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이 추천한 이원석 총장과 용산 간 갈등의 골 깊어져
이 총장, ‘명품백’ 수사심의위·수사지휘권 재요청 등 고심
헌정 사상 첫 현직 영부인의 비공개 소환조사와 관련한 후폭풍이 거세다. 이원석 검찰총장에게 사전 보고되지 않은 김건희 여사의 조사 방식 등이 결국 대통령실의 의중인 것으로 파악되면서, 지난해부터 불거진 ‘대통령실-검찰’ 갈등이 재점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장은 ‘윤석열 사단’이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추천으로 검찰 수장이 된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친윤 검사’로 분류됐었다.
그런 이 총장이 김 여사 수사를 계기로 윤석열 대통령과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윤 대통령의 검찰총장 시절 대변인으로 활동한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과의 갈등 국면도 난관이다. 검찰 안팎에서 “검찰이 두 쪽으로 선명하게 갈라진 형국”이라는 뒷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다만 이 총장은 김 여사 조사와 관련한 ‘총장 패싱’ 사태에서 확전을 피했다. 대검 감찰부에 진상 파악을 지시하면서도 이 지검장의 요청을 수용해 “수사에 피해가 안 가는 선에서 한다”는 방침을 굳혔다. 진상조사에 대한 항의성 사표를 낸 수사팀 검사를 설득해 복귀시키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총장 주변에선 “무혐의가 유력한 명품백 사건을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에 회부할 것으로 보인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도이치모터스 사건에서 배제된 수사지휘권 복원 역시 박성재 법무부 장관에게 다시 요청할 것으로 점쳐졌다.
윤 대통령, 서울중앙지검장 때 총장 치받아
이번 검찰 내홍을 두고 2017년을 떠올리는 법조계 인사가 적지 않다. 문재인 정부 시절 동시다발적으로 시작된 적폐 수사와 관련한 ‘문무일-윤석열 대립 사태’가 2024년 재현됐다는 것이다.
국정농단 사건을 계기로 권력을 잡은 문재인 정부에선 ‘적폐 수사’가 휘몰아쳤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7년 5월 칼자루를 쥘 서울중앙지검장을 깜짝 발탁했다. 당시 대전고검 검사이던 윤석열 대통령이다. 간부급 인사도 아닌 검사가 최대 검찰청의 수장이 된 것이다. 윤 대통령은 2013년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특별수사팀장 시절에 사건을 은폐하려는 검찰 수뇌부와 마찰을 빚은 인물로 각인돼 있었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긴 그는 박근혜 정부에서 결국 좌천됐다. 그런 검사가 돌아왔다. 이후에야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명됐다. 법무부 장관이 검사장급 인사를 하려면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검찰총장 공석 시기에 발탁된 서울중앙지검장은 대통령의 의지로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적폐 수사를 두고 검찰 수뇌부 사이에 이견이 노출됐다. 검찰총장(문무일)이 “적폐 수사의 연내 마무리”를 지시하면, 서울중앙지검 측은 “시한을 정해 두고 수사하기 어렵다”고 맞받았다. 급기야 서울중앙지검의 ‘총장 패싱’ 사태에 이르렀다. 서울중앙지검은 2017년 11월 김관진 전 국방장관 등의 구속적부심 석방 결정을 한 법원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대검찰청을 향한 사전 보고는 없었다.
서울중앙지검 입장은 사실상 당시 중앙지검장이던 윤 대통령의 입장과 같다. 그런데 검찰이 법원을 비판하는 입장을 내면서 대검을 ‘패싱’한 것이다. 이외에도 적폐 수사와 관련해 서울중앙지검의 검찰총장 패싱은 수차례 이어졌다. 검찰 내 불편한 기류가 여과 없이 드러났다.
