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바이든’ 공격하던 트럼프, 50대 vs 70대 구도로 부메랑 맞아
한국, 다양한 시나리오 대비해야…트럼프 차남 에릭 등 실세 관리 필요
2024년 미국 대선이 격랑으로 빠져들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고령에 따른 인지력 논란 등을 넘지 못하고 7월21일(현지시간) 민주당 대선후보를 사퇴하면서다. 1942년 11월20일생으로 81세인 바이든 대통령은 평소에도 혼동, 기억 장애, 말실수나 공개 장소에서 넘어지는 일이 종종 있었다. 후보 사퇴 문제에 결정적으로 불을 지른 건 6월27일 CNN 주최로 열렸던 대선후보 TV 토론에서 보여준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는 7월13일 펜실베이니아 버틀러에서 벌어진 암살 미수 사건에서 대범한 모습을 보이면서 인기를 한껏 고조시키며 관련 뉴스 점유율을 극대화했다.
그 일주일 후 바이든은 ‘재선에 도전한 현직 미국 대통령의 대선후보 사퇴’라는 초유의 결정을 내렸다. 바이든이 지지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새 후보로 사실상 확정됐다. 공식 확정은 8월19~22일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리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바이든 리스크는 사라졌지만, 교체 후보로 투입된 해리스가 얼마나 본선 경쟁력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부통령 후보로는 민주당 유력 정치인 조지 샤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그레첸 휘트머 미시간 주지사,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피트 부티지지 교통부 장관 등이 꼽힌다. 지도부의 선거전략, 해리스와 민주당 당원들의 의사에 따라 외교·국방이나 경제 전문가 등 의외의 인물이 발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리셋’된 美 대선…지지율 다시 초박빙 양상
흑인과 인도계 부모를 둔 검사 출신의 59세 유색인종 여성인 해리스가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면서 이번 선거전은 어느 때보다 흥미로워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공화당, 보수와 진보를 넘어 50대와 70대, 청년 세대와 기성 세대, 자유무역과 보호무역, 동맹과 고립주의 등 다양한 전선에서 대결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젠더, 낙태, 미투, 이민, 인종, 대학생 학자금 등 여러 의제가 뒤섞여 어느 때보다 복잡한 정체성 정치의 대결장이 될 수 있다.
특히 해리스가 치고 올라올 경우 막말과 프레임 씌우기에 능한 트럼프는 지지층을 결집하고 상대를 분열시키려고 더욱 독하게 상대를 비난하고 모욕하면서 증오심을 부추길 수 있다. 트럼프는 후보 사퇴 전 바이든을 “꾸벅꾸벅 조는 조(Sleepy Joe)”로 부르며 ‘기운 빠진 노인 바이든’과 ‘기력 넘치는 트럼프’를 대비시키려 시도했다. 하지만 이제 78세로 미국 역사상 최고령 대선후보가 된 트럼프는 59세의 해리스에 맞서면서 외려 부메랑을 맞을 처지가 됐다.
트럼프와 공화당은 해리스의 약점과 꼬투리 잡기에 집요하게 나서고 있다. 눈의 띄는 게 해리스의 웃음이다. 바이든 사퇴 이후 인터넷에선 해리스가 자지러지게 웃는 모습이 자주 보이고 있다. 동영상 종합판도 등장했다. 이를 바탕으로 트럼프와 공화당은 해리스를 ‘웃음이 헤픈 해리스’ ‘정상이 아닌 해리스’로 모는 분위기다. 캘리포니아주 검찰총장과 연방상원의원 출신인 해리스는 이번 대선을 ‘법을 집행하는 검사 대 법을 어긴 범법자의 대결’로 진행하고 싶어 한다. “검사 시절 성범죄자를 많이 다뤘다” “트럼프 같은 부류를 잘 안다”는 발언은 트럼프의 ‘막말 본능’을 더욱 자극할 수 있다.
