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안병진 경희대 교수 “‘미국판 北風’ 변수…김정은·푸틴·네타냐후 행보 주목해야”
“해리스, 낮은 호감도 ‘약점’ 높은 잠재력 ‘강점’…‘노동자 표’ 흡수 여부가 승부 관건”
“트럼프 2기, 1기보다 2배 더 스펙터클…트럼프가 평양, 김정은이 워싱턴 갈 수도”
혼돈 그 자체. 11월5일(현지시간) 치러지는 미국 대선은 그야말로 혼돈의 연속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죽다 살아났다. 4년 만에 재선 도전에 나선 트럼프를 향해 총알이 날아와 귀를 스쳤다. 피를 흘리는 와중에도 그는 “싸우자(fight!)”를 외치며 주먹을 쥐었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트럼프를 향해 8년 전처럼 ‘트럼프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그렇게 미 대선은 싱겁게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세론’은 민주당의 ‘후보 교체’라는 극약처방으로 또 한 번 뒤집히는 모습이다. 대선후보 공식 지명만 남겨놓고 있던 조 바이든 대통령은 TV 토론 후폭풍과 그에 따른 주변의 압박과 불신 끝에 결국 출마를 포기했다. 재선에 도전한 현직 미국 대통령의 대선후보 사퇴는 미 역사상 최초의 일이다. 그야말로 초유의 사태 연속이다.
사실상 민주당 대선후보로 낙점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또 다른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두 사람의 지지율은 다시 초접전 양상이다. ‘추격의 기대감’이 결집하는 모습이다. 한 치 앞을 예상하기 어려운 미 대선은 전 세계는 물론 한반도에도 엄청난 영향과 파급효과를 가져올 게 틀림없다. 11월까지 남은 변수는 무엇이고, 우리는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미국정치 전문가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를 7월23일 직접 만나 들어봤다.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을 포기한 핵심 이유가 뭔지부터 묻자.
“바이든 대통령은 평생에 걸친 억울함이 있다. 본인은 용수철처럼 다시 역경을 극복해 대통령까지 된 역사가 있다. 그런데 항상 민주당의 주류들, 특히 ‘오바마팀’(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측근 그룹)이 무시하고 흔들었다. 그는 더 버티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민주당 실세들, 대표적으로 상원의 척 슈머 원내대표, 하원의 하킴 제프리 원내대표, 상·하원의 두 지도자에 민주당 내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오바마 전 대통령까지 간접적으로 마음을 돌린 게 확인됐고, 냉철하면서도 자기 의지를 정확히 관철하는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까지 마음을 돌렸다. 거기에 참모들이 가져온 스윙 스테이트(경합주)에서의 여론조사 결과까지 참담하니 더 버티기 어려웠을 거다.”
대선후보 공식 지명만 남겨뒀었는데 그만큼 상황이 다급했던 건가.
“미국의 일부 평론가는 미시간·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 등 블루월(Blue wall·민주당 강세 지역)은 그래도 민주당이 투표날이 다가오면 방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현실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민주당이 블루월을 지키느냐 마느냐의 상황이 아니라 원래 당연히 가져가야 하는 버지니아·뉴멕시코(민주당 텃밭 지역들)까지 위험해진 상황이었다. 민주당 집토끼들, 여성·청년이 투표장에 안 나올 상황이니 해보나 마나 한 게임이었던 거다. 중도가 아니라 집토끼조차 흔들리는, 민주당의 기본 승리 공식이 완벽히 무너진 상황이었으니 후보 교체가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 후보로 유력하다고 보면 될까.
“그렇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이미 해리스가 과반 이상의 대의원을 사실상 확보했으니 게임은 거의 끝난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뒤늦게라도 민주당의 미래를 생각하는 결정을 했지만 원래 두세 달은 더 일찍 그만뒀어야 했다. 그러면 민주당이 미니 프라이머리(예비경선)를 열어 역동적으로 치열한 경쟁 속에서 마치 ‘오바마스러운’ 후보가 탄생했을 수 있다. 8월7일(오하이오주 대선후보 등록 마감) 전에 결정해야 하니 이제는 시간 자체가 없다. 지금 상황에선 다른 후보들의 출마 여지는 남겨놓으면서도 사실상 해리스 후보로 가는 것을 협소한 전략이라고 부정하기도 어렵다. 바이든 진영이 세심하게 출구전략을 고민한 흔적은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이 트윗(후보직 사퇴 선언 및 해리스 지지)을 하자마자 클린턴 부부 및 핵심 인사들이 얼른 해리스를 지지했다. 나름대로 치밀하게 프로세스를 관리한 것 같다.”