이로부터 7년 후 검찰 내 갈등의 역사가 반복된 모습이다. 이번에는 김건희 여사의 수사 문제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현직 영부인 조사’라는 주요 사건을 사전 보고조차 받지 못한 것이다. 이창수 중앙지검장이 이 총장에게 유선 보고한 때는 조사 시작(7월20일 낮 12시30분경) 이후 10시간이 흐른 오후 11시10분경이다. ‘사후 보고’인 셈이다. 이마저도 이 총장은 주변에 “이건 ‘보고’가 아니라 ‘통보’였다”며 상당한 불쾌감을 표출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 지검장이 조사 방식이나 내용 등을 구체적으로 보고한 형식이 아닌 ‘일방적’ 보고였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실제로 이 총장은 이날 격노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총장은 그동안 “수사에는 성역이 없다”고 밝혀왔다. 지난 5월 법무부의 검찰 인사에서 ‘검찰총장 패싱’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인사는 인사, 수사는 수사”라며 성역 없는 수사 방침을 천명했다. 이 총장은 ‘중도 사임설’을 일축하고 주요 사건들을 챙기며 흔들림 없는 철저 수사를 강조했다고 한다. 9월 임기 만료 이전에 주요 수사를 마무리 짓겠다는 의지 역시 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성역 없는 수사의 바로미터는 결국 김 여사 소환이다. 이 총장은 김 여사를 검찰청으로 불러 조사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와 비공개 조사는 대비되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의 ‘과한’ 배려는 특히 논란거리다. 대통령실이 피의자 신분인 김 여사의 조사 장소부터 요일·시간 선정 등을 주도한 상황에서 수사검사들이 휴대전화 등을 제출한 사실까지 알려진 것이다. 검찰 안팎에선 “현직 영부인의 보안 문제상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가 아닌 ‘제3의 장소(실제로 조사가 이뤄진 장소는 종로구 소재 대통령경호처 부속청사)’에서 조사할 수는 있다”면서도 “그러나 조사 시 휴대전화를 반납한 전례는 있던 적도 없고 있을 수도 없다”는 비판이 거세다. 조사 내용의 녹음이나 녹화 여부도 불분명하다. 서울중앙지검 측은 이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김 여사 불기소 될 경우 비공개 조사 큰 논란거리 될 것”
현재 검찰의 내홍은 일단 봉합된 것으로 보인다. 이원석 총장의 진상조사 지시, 이에 반발한 수사팀 검사의 사표 제출과 반려 등 일련의 사태가 더 확대되지는 않았다. 이 총장이 “수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진상 파악을 늦춰 달라”는 이창수 지검장의 요청을 일부 수용하면서다. 이 총장은 주변에 검찰 조직의 안정을 강조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도이치모터스·명품백 사건의 불기소 처분이 예상되는 점은 난관이다. 법조계에선 검찰이 이와 관련해 김건희 여사를 재판에 넘기기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명품백 수수 의혹(청탁금지법 위반)과 관련해선 “배우자 처벌 규정도 없다”는 것이 법조계 중론이기도 하다. 검찰 출신 법조계 관계자는 “김 여사가 명품백 수수 문제로 도덕적 비난을 받을지언정 혐의를 적용해 기소할 수 없는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도이치모터스와 관련한 의혹 역시 김 여사의 계좌 동원 사실 등을 토대로 현직 영부인을 재판에 넘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상황이 이런 만큼 김 여사에 대한 조사라도 투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하지만 향후 김 여사를 불기소할 경우 비공개 조사는 큰 논란거리가 될 것”이라는 뒷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검찰 안팎에선 명품백 사건의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회부가 거론된다. 이원석 총장이 직권으로 수사심의위 소집을 지시하고, 이곳에서 김 여사의 기소 여부를 결론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총장은 지난 1월 이태원 참사 사건과 관련해서도 수사심의위 소집을 지시한 바 있다.
수사심의위는 학계·법조계·언론계·시민단체 등 각 분야 전문가 150명 이상 250명 이하의 위원으로 구성되는데, 총장이 직권으로 소집할 수 있다. 도이치모터스 사건은 소집 대상이 아니다. 이 총장에게 수사지휘권이 없는 데다 복원 요청도 박성재 법무부 장관에게 거부당했기 때문이다. 다만 명품백 사건은 이 총장의 수사지휘권이 있어 소집 대상이 될 수 있다. 한 관계자는 “실제로 명품백 사건을 수사심의위원회 안건으로 올릴지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도이치모터스 사건에서의 수사지휘권 복원 문제도 재점화할 수 있다. 앞서 이 총장은 박성재 법무부 장관에게 수사지휘권 복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박 장관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중앙지검이 당초 ‘검찰총장 패싱’ 사태와 관련해 설명한 입장 역시 ‘수사지휘권 문제’이기도 하다. “총장의 지휘권이 도이치모터스 사건에서 배제됐기 때문에 수사 진행 상황을 보고할 수 없게 돼 있다”는 것이 서울중앙지검 측 입장이다.
