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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 지지층에서 발화→김민석·김병주 재점화→이재명 공식화
野 제기한 정황 주장들, 여권·언론에 의해 하나씩 격파돼…“민주당 현주소 보여줘”

“최근 계엄 이야기가 자꾸 나온다. 종전에 만들어졌던 계엄안을 보면 계엄 해제를 국회가 요구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회의원을 계엄 선포와 동시에 체포·구금하겠다는 계획을 꾸몄다는 이야기도 있다. 완벽한 독재국가 아닌가. 이런 문제에 대해 우리가 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9월1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의 여야 대표회담 공개발언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김민석·김병주 최고위원 등 민주당 일각에서 제기하던 윤석열 정부의 ‘계엄령 준비설’이 정국의 중심으로 단번에 올라서며 파문이 일파만파 커지게 된 순간이다. 충격적인 메시지(계엄령 준비설)가 강력한 메신저(제1야당 대표)를 통해 국민과 언론이 주목하던 공식적인 자리에서 발신됐다. 

대한민국은 계엄과 관련해 뼈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군이 체포·구금, 언론·출판·집회·결사 등을 통제할 수 있다. 정부 수립 이후 비상계엄은 총 9차례 선포됐는데, 비상사태에 최후의 수단으로 군이 개입해 국가와 국민을 지키라는 취지와는 반대로 군사정권이 유신 선포 등에 반대하는 국민을 탄압하는 데 악용됐던 역사가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8월2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8월2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계엄을 ‘아니면 말고’ 식으로 던진 민주당

논란은 바로 여기서 시작됐다. 메시지와 메신저의 상승효과에 역사적 상흔이라는 무게감까지 고려해 보면, 여론과 언론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계엄설에 대한 충분한 근거를 곧 제시할 것이라고 봤다. 그런데 수일이 지나도록 민주당은 “각종 제보를 받았다” “정황 제보가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물론 이 대표까지 나서 국민적 의구심을 증폭시켰는데, 정작 구체적 근거를 내놓지 못한다면 여론의 거센 역풍에 직면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민주당이 근거를 내놓지 못하자 여권은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며 연일 맹폭 중이다. “무책임한 선동이 아니라면 당대표직을 걸고 말하시라”(정혜전 대통령실 대변인, 9월2일), “거짓말이면 이건 국기문란에 해당”(한동훈 대표, 9월2일)에 이어 “나라를 뒤흔드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민주당식 괴담 정치”(추경호 원내대표, 9월3일) 등 날 선 발언이 쏟아지고 있다.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은 9월4일 “국회가 이성을 되찾고 정상화되기 전에는 대통령께 국회에 가시라는 말씀을 드릴 자신이 없다”는 말까지 했다. 윤 대통령의 국회 개원식 불참의 책임을 근거 없는 계엄령 주장을 내놓은 민주당 탓으로 돌린 것이다.

연일 ‘계엄’을 외치며 윤 대통령을 공격하던 민주당은 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당 안팎에서 커지자 슬그머니 발을 빼고 있다. ‘경고 차원’ ‘예방주사’ 등이라며 말을 바꾼 것이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당이 계엄 의혹을 제기한 것은 ‘설마’ 하는 주장들이 비상식적이고 비민주적인 현 정부에서는 가능할 수 있다는 ‘만에 하나라도 경계하자는 차원’의 성격이 짙었다고 본다”며 “이런 우려를 갖고 있는 국민에게 제1야당이 정부를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각인시키려는 예방적 필요가 있었다”고 했다. 

실제 민주당 지도부는 9월3일 이후 당 공식 회의나 논평에서 계엄령 관련 발언을 내놓지 않는 모습이다. 취재에 따르면, 당내에서조차 ‘음모론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우려가 상당했다. 특히 ‘정황 증거’ 외에 국민과 언론에 공개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구체적 물증’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후퇴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상당했다고 전해진다. 또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로 대표되는 의료 대란으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추락하고 있는 시점에 불필요하게 역공의 빌미만 제공했다는 자책도 나왔다고 한다.

그간 민주당이 계엄 준비설의 정황으로 제시한 것은 크게 세 가지다. ①‘충암고 사단’ 전진 배치(대통령과 같은 고교 출신들을 군 요직에 발탁) ②‘반국가세력’ 논란(최근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언급) ③박근혜 정부에서 작성됐던 계엄문건(박 전 대통령 탄핵 직전 국군기무사령부가 당시 조현천 사령관 지시로 작성한 계엄령 검토 문건) 등이 바로 그 정황들인데, 민주당은 이 세 정황을 증거나 논리적 연결고리 없이 계엄령 준비설로 이어붙이는 모습을 보였다. 별개의 정황들을 엮어 가상의 시나리오를 만들고 여기에 살을 붙여 확대 재생산한 셈인데, 여권에서는 이를 두고 전형적인 음모론의 생산·유포 방식과 같다는 비판도 내놓고 있다. ‘괴담 선동’이라는 지적이다.

 

“尹 정부에 ‘반민주’ 이미지 덧칠 효과 노렸다”

실제 여권과 언론 등을 통해 민주당의 주장들은 하나씩 격파당하는 모습이다. 민주당은 충암고 출신들이 계엄령과 관련된 군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충암고 출신 장성은 전체 400명 중 4명에 불과하다. 또 만에 하나 정부가 계엄령을 발동한다고 해도 헌법상 국회가 재적 과반수 찬성으로 해제를 요구하면 계엄은 즉시 해제된다. 민주당 포함 야권은 현재 국회 300석 중 192석을 차지하고 있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해도 바로 국회에서 해제되는 셈이다. 이를 막기 위해 야당 의원들을 체포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는데, 의원 체포엔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 민주당이 다수당인 상황에서 가능하지 않은 시나리오다.

윤 대통령의 ‘반국가 세력’ 발언도 그 자체만으로는 계엄 준비설에 대한 근거로 보기에는 빈약하다는 평가가 많다. 박근혜 정부에서 작성됐던 군의 계엄 검토 문건은 사법적으로 유효하지 않았다는 평가로 귀결됐다. 즉 명확한 증거가 없다면, 추경호 원내대표의 지적처럼 “‘그때 검토했으니 지금도 그럴 것’이라는 수준의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대표와 민주당은 왜 계엄설을 이런 식으로 제기했을까. 가장 많이 나오는 해석은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및 위증교사 혐의 재판 선고를 앞두고 자극적인 주장으로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에 ‘독재와 반민주’ 이미지를 덧칠하는 효과를 노렸다는 해석도 나왔다. 민주당에서 전략통으로 불리는 한 관계자는 “민주당이 현 정부에 ‘계엄’을 할 수도 있을 만큼 ‘반민주적인 정부’라는 이미지를 덧칠하는 효과를 노렸다고 봐야 한다”며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로 유명한 프레임 전략처럼 이제 국민은 현 정부가 ‘오버’할 때마다 ‘계엄’ 혹은 ‘반민주’ ‘독재’ 등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논란이 민주당의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진단도 나왔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는 “민주당의 계엄 주장은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라며 “음모론에 둘러싸인 강성 지지층, 강성 지지층에 둘러싸인 민주당, 음모론을 상호작용하며 확대 재생산하는 현 민주당의 주소를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이 대표는 정밀한 계산을 하고 의제를 던지는 스타일이 아니라 던져 놓고 여론의 반응을 보며 전진과 후퇴를 결정하는 타입”이라면서 “최근 정국을 주도하는 이 대표의 자신감과 캐릭터가 잘 드러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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