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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natural》을 통해 돌아본 뉴잭스윙의 역사 

얼마 전부터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를 중심으로 ‘현진스’ ‘완진스’라는 태그를 단 유튜브 쇼츠 영상과 챌린지가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언뜻 보면 1990년대 전성기 시절 현진영과 김완선의 춤을 담은 영상인데, 노래는 뉴진스의 신곡 《Supernatural》이 흐른다. 풋풋하기 그지없는 영상 속 현진영과 김완선은 뉴진스의 신곡에 맞춰 역동적인 턴과 발동작, 그리고 마이크 바꿔잡기를 시연한다.

더 흥미로운 건 영상 속 그들의 안무가 신곡과 단순히 어울리는 정도를 넘어 완벽한 싱크로를 자랑한다는 점이다. 이건 요즘 유행하는 AI 합성이 아니라 단지 영상 속 원곡인 현진영의 《슬픈 마네킹》과 김완선의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를 뉴진스의 곡과 합친 영상인데, 그 완벽한 싱크로율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현진영과 김완선 그리고 뉴진스의 《Supernatural》을 이어주는 단 하나의 연결고리는 바로 현대 K팝의 효시인 뉴잭스윙(New Jack Swing)이라고 하는 음악 장르다.

뉴진스가 7월21일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 리조트에서 열린 SBS 2024 가요대전 서머 블루카펫 행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뉴진스가 7월21일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 리조트에서 열린 SBS 2024 가요대전 서머 블루카펫 행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바비 브라운부터 마이클 잭슨까지

뉴잭스윙은 대중음악 역사를 수놓은 여러 장르 가운데서도 그 위상이 독특하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10년 가까이 가장 인기 있는 장르로 군림했으나 별안간 종적을 감췄다. 어쩌면 그보다도 훨씬 짧은 전성기를 누렸다고 말할 수 있는 디스코나 신스팝에 비해서도 인지도가 턱없이 낮은 편이다. 평론가들이나 역사가들이 대중음악의 역사를 기술할 때도 뉴잭스윙의 역사는 힙합이나 R&B의 하위 장르로 잠깐 언급될 뿐이다. 물론 뉴잭스윙은 록이나 재즈, 혹은 소울이나 EDM처럼 견고한 ‘계보’를 만들어내는 데는 실패한 장르다. 앞서 언급한 음악들과 달리 국내에서 스스로를 ‘뉴잭스윙 뮤지션’이라고 부르는 가수가 ‘기린’ 정도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도 그 방증이다.

현대 대중음악 대부분이 그렇듯 뉴잭스윙도 복잡한 기원을 가진 혼종 장르다. 1970년대에 유행한 감미로운 모타운(Motown) 음악의 멜로디와 펑크(funk)의 리듬감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워싱턴DC 등에서 유래한 ‘고-고’ 음악이 더해지고 1980년대 중반 대중음악의 새로운 대세로 떠오르고 있던 힙합이 결합했다.

힙합의 등장은 뉴잭스윙이라는 장르의 탄생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힙합은 원래 미국 빈민가에서 탄생한 길거리 음악인데, 특유의 직설적 가사와 거친 이미지 때문에 라디오 방송에 어울리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고 주류 대중, 바꿔 말해 백인 중산층이 즐기기에도 곤란한 면이 많았다. 프로듀서 테디 라일리와 지미 잼 앤 테리 루이스 등은 뉴잭스윙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통해 그 징검다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가사와 선율에 트렌디한 힙합 패션과 공격적인 이미지를 입은 이 젊은 음악은 단숨에 젊은 층을 매혹시켰다. 바비 브라운을 필두로 키스 스웨트, 폴라 압둘 등이 이 흐름을 주도했고 소녀 가수였던 재닛 잭슨은 뉴잭스윙을 앞세워 성인 선언(?)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동생의 성공에 영향을 받은 마이클 잭슨은 뉴잭스윙의 완결판인 앨범 ‘Dangerous’를 내놓아 이 흐름에 정점을 찍었고, 심지어 성인 취향의 발라드로 스타덤에 오른 휘트니 휴스턴조차 신진 프로듀서인 베이비페이스와 함께 뉴잭스윙 스타일의 앨범인 3집 ‘I’m Your Baby Tonight’을 내놓고 찢어진 청바지와 가죽재킷 등 과감해진 ‘길거리’ 미학을 선보이기도 했다.

