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태양’ 尹·韓의 ‘오월동주’…‘러브샷’ 했지만 ‘허니문’은 없다
‘채 상병 특검법’ 첫 시험대…韓 ‘제3자 특검’ 발언 미묘하게 달라져
지켜야 하는 尹, 변화 강조하는 韓…韓, 윤심 대신 민심 보면 갈등 재현
오늘의 해가 지는 곳에서, 내일의 해가 뜬다. 정치도 그렇다. 국민의힘 7·23 전당대회는 대한민국의 권력 지도와 정치 지형을 바꾼 결정적 분기점이 됐다. 친윤(親윤석열)계 원희룡 후보가 낙선하면서 ‘현재권력’ 윤석열 대통령의 입지에는 금이 갔다. 반면 한동훈 신임 당대표는 압도적 당심으로 당권을 쥐면서 명실상부한 ‘미래권력’으로 우뚝 서게 됐다.
여권 내 권력의 추가 용산(대통령실)이 아닌 여의도(국민의힘)로 기울어진 가운데, 정치권에선 세 가지 시나리오가 언급된다. ①‘당심’을 읽은 윤 대통령이 한동훈 지도부에 전폭적인 힘을 싣거나 ②‘윤심’과 ‘당심’의 합치를 위해 한 대표가 친윤계와 타협하거나 ③‘민심’을 얻기 위해 한 대표가 대통령실과 충돌한 후 거리를 점점 벌리는 상황이다. 이제 막 당권을 쥔 한 대표에게 ①은 이상적이고, ②는 현실적이며, ③은 도박이다. 시나리오마다 얻게 될 ‘리턴’(이득)과 그에 따른 ‘리스크’(손실)는 다르다. 흔들리는 배에 올라탄 ‘오월동주’(서로 미워하면서도 공통의 어려움이나 이해에 대해서는 협력하는 경우) 윤석열과 한동훈, 정부·여당의 ‘신구 권력’은 과연 어떤 선택지를 집어들게 될까.
레임덕 위기 尹 대통령, ‘미래권력 한동훈’이 필요하다
그간 ‘한동훈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한 대표는 문재인 정부 시절 검찰에서 한직을 전전했다. 이른바 ‘조국 수사’를 이끈 영향이 컸다. 가시밭길을 걷던 한 대표를 구원한 이가 윤 대통령이다. 대권을 쥔 윤 대통령은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 한 대표를 지명했다. 20년 가까운 세월, 검찰에서 동고동락하며 쌓은 우애와 신뢰가 ‘파격 인사’의 배경이 됐다.
이후 한 대표가 여당의 총선 사령탑을 맡으며 ‘윤석열의 황태자’ 지위는 재확인됐다. 그러나 공고해 보였던 두 사람의 관계에 곧 금이 가기 시작했다. ‘형수’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논란에 ‘아우’ 한 대표가 ‘국민 눈높이’를 강조하며 대응한 게 화근이 됐다. 김 여사가 관련 논란에 대한 사과 의향을 한 대표에게 직접 전했으나 묵살됐고, 이를 안 윤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사실이 이번 전당대회 과정에서 밝혀지기도 했다. 결국 총선에서 대패했다. 두 사람의 관계도 루비콘강을 건넌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전당대회 후 상황은 급변했다. 친윤계 간판으로 나선 원희룡 후보, 당정 원팀을 강조한 나경원 후보의 공세에도, ‘당정 관계 수평 재정립’을 내세운 한 대표가 62.84%(32만702표)를 득표하며 압승했다. ‘총선 패배 책임론’ ‘김건희 여사 문자 묵살 논란’ ‘댓글팀 운영 논란’ 등에도 당원 대다수가 윤 대통령 대신 ‘한동훈 체제’를 택한 셈이다. 이로써 ‘당심=윤심’이라던 친윤계의 논리는 산산이 깨졌다. 이제 정치권에선 ‘윤석열의 운명’이 한동훈 손에 달렸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입법권력의 도움 없이 행정권력만으로 국정 성과를 내는 데에는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다.
이에 당정은 일단 ‘허니문’ 기간을 갖는 모습이다. ‘레임덕’ 위기에 직면한 윤 대통령에게도, 아직은 당내 세가 부족한 한 대표에게도 서로는 ‘불가근불가원’(가까이할 수도 멀리할 수도 없음)의 관계다. 당내에선 윤 대통령 임기가 3년가량 남은 가운데 서로가 각을 세우고 충돌하면 ‘보수 공멸’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언급된다. 이에 한 대표도 당선 후 첫 일성으로 “윤 정부는 이미 유능하다.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고 했다.
