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공정위 조사로 하이트진로 위장계열사 6곳 실체 드러나
연암·대우화학·대우패키지 등 계열 편입 이후에도 일감 몰아주기 지속돼 논란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국은 2021년 6월 박문덕 하이트진로그룹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박 회장이 대기업집단 지정을 위한 자료를 공정위에 제출하면서 친족회사 6곳을 고의로 누락했기 때문이다. 공정위 측은 “친족 은폐 등의 방법으로 규제기관이나 시민단체가 위장계열사의 존재를 확인하기 어렵게 했다. 덕분에 이들 회사는 사익편취 규제 대상 회사에서 제외된 상태로 장기간 내부거래를 할 수 있었다”면서 “동일인(박문덕 회장) 역시 법 위반행위를 인지했을 가능성이 현저하고 그 중대성 또한 상당한 만큼 고발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위장계열사 문제로 박문덕 회장 벌금형
그해 10월 검찰은 박 회장을 약식 기소했다. 이후 진행된 재판에서도 박 회장은 1억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하이트진로그룹은 후속 조치를 단행했다. 문제가 된 회사들을 하이트진로그룹 계열로 편입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 회사가 계열사에 편입된 후 내부거래는 더 늘어난 것으로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됐다. 친족회사를 보고에서 누락하고 내부거래를 해서 총수가 검찰조사를 받고, 법원에서 벌금형까지 선고받은 회사를 계열사에 편입한 후 일감 몰아주기를 계속해온 셈이다.
박문덕 회장의 친조카인 박세진 대표가 지분 100%를 보유한 연암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9월말 기준으로 이 회사는 181억16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중 79억3500만원의 매출이 하이트진로 계열사들의 일감 지원을 통해 나왔다. 내부거래 의존도는 43.8%다. 지난해 같은 기간 내부거래 규모가 34.1%(매출 178억139만원-내부거래 60억7581만원)인 점을 감안할 때 10% 정도 증가한 셈이다.
이런 흐름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시사저널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올라온 연암의 감사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연암은 지난해 10월부터 하이트진로 및 하이트진로음료 등과의 수의계약을 통해 78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 감사보고서가 나오기 전이어서 거래 의존도를 확인할 수 없지만, 물량 면에서 이미 지난해 수준을 넘어선 상태다. 주목되는 사실은 이 회사가 2021년 이후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적자로 전환됐다는 점이다. 하이트진로그룹의 일감 몰아주기가 없었다면 영업적자 폭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박 회장의 조카인 박세진 대표는 급여와 함께 회사에서 지급한 배당수익까지 챙기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공정위가 위장계열사로 지목한 대우화학과 대우패키지, 대우컴바인 등도 하이트진로 계열에 편입됐다. 이들 회사는 박문덕 회장의 고종사촌인 이상진씨와 자녀들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하이트진로그룹 계열사와 내부거래가 많았다. 대우화학의 경우 지난해 하이트진로그룹 계열사와의 수의계약을 통해 1분기에 26억2000만원, 2분기 36억3700만원, 3분기 8억6500만원과 4억5800만원 등 75억8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하이트진로그룹과의 내부거래를 통해 이미 전년 매출(71억원)을 넘어선 상태다.
대우패키지와 대우컴바인도 마찬가지다. 대우패키지는 2023년 10월 대우컴바인을 흡수합병했다. 이후 공시를 통해 하이트진로와 수의계약으로 16억900만원, 하이트진로음료에서 12억16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밝혔다. 합병 전 대우컴바인의 내부거래 물량은 더 많았다. 하이트진로음료와 1월에 12억8000만원, 3월에 각 18억9000만원과 15억6500만원, 6월에 각 16억6900만원과 17억5100만원의 물품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하이트진로 계열의 내부 일감만 109억8800만원으로 전체 매출(191억990만원)의 57.2%에 이른다. 이런 실적을 바탕으로 대우패키지는 지난해 배당액을 두 배로 늘렸다. 늘어난 배당수익이 오너 일가에 넘어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하이트진로 “계열사라고 거래 중단은 역차별”
이와 관련해 하이트진로그룹 측은 “연암이나 대우화학 등과는 비즈니스 파트너로 정상적인 납품 관계다”고 설명했다. 그룹 관계자는 “공정위는 계열사 누락에 따른 후속 조치로 대우화학 등과 부당한 내부거래가 없었는지 2년여에 걸쳐 강도 높게 조사했지만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면서 “이들 회사와의 거래는 영업상 필요에 따른 것으로 판단해 무혐의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계열 편입에 누락된 회사들은 우리 그룹과 영업상 필요에 의해 오래전부터 거래해 왔다. 관련 설비의 전문성 역시 갖추고 있다”면서 “같은 계열이라는 이유로 거래에서 배제시킬 경우 오히려 역차별이 되고, 그룹의 생산관리 리스크도 가중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관련 시스템을 개선하는 등 재발 방지 노력도 하고 있다고 한다. 앞서 관계자는 “대우화학 등의 오너는 (박 회장과) 먼 친척 관계로 그룹 간에 연관성이 없다”면서 “그룹은 공정위 고발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한 리스크관리위원회와 ESG위원회를 신설한 만큼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하이트진로그룹과 친족회사 간의 거래 증가에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린다. 현행법상 오너 일가 지분이 20%를 넘는 계열사뿐 아니라 자회사(지분 50% 이상)까지도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대우화학 등의 경우 박문덕 회장의 친족회사이기 때문에 규제 대상은 아니지만 의혹의 시선은 여전하다. 계열사 합병이나 오너 일가의 지분 매각 등을 통해 어떻게든 내부거래를 줄이고 있는 최근 재계의 흐름과 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세금 없는 부의 대물림’ 여부가 관건
무엇보다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일고 있는 회사들은 설립 때부터 하이트진로그룹의 일감을 지원받으며 성장해 왔다. 이면에는 오너 일가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하이트진로음료는 2016년 4월 설립된 대우컴바인(현 대우패키지)의 자금 지원을 위해 거래계약을 체결했다. 이 결정을 내리는 데 든 시간은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고, 이후 내부거래 비중이 급격히 상승했다. 하이트진로음료는 2006년 대우패키지와 대우컴바인이 제품을 생산·납품할 수 있도록 자사의 사업장 부지도 대여해 줬다. 다른 납품업체에는 적용하지 않는 방식이어서 형평성 논란이 예상된다.
익명을 요구한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국세청이나 공정위가 일감 몰아주기 조사를 하면서 가장 눈여겨보는 것이 ‘세금 없는 부의 대물림’ 여부다. 회사의 필요에 의해 법인을 설립하거나 거래처를 확대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거래에 편승해 오너 일가가 이익을 얻게 된다면 문제성 거래로 인식한다”면서 “연암이나 대우화학, 대우패키지 등도 회사 오너들의 논리에 의해 하이트진로 협력업체로 선정되고, 내부거래를 통해 성장하면서 오너 일가가 배당이나 지분 차익을 거둔 만큼 문제가 있다고 본다. 어떤 식으로든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