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구치소에 8개월째 수감 중…구금 만료 9월15일
“정부는 백 선교사 석방 위한 노력에 더욱 힘써야“
백광순 선교사가 ‘간첩 혐의’로 러시아에 구금된 지 어느덧 8개월이 지났다. 국가 기밀 정보를 외국 기관에 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 한국인이 러시아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된 것은 백 선교사가 처음이다.
최근 러시아 법원은 간첩 혐의를 받는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에게 징역 16년형을 선고했다. 러시아에서 간첩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 통상 10~2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같은 혐의로 수감 중인 백 선교사에게 시선이 쏠린다.
백광순 선교사가 구금된 지 8개월이 지났다.
“백 선교사가 간첩 혐의로 구금된 지 어느덧 8개월이 지났다. 지난 1월15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체포돼 구금됐고, 추가 조사를 위해 모스크바로 이송돼 레포르토보 구치소에 수감돼 있다. 백 선교사는 러시아에서 다문화 노동자들을 위해 열심히 봉사만 했던 친구다. 추위 속에서 헐벗은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옷을 건네 입혀주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운 순수한 사람이다. 이렇게 선한 사람에게 러시아는 간첩 혐의를 뒤집어 씌웠다. 이게 무슨 봉변인지 모르겠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최근 미국 기자가 간첩 혐의로 징역 16년형이 선고됐다. 같은 혐의인 백 선교사의 재판에 관심이 쏠린다.
“언론을 통해 소식을 접했다. 안타까웠다. 그러나 미국 국적의 기자와 백 선교사는 상당히 다른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기자가 러시아에서 어떤 이유로 간첩 혐의를 받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백 선교사는 명확하다. 러시아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돕다가 간첩 혐의로 내몰린 것이다. 선의를 위한 행동에 있어 (미국 기자와) 똑같은 결과는 나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무혐의, 석방을 바라보고 있다.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백 선교사는 러시아에서 정확히 무슨 일을 했나.
“2020년께 러시아로 넘어온 백 선교사는 ‘지구촌사랑의쌀나눔재단’ 블라디보스토크 지부장을 맡아왔다. 성실히 일하면서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의 마음을 살뜰히 보살폈다. 러시아 극동에 파견된 북한 벌목공 등 다문화 노동자들을 지원해왔다. 쌀, 의약품, 의류 등 생필품을 지원하는 인도적인 활동을 펼쳤다. 다른 현지 선교사들이나 NGO 단체의 활동과 별반 다르지 않다. 러시아는 북한·중국과 달리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국가인데, 왜 백 선교사를 간첩 혐의로 체포했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무엇이라고 보는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악화된 한·러 관계 속에서 백 선교사가 ‘보복의 희생양’이 됐다고 생각한다. 전문가들도 러시아가 최근 긴밀해진 북한과의 관계를 과시함과 동시에 한국에 경고성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을 잇달아 내놓았다. 틀어진 한국과 러시아 관계를 감안하더라도 (러시아가) 백 선교사에게 간첩 혐의를 씌운 건 매우 이례적이라 놀라웠다. 러시아는 중국과 달리 북한 탈북자들에 대해 관대한 편이었다. 러시아에서 탈북자들이 난민으로 인정받을 경우 합법적으로 보호하기도 했다. 실제로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이 모스크바 유엔난민기구를 통해 제3국을 거쳐 한국에 입국한 적도 있다.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냉랭해진 한·러 관계와는 달리 긴밀해진 북·러 관계로 인해 백 선교사는 외교의 희생양이 됐다고 본다.”
당초 6월15일이 백 선교사의 구금기간 만료였다가 9월15일까지 3개월 더 연장됐는데.
“백 선교사가 체포된 배경에는 여러 정치·외교적 셈법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는 만큼 현재로선 한·러 관계 개선에 기댈 수밖에 없다. 한·러 관계는 여전히 냉랭하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가 주목되는 이유다. 북한·러시아 대 한국·미국·일본의 대결 구도가 짙어지면 백 선교사의 앞날이 불투명해질 확률이 높지만, 그래도 정부가 적극 나서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한다면 백 선교사가 하루빨리 가족 품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백 선교사와 함께 체포됐다 풀린 그의 부인은 현재 어떻게 지내나.
“지방에 내려가 어머니와 함께 남편이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오길 바라면서 지내고 있다. 언론의 노출은 꺼려한다. (나와) 종종 연락하며 지내면서 백 선교사를 위해 함께 기도한다.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백 선교사를 구명하기 위한 움직임은 있나.
“우리 재단을 비롯해 한국 교계가 움직이고 있다. 360만 명의 탄원서를 받았다. 모두 한 뜻으로 백 선교사의 석방을 위해 단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평소에 성실하고 정직했으며,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을 자신의 전부로 생각하며 살아온 백 선교사를 위한 우리의 마음이 담겨있다. 9월 중으로 기자회견 및 우리의 간절한 목소리가 담긴 탄원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대한민국 대사관의 원활한 영사 조력과 석방을 촉구한다.”
끝으로 하고싶은 말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알 수 없는 죄를 뒤집어 쓴 백 선교사는 지금도 차디찬 시멘트 옥중에 억류돼 있다. 하루속히 백 선교사가 석방되도록 정부가 힘을 써줬으면 한다. “국민 안전 보호가 국가의 첫 번째 임무”라고 윤석열 대통령은 말했다. 책임을 져야 한다. 대통령실과 외교부를 비롯해 재외공관도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한다. 만약 백 선교사의 (간첩)혐의가 인정된다면, 러시아에 있는 모든 선교사들 심지어 한인들 모두의 문제가 될 수 있다. 빠른 석방을 위해 모두 노력해주면 감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