현진영 ⓒ현진영 X 제공
현진영 ⓒ현진영 X 제공
서태지와 아이들 ⓒ일요신문 자료사진
서태지와 아이들 ⓒ일요신문 자료사진
김완선 ⓒ연합뉴스
김완선 ⓒ연합뉴스

K팝의 기원이 된 뉴잭스윙

약간의 시간차는 있지만 한국 대중음악도 이 ‘대세’를 적극 받아들였다. 1990년대가 개막하자마자 두 뮤지션이 뉴잭스윙 사운드를 거의 동시에 들고나왔다. 한 명은 이미 가요계의 스타로 자리 잡은 김완선. 기타리스트 손무현이 프로듀스한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는 미국 LA까지 건너가 믹스해 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사운드를 자랑했다. 인순이와 리듬터치 시절부터 다져진 그녀의 춤 실력은 뉴잭스윙의 격한 리듬을 받아내는 데 어떠한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하지만 뉴잭스윙의 가장 오리지널한 완성판은 현진영이라는 신인이었다. 현진영은 가수 이수만이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SM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고 프로듀서로 변신해 내놓은 첫 ‘아이돌’이다. 통상 ‘가수’를 발굴하는 가요계의 관행을 깨고 애초에 뉴잭스윙에 어울리는 안무, ‘토끼춤’이라 불렸던 새로운 동작을 소화할 수 있는 댄서를 가수로 키우겠다는 야심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이수만은 심지어 뉴잭스윙 사운드에 최적화된 음향장비로 꾸며진 스튜디오를 만들었고, ‘토끼춤’에 최적화된 무대를 구성하기 위해 이태원 클럽 출신의 젊은 댄서 두 명을 영입해 ‘와와’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방송용 안무팀이 아닌 그룹의 정식 멤버가 된 구준엽과 강원래. 이렇게 뉴잭스윙이라는 장르는 춤을 대중음악의 부수적인 요소가 아닌 핵심적인 요소로 규정 지은 첫 장르가 되었고 이는 서태지와 아이들, H.O.T. 시대를 거쳐 K팝의 핵심 문법이 되었다. 현진영의 《야한여자》가 일으킨 한국의 뉴잭스윙 붐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듀스의 《나를 돌아봐》로 이어졌고 심지어 공일오비(《연인》), 솔리드(《나만의 친구》), 양준일(《리베카》), 이승철(《방황》) 같은 뮤지션들의 히트곡에서도 그 영향이 발견된다.

이 시대의 K팝, 아니 나아가 전 세계 틴팝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뉴진스가 별안간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그 유행의 맥이 끊긴 뉴잭스윙을 2024년에 들고나왔다는 것은 우연일 리 없다. 시대를 초월한 레트로적 감수성과 그 미학적 요소들의 재배치 및 현대화를 통해 공감을 불러일으키겠다는 프로듀서 민희진의 행보는 《Attention》을 시작으로 《Ditto》를 거쳐 최근 일본 팬미팅에서의 《푸른 산호초》 무대에서도 잘 드러난 바 있다. 《Supernatural》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비트는 뉴잭스윙에 기반을 두고 있되 그 옛날 뉴잭스윙이 갖고 있던 곰팡내 나는 멜로디와 리듬은 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최근 대세가 된 시티팝의 청량함과 도시적 감수성이 살포시 얹혀 있다.

어쩌면 뉴잭스윙이 품었던 혼종성의 또 다른 버전이라 할 수 있을까? K팝의 0세대와 1세대를 경험했던 ‘X세대’들은 뉴진스에게서 현진영과 김완선, 그리고 SES를 발견해 추억에 젖고, Z세대들은 위화감 없이 세련된 시티팝풍 분위기를 즐기며 새로 찍은 여름 사진의 배경음악으로 선택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노래가 먼저 발매된 일본의 K팝 팬들은 그들에게서 유래한 시티팝이 가미된 그 옛날 뉴잭스윙의 그루브에서 위화감보다는 친숙함과 향수를 느낀다. 음악이 선사하는 초월적인 매력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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