수사지휘권이 복원될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아 보인다. 총장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수사지휘권 박탈은 2020년 10월 문재인 정부의 추미애 법무부 장관 시절 결정됐다.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대통령이 배우자와 관련한 사건에서 수사지휘를 해선 안 된다는 논리였다. 이후 법무부는 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복원하지 않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시절에도 복원되지 않았고, 박 장관 역시 이를 유지하고 있다. “총장의 지휘권 복원도 극도로 제한적이 돼야 할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해당한다”는 것이 윤석열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이 공약으로 지휘권 발동을 하지 않겠다고 했고 법 개정까지도 이야기한 데다, 박 장관뿐 아니라 한 장관 시절에도 복원된 바 없다”며 실현 가능성을 낮게 판단하는 관측이 존재한다.
분명한 건 김 여사 조사를 계기로 ‘대통령실-검찰’ 갈등이 증폭됐다는 시각이 짙어졌다는 점이다. 이번 사태로 검찰 내부가 둘로 갈라졌다는 비판도 상당하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김 여사 소환조사를 두고 대통령실과 이견을 보였고, 당시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은 지난 5월 법무부의 검찰 인사에서 ‘좌천성 승진’ 격으로 부산고검장 인사 발령이 났다. 이는 김주현 민정수석 임명 직후 단행된 인사다. 이 과정에서도 이 총장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패싱’ 논란이 불거졌다. 일각에선 “한동훈 대표가 검찰총장으로 추천했다는 이 총장과 대통령실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그날 무슨 일이?…김건희 여사 비공개 소환조사 막전막후
김건희 여사의 비공개 소환조사를 둘러싼 검찰 내의 파열음은 표면적으론 사그라든 모습이다. 사건은 7월2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낮 12시30분경 김건희 여사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가 아닌 ‘제3의 장소’에서다. 이곳은 서울 종로구 소재 대통령경호처 부속청사였다.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은 이날 오후 11시10분에야 이원석 검찰총장에게 유선으로 조사 사실을 보고했다. 그는 이 총장이 격노하자 면담을 요청했지만 만남은 불발됐다. 7월21일 새벽 1시20분경 조사가 종료됐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오전 8시40분경 언론공지를 통해 김 여사에 대한 비공개 소환조사 사실을 공개했다.
이 총장은 7월22일 출근길에 김 여사 비공개 소환조사와 관련해 “(성역 없이 수사하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못 지켰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 지검장은 이날 오전 10시30분경 이뤄진 대면보고에서 이 총장에게 “제 불찰”이라며 여러 차례 사과했다고 한다. 이 총장은 그러나 한 시간 후쯤 대검 감찰부에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김 여사의 조사 전후 과정을 살펴보겠다는 의미다. 그러자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을 수사하던 김경목 부부장검사는 이날 오후 사표를 제출했다.
이 지검장은 하루 후 “대검 감찰부의 진상조사에 대해 협조하지 못한다”며 항의했다. 이 총장은 이와 관련해 김 검사 등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진다. 대검 측은 7월24일 오후 7시40분경 언론공지를 통해 “이 총장이 오늘 김 부부장검사에게 사직의사 철회와 복귀를 당부했고, 김 부부장검사는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와 처리를 위해 복귀하기로 했다”고 밝히며 논란은 일부 봉합됐다.
다만 수사팀이 7월25일 오전, 이 지검장이 조사 사실을 인지한 이후 3시간30분이 흘러서야 이 총장에게 보고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여진은 이어지고 있다. 수사팀은 이날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조사를 마친 후인 7월20일 오후 7시40분경 이 지검장 등 지휘부에 명품백 수수 의혹 조사 사실을 보고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대검 감찰부의 주요 조사 대상은 이 지검장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