오바마 전 대통령 배우자인 미셸 오바마의 등판도 거론된다.
“미국에서 이제는 민주당 지지자의 달콤한 꿈의 카드라 할 수 있는 미셸 오바마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한국의 일부 정치평론가가 미국 정치를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인데 미셸 오바마를 잘 안다면 출마 가능성을 얘기하기 어렵다. 그는 반(反)정치론자다. 남편에 대해 가장 미운 점이 신혼 때부터 노골적으로 권력에 대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100% 불가능은 아니겠지만 이제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더구나 해리스로 민주당과 여성 블록이 결집한 상황에서 이에 도전한다는 건 더 상상하기 어렵다.”
미국에서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여론의 평가는 어떤가.
“호감도가 낮다. 기껏 해봐야 30% 중반 정도다. 2020년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할 때 50% 초반은 됐을 거다. 2020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토론 같은 부분에서 초기에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상당히 스타로 떠올랐다가 의료보험 정책이라든지 몇몇 횡설수설한 장면이 있었다. 부통령으로서도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진 못했다. 골치 아픈 이민 문제를 떠안았다가 ‘국경에 가 봤느냐’는 NBC 앵커의 질문에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식으로 답변했다가 조롱을 받기도 했다. 이런 부분들이 공화당이 11월까지 끈질기게 공격할 포인트가 될 것이다. 다만 해리스는 승리할 잠재력이 큰 인물이라고 본다.”
어떤 면에서 그렇게 보나.
“쓴맛을 봤지만 대선후보 경선에 한 번 나온 경험이 있고, 일대일 토론에 강하다. 해리스는 치열하게 자기를 담금질하고 진화해 나가는 스타일이다. 사실 너무 완벽주의 성향이 강해 참모진이 매우 힘들어할 정도다. 참모진을 가장 많이 교체하는 미국 정치인 중 한 명이고 이 부분에서 잡음이 있는데 해리스가 오바마 스타일의 따듯한 경영자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고 본다. 참모를 탓하지 않고 자기가 먼저 반성하는 태도 말이다. 이 부분에서 얼마나 극복할 수 있을지가 제가 주목하는 포인트 중 하나다. 극복하지 못한다면 11월 전에 캠페인에서 또 잡음이 들릴 수 있다.”
해리스 대 트럼프 구도에서 승부의 관건은 무엇이라고 보나.
“해리스에게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바로 ‘워킹 클래스’(노동자층)의 표를 얼마나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 얼마만큼 덜 잃어버릴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다. 민주당이 해리스 후보로 고학력 여피 클래스(도시의 젊은 전문직), 교외의 중산층 여성, 이런 지지층을 갖고 갈 수 있겠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이길 수 없다. 미국의 유권자층엔 고졸 출신의 워킹 클래스가 고학력 여피보다 더 많다. 민주당 입장에선 승리하려면 이 지지층 복원이 핵심이다. 2020년 바이든 대통령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여기서 ‘덜’ 잃어버렸기 때문에 가능했다. 제가 해리스의 전략가라면 ‘워킹 클래스의 진짜 대변자(해리스) 대 가짜 대변자(트럼프)’ 프레임으로 선거를 치르겠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대결에서 나이, 인종, 성별 등 구도에서 선명성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대선 판이 포매팅(Format-ting·초기화)됐다. 트럼프의 강점인 에너자이저 이미지를 해리스가 나오면 못 써먹게 된다. 아프리칸 그리고 아시안 아메리칸이라는 점은 트럼프로 하여금 바이든 대통령을 상대할 때보다 레이시즘(인종주의) 공격 등을 하는 게 훨씬 힘들어지게 한다. 해리스의 최대 강점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가능성이 힐러리 클린턴(2016년 트럼프와 경쟁) 때보다 더 높아진 것이다. 해리스는 상당히 많은 점에서 오바마와 포지션이 비슷하다. 투표날 여성, 아프리칸, 아시안 아메리칸, 젊은 층이 투표장에 얼마나 몰려갈지가 관건이다. 이들이 다시 대거 결집하면 흥미로운 승부가 예상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현재 강력하다. 이른바 ‘트럼프 현상’이 재현되고 있는 원인에 대해 독특한 시각을 갖고 있는데.
