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의 의료현장에 등장한 ‘PA간호사’ 논란, 국제간호협의회에 물었다
하워드 캐튼 국제간호협의회 CEO 서면 인터뷰
의료 공백 사태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올 2월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의 사직서가 끝내 처리됐다. 격무에 시달리던 응급실 전문의들도 속속 현장을 떠나고 있다. 정부는 의사 업무 일부를 대신하는 이른바 ‘PA간호사’를 투입해 출구전략을 세우려 했지만 성급한 미봉책이 오히려 혼란을 키웠다. 정부의 유권해석에 따라 간호사들이 불법과 합법을 오가는 의료행위를 하면서 의료진과 환자의 불안도 커졌다. 국제단체의 시각도 마찬가지였다. 시사저널은 최근 한국 의료현장을 둘러싼 ‘PA간호사’ 논란을 두고 국제간호협의회(International Council of Nurses·ICN)의 하워드 캐튼 최고경영자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한 정부의 ‘PA간호사’ 대책은 캐튼 최고경영자의 국제적 기준과는 거리가 멀었다.
“PA는 간호사와 달리 자율성 엄격히 제한”
첫 번째 문제는 ‘PA(Physician Assistant)간호사’란 명칭이다. 한국 정부와 의료계는 PA와 간호사 두 단어를 붙여서 혼용해 왔지만 둘은 엄연히 다른 직역이다. ICN은 간호사를 ‘다양한 의료 환경에서 자율적으로 협업하며 업무를 수행하는 의료 전문직’으로 정의한다. 간호사는 환자에 대한 돌봄, 교육 및 옹호 활동을 포함한 업무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도 명시한다. 반면 PA는 의사의 감독하에 업무를 수행하는 임상 요원으로, ‘팀’ 기반 방식으로 일한다고 설명한다.
캐튼 최고경영자는 7월15일 시사저널에 보낸 회신에서 PA 직역 구분을 수차례 강조했다. 그는 “PA는 다학제 팀의 일원으로, 이들을 감독하는 의사의 자격과 업무에 따라 업무 범위가 결정된다”며 “PA는 질병 진단, 치료 계획 수립, 약물 처방 등을 포함해 다양한 임상 업무를 수행하지만 의사가 설정한 틀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PA는 간호사와 달리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없고 상대적으로 규정에 의한 보호 수준도 낮다고 했다.
두 직역이 혼용되고 있는 한국 상황에 대한 우려도 전해졌다. 캐튼 최고경영자는 “간호사와 PA 두 직역을 동일시하면 각 직역이 환자 치료와 의료 시스템 전반에 기여하는 고유한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두 직역은 업무 범위와 자율성 수준, 규제에 의한 보호 내용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반드시 인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이 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있지만 개념 정립은 요원하다. 심지어 의료 공백에 간호사를 투입하기 위해 시범사업을 시행하고도 여전히 명칭을 혼용하고 있다. 최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회에서 열린 의료계 비상상황 청문회에서 “의료현장에서 PA간호사들이 헌신하고 있다. 위법과 적법 사이에서 고민이 많아 빠른 시일 내 의사 지도하에 진행할 수 있는 의료 범위를 지정하고 법제화하겠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미국에는 PA란 별도 직역이 있다는 건 잘 알지만 아직 습관적으로 ‘PA간호사’란 말을 쓰게 된다”면서 “다만 법 관련 논의를 할 땐 최대한 ‘진료지원 간호사’라는 명칭으로 바꿔서 표현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한국의 불법 의료행위, 윤리적 문제 될 것”
두 번째 문제는 국내 간호사들의 모호한 업무 범위다. 한국 의료현장에서 PA간호사는 수술·응급상황 등에서 암묵적으로 의사 업무를 수행하는 간호사를 뜻한다. 국내 의료법상 간호사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 보조’만 가능하지만, 이들은 사실상 병원 편의에 따라 수술 동의서 서명, 드레싱, 배설관리(인공항문·방광) 등 수술 업무 전반을 담당하고 있다. 현행법에는 PA 면허에 대한 규정도 없기에 PA로 불리는 간호사들의 의료행위 상당 부분이 불법인 셈이다.
캐튼 최고경영자는 ‘한국의 허가되지 않은 행위’에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한국에서 병원들이 부적절한 건강관리 계획이나 미비한 의료 시스템 절차 때문에 간호사들에게 무단으로 활동을 수행하도록 지시하는 건 치명적인 법적, 윤리적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이런 관행은 환자를 위험에 처하게 할 뿐만 아니라 간호사들을 불안정한 법적 위치에 내몰리게 한다”며 “간호사가 적절한 허가나 교육 없이 본인의 업무 범위를 벗어난 일을 강요받다가 환자의 안전사고가 발생한다면 (병원 측 강요가 있었음에도) 간호사가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짚었다.
간호사의 명확한 업무 범위와 그에 따른 업무 수행도 재차 강조했다. 그는 “간호사는 역량을 초과하는 역할을 강요받지 않고 그들의 업무 범위 내에서 일을 수행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호돼야 한다”면서 “간호전문직이 잘 규정된 국가에서는 명확한 업무 범위를 규정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역설적으로 한국에선 법망의 경계에 놓인 의료행위가 전 세계적으로는 이미 간호사의 역할이기도 했다. 명확히 규정된 간호사의 업무 범위에서 해당 행위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2월27일 전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실시한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내용에 대해 캐튼 최고경영자는 “많은 국가가 이미 (한국 정부가 시범사업으로 허용한 업무 범위인) 중심정맥관 삽입, 채혈, 발관, 내시경, 봉합, 상처 드레싱, 응급 의료 대응팀 팀장 역할 수행 및 검사 오더 등을 간호사 역할에 포함하고 있다”면서 “또 전 세계 간호사들은 처방 권한도 있다”고 전했다. 앞서 정부는 시범사업을 통해 간호사들이 한시적으로 해당 업무를 의사를 대신해 수행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아울러 ICN 측은 국내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간호법 제정을 권장했다. 캐튼 최고경영자는 “수많은 국가가 특별히 간호 업무를 위해 간호법 등으로 명명된 법률을 제정했다”며 “한국의 간호법 제정은 간호전문직을 강화하기 위한 세계적인 추세와 권고에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간호법이 타 직역의 업무를 침범한다’는 의사단체의 반발에 대해선 “간호법은 효과적인 의료 전달과 안전하고 유능한 간호 업무를 보장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어느 직역이든 이를 반대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했다.
최근 정부의 ‘PA 합법화’ 기조와 맞물려 여야 양측에서 간호법 제정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7월22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간호법을 집중 논의했다. 특히 국민의힘 원내대표인 추경호 의원이 대표발의한 ‘간호사 등에 관한 법률’과 더불어민주당 강선우·이수진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간호법’이 화두에 올랐다. 다만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으로 간호법이 무산됐던 만큼, 정부가 필요에 따라 간호사들을 ‘총알받이’로 활용하고 뒤늦게 법적 보호망을 논의한다는 비판도 거세다. 현재로선 임시방편으로 실행 중인 시범사업마저 종료될 경우 간호사들이 다시 불법 의료행위에 방치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