해리스에 대한 이전투구식 대응은 이뿐이 아니다. 최근 공화당 정치인이나 친트럼프 성향의 폭스뉴스 등은 해리스를 ‘국경 차르’로 부르고 있다. 중남미에서 밀입국 희망자들이 미국 남부 국경에 몰리는 사태의 책임을 해리스에게 돌리려는 마타도어다. 사실 이민과 국경 통제, 그리고 밀입국자 관리는 알레한드로 마요르카스 국토안보부 장관이나 하비에르 베세라 보건복지부 장관의 소관이다. 바이든이 2021년 3월 “해리스 부통령이 멕시코와 중미 북부 삼각지대(빈곤·폭력·부패 등으로 경제 난민이 줄 잇는 과테말라·온두라스·엘살바도르)와 외교적 대화를 할 것”이라고 말한 적은 있지만 이민자나 국경 관리 관련 임무를 부여하진 않았다.
‘선전’ 해리스에 다시 거칠어진 트럼프의 입
뉴욕타임스와 인터넷 매체 복스에 따르면 그럼에도 공화당은 ‘국경 차르’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바이든이 사퇴를 발표하기도 전인 7월15~18일 공화당 전당대회에서도 연달아 등장했다. 반이민 활동가 출신의 아칸소의 톰 코튼 연방상원의원, 플로리다의 매트 개츠 하원의원 등 적어도 7명이 그 용어를 앞세워 해리스를 공격했다.
후보 교체에 따른 컨벤션 효과 때문인지, 그동안 줄곧 바이든에 앞서 오던 트럼프가 해리스에겐 비록 ±3%의 오차범위 내지만 뒤지는 일도 벌어졌다. 7월22~23일 로이터통신과 여론조사업체 입소스의 조사에선 해리스의 지지율이 44%로 42%인 트럼프보다 앞섰다. 통계적으론 양측 지지율이 같다고 추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미국 대선은 단순히 표를 많이 얻는다고 승리하는 게 아니다. 유권자는 선거인단에 투표하고, 대통령 선출은 주별로 할당된 전체 538명의 선거인단이 하기 때문이다. 메인(4명)과 네브래스카(5명)를 제외한 모든 주에선 투표에서 한 표라도 더 얻은 정당이 해당 주의 선거인단을 독식한다. 537명의 선거인단 중 270명 이상을 확보하면 백악관에 입성하게 된다.
정치 지형도 독특하다. 지난 선거 결과를 바탕으로 공화당의 승리가 거의 보장된 레드 주와 민주당이 지속적으로 우세한 블루 주가 존재한다. 공화당은 붉은색, 민주당은 푸른색을 상징으로 내세운다. 이에 따라 이러한 안전주 외에 역대 지지 정당이 오락가락한 데다 이번 선거에서도 어느 당이 승리할지 불투명한 경합주(swing states, 또는 purple states)가 대선의 운명을 좌우한다.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는 그 전 선거에서 민주당을 지지했던 플로리다(선거인단 30명)·펜실베이니아(19명)·오하이오(17명)·미시간(15명)·위스콘신(10명)을 차지하면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누르고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이 가운데 플로리다를 제외한 지역은 쇠락한 공업지대를 가리키는 ‘러스트 벨트(Rust Belt)’에 해당한다. 광부와 노동자가 많아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 성향이었다. 하지만 자유무역 아래에서 철강·자동차 등 한때 미국을 상징하던 제조업이 몰락하면서 실업과 각종 사회문제가 만연했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서 이들의 표를 노려 미국제일주의·보호무역를 강조하는 선거 전략을 세워 효과를 얻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클린턴은 48.2%를 득표해 46.1%를 얻은 트럼프보다 득표에선 앞섰지만 선거인단 확보에선 227 대 304로 밀렸다. 러스트 벨트를 중심으로 한 경합주에서 박빙의 차이로 선거인단을 대거 잃은 게 패인이었다.