“이번 미 대선의 중요한 시대정신 중 하나는 ‘법과 질서’라고 보는데, 트럼프가 이 부분을 전취(戰取·싸워서 목적한 바를 얻음)했다고 본다. 암살 기도 정국 이전부터 트럼프가 계속 우위를 차지했던 핵심 이유 중 하나다. 저는 원래 트럼프를 ‘혼돈의 에이전트(agent·대리인)’라고 분석해 왔다. 법과 질서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미국 유권자는 트럼프가 부활하면 미국을 다시 ‘질서 있는 나라’로 변화시킬 거라고 생각한다. 그 근저엔 바이든 행정부에서의 이민자 문제, 펜타닐을 비롯한 마약 문제 등이 있다. 해리스도 이 부분에선 할 말이 없다. 이제 트럼프가 법과 질서의 에이전트로 프레이밍된 거다. 암살 기도 사건까지 벌어지면서 이 부분은 더 강화됐다. 이제는 질서에 통합까지 가져올 후보가 돼버렸다. 누가 도전하더라도 쉽지 않은 싸움을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경쟁력을 가져간 것이다. 다만 해리스는 캘리포니아 검찰총장 출신으로 이 ‘법과 질서’ 프레임에서 바이든과 달리 트럼프와 재미있는 승부를 펼칠 수 있다. 제가 일찍부터 그토록 바이든 후보 교체를 주장했던 이유다. 그래서 해리스 카드가 절묘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럼에도 해리스 부통령이 나선 이후로 여론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직후에 해리스가 오차범위 내 2%p(포인트) 차이로 뒤지는 결과(모닝컨설트 4001명 대상 7월21~22일 조사, 오차범위 ±2%p)가 나오고 있다. 며칠 더 조사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바이든이 사퇴하고 해리스가 나오면서 트럼프가 암살 기도 정국의 컨벤션 효과를 못 누릴 가능성이 높다. 컨벤션 효과를 누리기도 전에 해리스 효과가 생겨나면서 판이 바뀌어버린 거다. 트럼프로서는 아쉬운 포인트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아주 오차범위 내 ‘엎치락뒤치락’ 혼전 승부가 거듭되지 않을까 싶다.”
인터뷰 이후 해리스 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양자 가상대결에서 44% 대 42%로 2%p 앞선다는 결과(로이터통신-입소스 1018명 대상 7월22~23일 조사, 오차범위 ±3%p)도 나왔다. ‘엎치락뒤치락’ 승부가 벌써 시작된 셈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가 변수가 될 수 있을까.
“유죄평결을 받은 포르노 배우 성추문 입막음 사건의 최종 판결이 9월에 나오는데 지금으로선 큰 효과를 내기 어렵다. 트럼프가 항소할 것이고, 7월초 연방대법원이 트럼프의 면책특권을 인정하면서 결정적으로 자신이 유리한 싸움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생겼다. 판을 바꾸는 변수가 되긴 어렵다. 다만 성폭행범 등 온갖 질 나쁜 범죄자들과 싸워온 해리스의 ‘법과 질서’ 프레임을 강화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추가적으로 다른 변수를 꼽아본다면.
“11월 대선 전에 ‘옥토버(10월) 서프라이즈’, 즉 미국판 북풍(北風)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북한의 김정은,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러시아의 푸틴, 이 배드 가이스(Bad guys)가 트럼프의 당선을 돕기 위해 어떤 식의 행보를 할 수도 있다는 게 저로선 관심거리다. 트럼프는 계속 자신의 임기 중엔 ‘세계 안보에 문제가 없었지 않냐’ ‘잘 관리하지 않았느냐’고 강조하고 있기에 이들의 행보가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한반도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
“1기 때보다 2배는 더 스펙터클할 거다. 트럼프가 평양에 갈 수도 있고, 김정은을 워싱턴으로 불러올 수도 있다. 퇴임 이후를 겨냥한 안전판으로 노벨평화상을 받기 위해 노력할 거다. 단기적으로 (북핵 문제는) 아마 상당 부분까지는 갈 거라고 보는데 그러나 그 이상의 최종 해결까지는 어려울 거라고 본다. 트럼프 개인의 이익과 참모들의 이익이 갈리기 때문이다. 앨브리지 콜비나 로버트 오브라이언 등 핵심 참모진은 훨씬 더 강경한 이념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중국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국, 일본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 건지, 이런 부분에 집중할 거다. 1기 때도 봤듯이 결국엔 참모들의 생각대로 더 갈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한·미·일 동맹 또한 쉽사리 해체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해리스 부통령이 당선된다면 바이든 행정부 때와 기조가 거의 비슷할까.
“90% 유사할 거라고 본다. 해리스는 위구르족 문제라든지 홍콩 사태라든지 인권 신장에 대한 민감도가 높다. 그런 부분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해리스도 중도주의자다. 참모진 또한 전통적 민주당의 외교안보론자들이 있기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와 많이 달라지긴 어려울 거라고 전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