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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원격 폭탄으로 하마스 지도자 하니예 살해
 ‘사면초가’ 이란, 이슬람 국가들 지원 못 받아…국제유가도 안정세

이란과 이스라엘이 서로 발톱을 세우고 으르렁거리면서 전 세계가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무장정파인 하마스의 정치지도자로서 카타르에 머물며 외교활동을 벌여온 이스마일 하니예가 7월31일 이란 테헤란에서 살해되면서다. 이란의 비호를 받아온 하니예는 이날 이란의 신임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후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영빈관으로 운영하는 안가에 돌아갔다가 자신의 방에서 폭사했다. 

과연 누가 했을까. 이란은 물론 전 세계 대부분은 이스라엘을 지목한다. 이스라엘은 모르쇠로 일관한다. 공작기관 특유의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충실한 모습이다. 하니예 살해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8월1일 이스라엘이 2개월 전에 미리 설치한 폭탄을 원격으로 터뜨렸다고 보도했다. 

이란에선 5월9일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과 호세인 아미르압둘라히안 외교부 장관 등이 헬기 추락 사고로 숨지면서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치러졌다. 7월6일 결선투표에서 페제시키안이 대통령으로 당선돼 7월31일 취임했으며, 이 행사에는 하니예가 참석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2개월 전이라면 라이시의 헬기 사고 직후 또는 그 전부터 하니예 암살을 준비했다는 이야기인데 설득력이 떨어진다. 

8월2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하마스 전사들이 이란 테헤란에서 암살로 사망한 하마스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의 모형 관을 들고 있다. ⓒAP 연합
8월2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하마스 전사들이 이란 테헤란에서 암살로 사망한 하마스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의 모형 관을 들고 있다. ⓒAP 연합

하니예 죽음, 공작에 의한 폭사에 무게

그렇다면 하니예는 어떻게 살해된 것일까. 런던에서 발행되는 180년 전통의 유대인 주간신문인 주이시 크로니클(JC) 8월5일자 보도는 이를 상세하게 전하고 있다. 하니예 암살은 모사드가 이란 공화국수비대 산하 보안부대인 안사르알마흐디 소속 요원 두 명의 협력을 받아 수행한 것이라는 것이다. 안사르알마흐디 부대는 하니예가 살해된 안가의 경비와 보안을 담당한다. 모사드는 이들에게 수백만 달러의 현금과 북유럽 국가로의 망명을 대가로 협력을 얻어냈다고 한다. IRGC는 암살 후 CCTV를 분석해 보안요원 두 명이 하니예의 방에 들어갔다 나온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이들은 당일에 안가를 나간 후 공항을 통해 출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JC에 따르면 포섭된 안사르알마흐디 요원들은 폭탄을 하니예의 침대 밑에 숨겨두는 역할만 했을 뿐 다른 작전은 모두 이스라엘의 해외담당 정보·공작기관인 모사드 요원들이 맡았다. 인원 미상의 요원들이 작전을 위해 테헤란에 파견돼 공항에서 안가에 이르는 모든 거리와 골목에서 하니예의 동선을 추적했다. 하니예가 방에 들어갔는지를 최종 확인하기 위해 숙소 인근 나무에 올라가 정탐 도구를 설치하기까지 했다. 안가는 언덕에 위치했지만 숲에 둘러싸여 있어 나무에 올라가지 않으면 내부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안가의 감시망에 걸리지 않도록 눈에 띄지 않는 녹색 옷을 입고 나무에 올라갔다고 한다. 하니예가 방에 들어갔는지를 최종 확인하고 폭탄을 원격으로 터뜨리기 위해 철저하게 작전을 진행했다는 이야기다. 표적 암살 공작의 교과서 같은 일화다. 

하지만 IRGC 측은 하니예가 외부에서 날아온 탄두 5kg의 발사체에 살해됐다고 발표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발사체 공격이 내부 배신에 의한 것보다 치욕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반면에 뉴욕타임스는 8월3일 이란 당국이 군 간부와 안가 근무자, 정보 책임자 등 20명 이상을 구금해 조사 중이라고 보도했다. 암살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UPI 연합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UPI 연합

표적 암살은 이스라엘의 오랜 전쟁 방식

사실 요인 표적 암살은 이스라엘이 하마스나 이란을 대상으로 요긴하게 활용해온 전술이다. 이스라엘을 단순히 적으로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절멸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하마스와 이란에 대해 집요하게 이 전술을 적용해 왔다. ‘눈에는 눈으로’ 방식의 고대 복수극이다. 

