있다며 압수해 갔다”고 지적했다. 검찰도 이에 대해서는 “문씨의 이메일 등이 저장돼 있어 사건 관련성이 인정된 매체”라고 밝혔다. 같은 행위를 놓고 서로 압수품과 미압수품에 초점을 맞춰 얘기한 셈이다.
그렇다면 아이패드 압수는 적법했을까. 영장 업무를 전담했던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아이패드에 문씨의 사용 기록이 남아있다면 검찰은 사건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해 압수 필요성을 주장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다만 아이패드를 이용해 이메일 내용이나 클라우드 데이터를 우회 입수하려 했다면 영장에 적시하지 않은 이상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윤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영장에는 그런 내용(이메일 등 데이터 압수 목적)이 전혀 적혀 있지 않았다”며 “게다가 압수수색 대상은 서씨인데 문씨 관련 정보를 통보도 없이 가져간다는 건 위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