“잊자” 제안한 尹 대통령, “정권 재창출” 화답한 한동훈
윤 대통령도 화답했다. 윤 대통령은 전당대회 바로 다음 날(7월24일) 한 대표를 비롯한 신임 지도부와 대표 경선 출마자들, 주요 당직자들을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해 ‘삼겹살 만찬’을 가졌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공식적인 식사 자리는 한 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이던 1월29일 오찬 이후 약 6개월 만이다. 한 대표는 총선이 끝난 4월 중순 윤 대통령의 식사 제안을 건강상 이유로 거절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만찬을 시작하며 “당내 선거는 선거가 끝나면 다 잊어버려야 한다. 이제는 앞으로 어떻게 하면 잘할까 그것만 생각하자”고 단합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한 대표도 “윤석열 정부의 성공과 정권 재창출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윤 대통령은 한 대표와 ‘러브샷’을 해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을 통해 “우리가 앞으로 하나가 돼 한 대표를 잘 도와줘야 된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혼자 해결하도록 놔두지 말고 주위에서 잘 도와 달라”며 “여러분이 한 대표를 모시고 같이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시고, 상갓집도 가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만찬 자리에 함께한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핵을 가진 나라끼리는 전쟁을 벌여도 재래식 무기로 국지전을 벌이지, 핵을 갖고 전면전을 벌이지는 않는다”며 “‘윤·한 갈등’도 마찬가지다. 무한갈등으로 가면 공멸한다는 걸 누구보다 자신들이 제일 잘 알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윤 대통령이 몰락하면 결국 탄핵 정국으로 간다. 탄핵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가면 조기 대선인데, 그 길은 한 대표도 죽는 길이다. 대체 어느 국민이 탄핵당한 정당의 대선후보에게 표를 주겠나”라고 반문한 후 “한 대표에게도 윤석열 정부의 성공이 자신의 성공과 생존을 담보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세가 부족한 ‘당대표 한동훈’ , ‘현재권력 윤석열’이 필요하다
‘윤·한 갈등’은 이로써 봉합된 것일까. 확언하긴 어렵다. 금이 간 ‘20년 우애’가 ‘삼겹살 만찬’과 ‘러브샷’ 한 번으로 붙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당분간은 화해 무드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린다. 당장 한 대표가 여당 내 야당 역할에 집중할 가능성은 낮다는 얘기다.
당장 ‘비대위원장 한동훈’과 ‘당대표 한동훈’의 입지와 상황이 달라졌다. 총선 당시 한 대표는 중도층을 포섭해 외연을 확장해야 하는 숙제를 안았다. 한 대표는 대통령의 ‘역린’인 김 여사 문제를 언급하며 그 숙제를 풀려 했고, 이 탓에 대통령과의 거리가 벌어졌다. 그러나 총선이 끝난 지금, 한 대표의 선결 과제는 사분오열 갈라진 당의 단일대오를 재구축하는 것이다. 현재 한 대표의 핵심 지지층은 크게 두 진영으로 분류된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을 동시에 지지하거나, 윤 대통령 지지는 거두고 한 대표를 응원하는 세력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당대회에서 나타난 당심에 따르면 후자가 60%를 넘어섰다. 다만 역설적으로 아직 당원 10명 중 4명은 전자에 머물러 있다. 세가 필요한 한 대표로서는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정치적 영토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7월23일 시사저널TV 《시사끝짱》에 출연해 “한동훈 지지층과 윤석열 지지층 대부분이 겹친다. 이것이 의미하는 첫 번째는 ‘국민의힘은 변화해야 한다’는 것, 그러면서도 두 번째는 ‘당대표와 대통령이 척을 져 당이 쪼개져서는 안 된다’는 바람이 담긴 것”이라고 진단했다. 즉 “당정 수평관계를 가져가되, 원만하게 (갈등을) 수습하란 것이다. (한 대표가) 이 메시지를 잘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전당대회 전과 비교해 한 대표의 입장은 미묘하게 달라졌다. 전당대회 당시 한 대표는 ‘채 상병 특검법’과 관련해 ‘제3자 추천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나경원·원희룡 후보를 향해 “다른 대안이 있느냐”고 거칠게 몰아세우며, 당권을 잡을 경우 의원들을 반드시 설득하겠다고 선언했다. 한 대표의 이 같은 입장은 일단 유지되고 있다. 다만 이후에도 추경호 원내대표를 비롯해 김재원·김민전 최고위원 등의 반발이 이어지자, 한 대표는 7월24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민주주의 절차를 지키는 정당”이라고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또 “데드라인(시한)을 정할 문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서두르지 않겠다’는 뜻이다. 의원들의 여론에 따라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지도부의 입장, 자신의 태도가 바뀔 수 있음을 시사한 셈이다.