2020년 선거에서 민주당의 조 바이든은 역으로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러스트 벨트 노동자를 비롯한 중산층 이하 유권자를 파고들었다. 그 결과 러스트 벨트에서 펜실베이니아·미시간·위스콘을 되찾은 데 이어 전통적인 공화당 안전주이던 조지아(16명)·애리조나(11명)도 차지해 대선에서 승리했다.
이번 2024년 대선에서 바이든과 트럼프의 양자 대결을 상정한 예상에선 트럼프가 유리한 편이었다. 미국 정치 전문 웹사이트 ‘270투윈(270towin)’은 각종 여론조사를 종합한 판세가 일단 공화당에 유리하지만 민주당도 기회가 있는 것으로 본다. 안전주에서 확보할 선거인단을 공화당 251명, 민주당은 226명으로 전망한다. 여기에서 공화당은 19명을, 민주당은 44명을 추가 확보하면 백악관행 티켓을 거머쥐게 된다.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19명)·미시간(16명)·애리조나(11명)·위스콘신(10명)·네바다(6명) 등 5개 주 선거인단 52명 중 몇 명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대선 향방이 결정된다.
민주당이 경합주 중 펜실베이니아·미시간·애리조나를 차지하면 271명, 펜실베이니아·미시간·위스콘신에서 승리하면 270명, 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애리조나·네바다를 확보하면 272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해 승리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도 펜실베이니아는 잃어서는 안 된다.
공화당은 펜실베이니아 하나만 더 차지해도 확보 선거인단이 270명으로 대선을 승리로 마감할 수 있다. 이를 잃더라도 미시간·애리조나를 확보하면 277명을, 미시간·위스콘신에서 이기면 276명, 애리조나·위스콘신이나 미시간·네바다를 차지하면 각각 272명의 선거인단으로 승리하게 된다.
CNN의 예상에 따르면 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애리조나만 경합주이며 미시간·네바다는 공화당 우세 지역으로 분류된다. 이에 따라 경합주를 빼도 트럼프가 272명의 선거인단을 이미 확보해 225명 확보에 그치는 바이든을 누르는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바이든이 빠지고 해리스가 대타로 나서면서 대선전은 완전히 ‘리셋’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대선이라는 전장에 짙은 안개가 덮이고 있다.
한국, 잘 준비하면 핵 재처리 능력 확보 가능
아직은 가정 수준이지만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돌아가 ‘트럼프 2.0’ 시대가 열리면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 정권으로선 까다롭고 거북한 일이 줄을 이을 수밖에 없다. 미국이 반도체·배터리·전기차 등 첨단기술 상품에 대한 보호주의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자칫 원전·반도체 등의 원천기술에 대한 통제도 강화할 우려가 있어 대비가 필요하다.
트럼프식 고립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면 한미 동맹이 기반인 한국의 대북·대일·대중 정책은 물론 인도태평양과 나토와의 협력 등도 새롭게 고민할 수밖에 없다. 특히 트럼프는 벌써부터 과거 김정은과 사이가 좋았다고 떠올리는 수준을 넘어 “핵을 가진 상대에겐 잘해 줘야 한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핵확산 금지라는 금도는 아랑곳하지 않을 태세다. 자칫 한국을 건너뛰고 북한과 대화하는 상황이 오지 말란 법도 없어 보인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상황을 관리할 만반의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준비하기에 따라 원자력 추진 잠수함이나 핵 재처리 능력 등을 확보할 기회를 만들 수도 있다.
불확실성이 지배할 수밖에 없는 미국 대선전에서 한국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 필요는 없다. 하지만 결과가 나오면 즉시 행동에 나설 수 있도록 미리 대비해야 한다. 다양한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트럼프 차남 에릭 등 트럼프의 귀를 장악할 가능성이 큰 새로운 실세들과의 네트워크 연결에도 나서야 한다. 해는 넘어가고 갈 길은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