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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물풍선’ 대 ‘확성기 방송’…南의 ‘우세승’
北, 11월 美 대선까지 긴장 조성 모드로

오빠 김정은과 북한 체제를 비난한 대북 전단에 발끈했던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오물풍선 살포로 맞서며 “몇십 배로 대응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산발적인 우리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에도 더 이상의 반발 움직임을 그친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와 군 당국의 대북 확성기 방송에 기세가 눌렸기 때문이란 해석도 나오지만 아직 단정하긴 이르다. 언제든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김여정 남매가 예상치 못한 도발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탈북민 단체 겨레얼통일연대 회원들이 6월7일 밤 강화도에서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모습 ⓒ연합뉴스

대통령실·군, 국민 재산 피해에 격앙

오물풍선과 확성기 방송이 맞붙은 1라운드는 일단 남한 측의 ‘다소 우세’로 점수표를 매길 수 있다. 대북 강경 조치에도 북한이 더 이상의 긴장 고조 행위를 멈추고 정세를 관리하는 모드로 돌입했기 때문이다. 우리 군 입장에서 생각하면 김여정이 ‘꼬리를 내린’ 형국일 수 있다.

대통령실과 정부, 군 지휘부 내부에서는 북한의 오물풍선에 상당히 격앙된 분위기가 감돌았다고 한다. 차량 파손 등 국민의 재산 피해가 발생하고 불안감을 조성한 것은 물론 GPS(위성항법장치) 교란 도발까지 결합되면서 항공·선박 운행에 차질을 빚는 등 용납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왔다는 얘기다.

이런 강경 기류는 6월6일 윤석열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윤 대통령은 북한의 오물풍선을 “비열한 도발”로 규정하고 “단호하고 압도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사흘 후엔 대북 확성기 방송이 최전방 지역에서 재개됐다. 북한이 강한 거부감을 갖는 비장의 카드를 전격적으로 꺼내든 것이다.

확성기를 다시 틀게 된 건 북한이 6월8일 밤과 9일 새벽 사이에 3차 풍선 부양을 감행한 데 따른 결정이라는 게 국가안보실과 군 합동참모본부의 설명이다. 앞서 5월28일 처음으로 오물풍선을 띄우고, 6월1~2일 추가 살포를 한 데 이은 ‘삼세번’ 도발에 레드라인을 넘었다는 판단이 섰다는 얘기다. 윤 대통령까지 나서 대북 경고를 보내고 한미 합동전력까지 위력시위를 통해 압박했지만 소용이 없자 6년 만에 확성기 스위치를 다시 올린 것이다.

 

美 ‘죽음의 백조’ 전략폭격기 한반도 전개

사실 윤 대통령의 추념사 하루 전인 6월5일에는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미 B-1B 전략폭격기가 한반도에 전개돼 한미 전투기와 연합훈련을 펼쳤다. 오물풍선과 GPS 교란 등 북한의 도발에 한미 연합전력이 적극 대처하겠다는 강력한 의지 표현으로 해석됐다. 특히 B1-B는 7년 만에 합동직격탄(JDAM) 투하 훈련까지 벌였다. 사거리 270km의 JDAM은 김정은 등 북한 지도부의 집무실이나 지하 벙커를 정밀타격할 무기체계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김여정의 태도에 미묘한 변화가 나타나게 만든 건 JDAM보다는 대북 확성기 쪽이 가까웠다. 불과 2시간 동안의 확성기 방송이 이뤄진 6월9일 밤 자정 가까운 시간에 ‘담화’를 내며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고 나온 것이다. 북한이 이처럼 실시간에 가까운 대응을 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김여정은 담화에서 “서울이 더 이상의 대결 위기를 불러오는 위험한 짓을 당장 중지하고 자숙할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담화의 구절구절에 넋두리 같은 말들을 늘어놓았고 행간에는 ‘이제 좀 그만하자’는 뉘앙스가 묻어났다. 겉으로는 대남 비방과 경고성 말을 하면서도 이면에는 더 이상의 사태 확산을 피하고 싶다는 시그널을 보낸 것이다.

담화에서 김여정은 대남 비난의 수위를 낮추려 애쓴 게 역력히 드러났다. 우리를 ‘대한민국’이나 ‘한국’으로 7차례 지칭하면서도 비하하는 표현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열흘 전인 5월29일 담화에서 14차례 언급하며 ‘한국 족속’ ‘한국 것들’ ‘한국 괴뢰’ 등으로 비방했던 것과는 달라진 것이다.

내용 면에서도 톤다운 된 게 확연하다. 3차 살포와 관련해 “기구 1400개를 이용해 휴지 7.5톤을 한국 국경 너머로 보냈다”고 밝힌 김여정은 “뒤져보면 알겠지만 우리는 빈 휴짓장들만 살포했을 뿐”이라는 해명성 언급도 내놓았다. 이전처럼 오물을 포함하지 않았다는 걸 주장하면서 대북 전단과 달리 윤 대통령에 대한 비난이나 대남 비방을 담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확성기만 아니었으면 6월9일 중 ‘대응행동’을 종료하려 했다는 식의 속사정까지 털어놓았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김여정의 오물풍선 도발은 대북 확성기 방송이란 윤석열 정부의 대처에 일단 발목이 잡힌 형국이다. 그런데 북한이 과연 확성기라는 변수를 고려하지 않고 오물풍선 도발을 감행했을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김정은과 여정 남매에게 잊을 수 없는 굴욕감을 안겨준 9년 전의 전철을 그대로 밟지는 않을 것이란 측면에서다.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5년 8월4일 북한은 서부전선 군사분계선(MDL) 남측 철책에 목함지뢰를 매설해 우리 장병 2명에게 치명적 부상을 입혔다. 폭발 영상까지 공개됐지만 북한이 발뺌하자 군 당국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즉각 재개했다. 그러자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가 판문점 만남을 제안했고, 정부는 도발 책임자인 군부 실세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나와야 한다고 요구했다. 결국 북한은 우리 요구에 응했고 유감 표명 형태의 사과까지 하고서야 확성기를 끌 수 있었다.

