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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A 덕에 美 시장 1위 올랐으나 트럼프 재집권 시 투자 위축 우려
IRA 시나리오, 폐지보다는 재조정에 무게…배터리 공장, 공화당 우세주에 투자 집중돼

국내 배터리 업계에 미국 대선 리스크가 번지고 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폐기하겠다”고 수차례 공언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이 커지면서다. 공화당 대선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행정부의 전기차 육성 정책에 부정적인 데다 석유기업 등 전통 에너지 업계의 강한 지지를 받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 국내 배터리 업계의 실적 악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최근에는 IRA의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AMPC) 효과를 통해 얻어낸 ‘미국 시장 점유율 1위’ 입지도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배터리 업계 버팀목 역할을 해온 보조금이 축소된다면 북미 생산시설 구축에 속도를 냈던 배터리 업체들의 투자 행보도 다소 보수적으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된다.

3월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 전시된 삼성SDI 전기차 배터리팩 콘셉트 모델 ⓒ연합뉴스
미국 대선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이 커지자 국내 배터리 업계가 분주해지고 있다. ⓒEPA연합

‘K배터리 날개’ IRA 보조금 사라지나

국내 배터리 업계가 미국 시장에서 활약할 수 있게 한 1등 공신은 단연코 ‘IRA 법안’이다. IRA에 따른 보조금 효과에 힘입어 미국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IRA 발효 후 미국에 가장 많은 투자를 집행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미국은 IRA에 따라 현지에서 생산·판매하는 전기차 배터리 셀은 kWh당 35달러, 모듈은 kWh당 10달러를 지원하거나 세금을 줄여주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배터리 업체들은 이미 바이든 행정부가 도입한 IRA 보조금 제도에 맞춰 미국 현지에 수조원을 들여 대규모 생산공장을 짓고 있다. 많은 생산시설을 보유하고 가동에 나선 만큼 AMPC 효과로 매년 수천억원 이상 혜택을 받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초박빙 승부를 펼치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가 “IRA를 폐지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특히 바이든 정부가 보조금 혜택으로 배터리 생산기지를 북미 지역에 유치한 것과 관련해 “역사상 가장 큰 세금 인상의 원인”이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만약 ‘화석연료 부활’을 공약으로 내건 트럼프 후보가 당선돼 보조금 규모를 줄이거나 제도를 폐지할 경우 한국 기업의 투자 수익성은 크게 떨어지게 된다.

산업연구원은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한국 배터리 산업 리스크 분석: IRA 변화 전망과 국내 산업 영향을 중심으로’ 보고서를 통해 “미국 시장에서의 한국 기업 강세는 무엇보다 IRA 영향이 크다”며 “IRA 전기차 구매 세액공제 중 배터리 요건이 한국 기업에 유리하게 결정되면서 미국 내 수요 확대와 판매량 증가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산업연은 “배터리 기업은 전기차 수요에만 80% 가까이 의존하는 구조”라며 “전기차 보조금 축소를 주장하는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면 국내 이차전지 기업의 사업 계획 재검토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올해 배터리 3사의 시설투자액(CAPEX)은 역대 최대가 될 전망이지만, 내년부터는 ‘속도 조절’에 나설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얘기다.

물론 전문가들은 IRA 폐지보다는 지원 규모를 축소하는 재조정 방향으로 선회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평소 발언과 달리 전기차 배터리 관련 재정 지원을 과도하게 축소하기에는 공화당 우세 지역을 중심으로 한 전기차·배터리 관련 투자액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레이얼 브레이너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은 “공화당 의원 다수가 IRA에 반대하면서도 자기 지역구의 투자 확대에는 박수를 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국내 배터리 3사의 미국 생산시설이 공화당 우세 지역인 인디애나·켄터키·테네시 등에 위치해 이들 지역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대표적인 공화당 텃밭인 조지아주는 국내 전기차·배터리 기업의 대미 투자가 가장 많은 지역으로 꼽힌다.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 합작공장엔 43억 달러(약 5조9000억원), 현대차와 SK온 합작공장엔 50억 달러(약 6조8800억원)가 투입된다.

 

수조원 투입한 배터리 업체들, 실탄 쌓는다

미국 백악관 등에 따르면, 미국은 IRA를 통해 17만 개 일자리를 창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1년간 1100억 달러 이상의 민간 부문 투자를 유도하며 지역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IRA 발효에 따른 일자리 창출 효과, 지역경제 영향 등을 따져보면 공화당 지지율이 높은 주 위주로 혜택이 돌아갔다”면서 “무작정 IRA를 폐지하거나 혜택을 축소하는 건 트럼프에게도 리스크로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

배터리 업계도 대비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당장은 현금을 쌓아 재무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행보가 두드러진다. 실제 배터리셀 업체를 중심으로 ‘AMPC 유동화’ 카드를 검토하고 있다. 업계는 AMPC를 직접 수령하는 방법 외에도 제3자에게 양도가 가능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수취한 AMPC 보조금 6768억원의 58%에 해당하는 3974억원을 제3자 권리매각(양도)를 통해 현금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SK온도 AMPC 매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보조금 혜택이 축소될 가능성이 제기되자 할인된 가격으로 양도해 당장 현금화하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IRA가 제공하는 각종 세액 공제 혜택이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AMPC를 이미 분기 실적에 반영한 기업을 중심으로 혜택이 사라지거나 수급 요건이 변경되기 전에 최대한 현실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금 마련을 위해 보상금 협상에도 힘을 쏟고 있다. 배터리 3사는 공급계약을 맺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 최소 구매 수량 미달과 관련해 수천억원대 보상금을 요구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의 올 1분기 ‘최소 구매 물량 미달분’에 대한 보상금 규모는 3000억~3500억원대로 알려졌다. SK온은 포드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과 1500억~2000억원 규모의 보상금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SDI 역시 일부 고객사와 보상금 합의를 진행 중이다. 증권업계는 삼성SDI가 오는 2분기쯤 보상금으로 약 900억원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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