나아가 한 대표는 7월25일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의 ‘채 상병 특검법’이 여당을 분열시키려는 획책이라는 기존 친윤계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그는 “민주당이 (특검법 상정 시점으로) 전당대회 직후라는 시점을 선택한 의도는 전당대회 직후 남은 감정들 때문에 국민의힘이 분열할 것이라는 얄팍한 기대일 것”이라며 “그런데 그것은 착각이라는 말씀 분명히 드린다”고 했다. 이어 “민주당의 얄팍한 기대가 착각이라는 것을 우리가 하나로 뭉쳐 보여드리겠다”며 “국민의힘이 잘못된 법률이 통과돼서 국민들이 피해 보는 것을 단호히 막아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각에는 한 대표가 각종 특검법을 독단으로 밀어붙이기 어려운 ‘정치적 한계’에 봉착했다는 시각도 있다. 변수는 거야가 예고한 ‘한동훈 특검법’이다. 한 대표는 줄곧 ‘국민의 눈높이’와 여론을 근거 삼아 정부·여당의 특검 대응을 문제 삼았다. 만약 ‘한동훈 특검법’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커진다면 한 대표의 입장이 난처해질 것이란 게 정치권 전망이다. 한 대표가 ‘채 상병 특검법’ 등을 두고 친윤계와 계속 각을 세울 경우 ‘한동훈 특검법’ 등에서 당내 찬성 이탈표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한 대표가 굳이 ‘한동훈 특검법’을 의식하지 않더라도, 용산과의 소통 창구 개설을 위해 ‘채 상병 특검법’에서 한발 물러설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채 상병 특검’을 하면 친윤계는 ‘한동훈 특검’까지 해야 한다고 압박할 것이다. 그러면 한 대표도 출구전략을 고를 수밖에 없다”며 “아마 ‘당대표 입장은 이렇지만 원내 의원들의 의견 수렴 결과는 이렇다’는 원론적인 입장으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 실리를 챙기는 동시에 용산과의 관계 개선을 노릴 것”이라고 봤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한배’를 탔다. 총선 후 더 좁아진 배에서 ‘총질’까지 시작하면 배는 가라앉는다. 그래서 정치권에선 이들의 관계를 ‘오월동주’라고 본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자주 만나며 앙금을 풀고, 합심해 정국 전환을 이뤄내는 게 여권으로서는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중요한 건 ‘민심’이다. 민심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 당장 ‘당심’으로 당권을 쥔 한 대표지만, 결국 그의 꿈은 ‘대권’을 향해 있다. 총선에서 확인됐듯, 외연 확장에 실패하면 전국 단위 선거에선 필패다. 이를 일찍이 확인한 한 대표다. 그런 그가 윤 대통령과의 관계 회복에 언제까지, 얼마만큼 공을 들일지는 알 수 없다. 총선 이후에도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30%대 박스권에 갇혀 있고, 부정평가는 60%에 육박한다.
분수령은 한동훈이 ‘윤심’ 아닌 ‘민심’이 필요해지는 시점
한 대표도 줄곧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취임 첫 일성으로 “민심과 국민 눈높이에 반응하라는 것, 미래를 위해 더 유능해지라는 것, 외연을 확장하라는 것이 당원 동지들과 국민들이 선택하고 명령한 변화”라며 “건강하고 생산적인 당정 관계, 합리적 토론으로 민심을 파악하고 때를 놓치지 않고 반응하는 모습을 보이자”고 강조했다. 만약 정부·여당을 향한 민심의 온도가 계속 차갑다면, 한 대표가 예고한 ‘반응’은 더 빨라지고, ‘변화의 폭’도 더 넓어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비록 윤 대통령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한동훈 대표를 살릴 순 없어도 누구든 내칠 수는 있는 최고 권력자”라며 “그래서 당분간은 대통령과의 협력을 말하며 고개를 숙이겠지만 언제나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한 대표는 지난 총선에서 민심의 실상을 직접 확인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지금 너무 멀리 있다. 그렇다면 여당이라도 민심과 가까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만약 한 대표가 ‘당정 분리’에 힘을 싣는 순간, 잠잠하던 친윤계의 반발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정치권에선 한 대표가 용산 대통령실과 친윤의 압박에 의해 오래 자리를 지키기 힘들 거라는 주장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 대표가 세 달 안에 자리에서 내려오게 될 것이란 이른바 ‘김옥균 프로젝트설’이 사설 정보지(지라시) 형태로 정치권에 돌기도 했다. 오는 10월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이를 빌미로 한동훈 체제를 흔들 것이란 전망이다.
오늘의 해가 지는 곳에서, 내일의 해가 뜬다. 정치가 그렇다. 다만 ‘오늘의 해’는 천천히 지기 위해, ‘내일의 해’는 더 빠르게 뜨기 위해 늘 갈등하고 반목해 왔다. 그게 정치의 선례이자, 역사의 반복이었다. 윤석열과 한동훈, 정부·여당의 ‘신구 권력’은 과연 어떤 선택지를 집어들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