북한 지도부는 이번 오물풍선 도발을 기획하면서 남측의 확성기 카드를 치밀하게 고려했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도 김여정이 대북 방송에 움찔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건 의문일 수 있다. 뭔가 다른 결정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는 해석이 대북 전문가 그룹에서 나오는 배경이다.

그 가운데 가장 유력한 건 푸틴의 방북 스케줄이다. 지난해 9월 김정은이 러시아 보스토치니우주센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이후부터 푸틴의 평양 방문 가능성이 줄곧 거론돼 왔다. 5월16일 푸틴이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했을 때도 푸틴이 평양을 경유할 것이란 관측이 있었지만 불발됐다.

그런데 크렘린궁이 지난 5월말 “방북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속도가 붙기 시작했고, 러시아 매체가 6월10일 “이달 중 북한과 베트남 방문”을 알리면서 현실화했다. 이로 미루어볼 때 김여정이 오물풍선 도발이 한창인 시점에 푸틴의 방북 일정이 최종 확정되고 여기에 몰입해야 하는 사정이 생겼을 공산이 크다. 고위 탈북인사는 “북한은 멀티플레이가 불가능한 집단이라는 점에서 오물풍선 대처가 후순위로 밀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북·러 정상회담 때 김여정이 오빠의 의전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행사 전반을 챙겨야 하는 입장에 처했을 수 있다.

관심은 푸틴 방북 이후 김여정이 내놓을 오물풍선의 후속 카드에 쏠린다. 윤석열 정부의 확성기 방송에 꼬리를 내리는 모양새로 사태가 매듭지어지면 오빠의 신임을 잃게 되는 건 물론이고 평양 지도부 내에서 대남 비방과 도발의 선봉장을 맡아온 지위도 흔들릴 수 있다. 대남 담화를 통해 “새로운 우리의 대응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공언한 것도 그냥 넘기기 꺼림칙한 대목이다.

ⓒ연합뉴스
대통령실은 6월9일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의를 열어 이날 중 대북 확성기를 설치하고 방송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2004년 6월 서부전선에 설치된 대북 확성기가 철거되는 모습 ⓒ연합뉴스

만만치 않은 한미의 대북 압박 연대

남북한은 일단 더 이상의 위기 고조를 피하면서 상황 관리에 나선 모습이다. 우리 군 당국도 6월9일 확성기 방송 이후 더 이상 스위치를 올리지 않고 있다. 방송 당일 낮 중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북한군 병사 일부가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와 우리 군이 경고 사격을 하는 긴박한 상황이 발생했지만 합참이 이를 언론에 공개한 건 이틀이 지나서였다. 그것도 “곡괭이 등을 든 것으로 보아 작업 중 우발적으로 넘어온 것으로 판단된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정부 당국자는 “군 당국이 의도적으로 긴장을 조성하려 했다면 즉각 공개하며 ‘심상치 않은 도발’로 몰았을 수 있다”며 우리 측도 사태 진정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강조했다.

통일부가 대북 전단을 날려온 민간단체를 불러모아 간담회 형식의 소통을 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자제 요청’은 아니라고 하지만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해 긴장 상황이 조성되면 대북 정보 유입 활동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설명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상의 만류다.

이런 움직임에는 남북관계 상황 관리라는 측면 외에 우리 내부의 대북 전단을 둘러싼 논란과 우려도 작용하고 있다. 야권을 중심으로 반대 여론과 대북 확성기 중단 주장이 번지고 여당에서도 자중 목소리가 나온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6월10일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폭정에 맞서 북한 주민에게 자유의 소중함을 알리려는 탈북민 단체의 대의는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한다”면서도 “접경지역 무력충돌 등을 우려해 신중을 기해 달라”고 밝혔다.

푸틴 방북 이후 한반도와 주변 정세는 더욱 가팔라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24년 만의 푸틴 방북에 고무된 김정은이 무기 밀거래 등 북·러 밀착에 힘입어 더욱 기고만장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대남 대립각을 한껏 세우며 핵과 미사일 도발을 통해 오는 11월 미 대선까지 긴장 국면을 이어가려 할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여기에 맞서는 한미의 대북 압박 연대도 만만치 않은 기세다. 한미는 오는 8월 연합연습인 ‘을지자유의방패(UFS)’를 예정하고 있는데, 6월10일 한미 핵협의그룹(NCG) 3차 회의에서 도출된 ‘공동지침’을 이번 훈련에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북한의 핵 공격에 한미 연합전력이 대응하는 방안을 군사훈련 차원에서 다룬다는 의미로 대북 군사 대응이 이전과 확 달라질 수 있다.

이 같은 캘린더상 일정 때문에 올여름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 중심에는 대북 전단과 확성기 방송으로 신경이 날카로워진 김정은과 여정 남매가 자리하고 있다. 짧은 숨고르기 이후 펼쳐질 오물풍선 공방 2라운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영종 뉴스핌 통일전문기자(북한학 박사)
이영종 뉴스핌 통일전문기자(북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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