JC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특히 지난해 10월9일 하마스 지도부와 이들을 지원하는 외부 세력의 주요 인물을 표적 암살한다는 결정을 했다.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둘러싼 장벽을 넘어 인근 이스라엘 키부츠(협동농장) 등을 기습해 민간인과 군인·보안요원 등 1661명을 살해하고 251명을 납치한 공격을 벌인 바로 그날이다. 

공개정보(OSINT)를 종합하면 이스라엘군과 정보·공작기관들은 그날 이후 가자지구와 레바논, 시리아, 이란 등지에서 모두 19건의 표적 암살을 시행했다. 이번 테헤란에서의 하니예 사망처럼 이스라엘이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는 표적 암살 ‘의심 사건’까지 포함한 수치다. 지역을 보면 가자지구 6건, 레바논 8건, 시리아 4건이다. 방식으론 전투기나 헬기를 동원한 미사일이나 폭탄 공격 15건, 드론 2건, 저격 1건, 폭탄 1건(서방 보도 기준) 등이다. 

표적 암살 대상에는 지난해 10월9일 이스라엘 공격을 기획한 지휘관과 드론 공격 책임자가 포함된다. 1972년 뮌헨올림픽 당시 팔레스타인의 검은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단을 살해하자 이스라엘이 이에 대한 보복으로 테러 기획자 알리 하산 살라메 등을 집요하게 추적해 살해한 ‘신의 분노’ 작전을 떠올리게 하는 표적 암살이다.

4월1일에는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이란대사관 부속건물을 폭격해 이란의 해외 작전을 담당하는 쿠드스군 지휘관들을 살해했다. 이란은 4월13~14일 이스라엘 영토에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퍼부었지만 이스라엘에 따르면 자국과 미국·영국·프랑스·요르단 공군기가 99%를 중간에서 요격했다. 미군에 따르면 일부 미사일이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 사막의 공군비행장에 떨어졌지만 피해는 경미하며, 사망자는 없었다. 

이스라엘의 표적 암살 대상 중에 눈에 띄는 인물이 하마스의 군사지도자인 모하마드 데이프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TOI)과 예루살렘포스트(JP)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군 당국은 데이프가 7월13일 폭격으로 사망했다고 8월1일 뒤늦게 확인해 발표했다. 해외를 담당하는 모사드, 군 기관인 아만과 함께 이스라엘이 운영하는 3개의 정보·공작기관으로 국내를 담당하는 신베트가 이를 함께 발표했다. 신베트는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 등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도 함께 맡고 있다. 신베트가 발표에 참가했다는 것은 데이프 사망이 표적 암살에 의한 것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하마스는 이를 부인했다. 데이프는 하마스 무장조직인 알카삼여단의 지휘관이며, 철저한 보안으로 행방이 베일에 싸였던 인물이다. 데이프도 ‘손님’이라는 뜻의 별명으로, 본명은 모하마드 디아브 이브라힘 알마스리다. 데이프에 대한 사망 주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정보 세계에서는 그의 생사는 당연히 극비 사항이다.  

이스라엘의 발표가 맞다면 하마스는 7월에 정치지도자와 군사지도자를 모두 잃은 셈이 된다. 하마스는 야흐야 신와르 가자지구 수장이 정치지도자까지 맡는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해외에서 자금과 지원을 확보해온 하니예와 군사지도자 데이프를 모두 잃고 신와르만 남은 하마스의 리더십은 아무래도 약화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안방에서 체면을 구긴 이란은 복수를 다짐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 등의 미디어는 중동에 전운이 감돈다고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란이 이를 실행할 의지와 능력을 동시에 갖추고 있느냐다. 중요한 건 화를 부르는 말이 아니라 피를 부르는 주먹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가 이란의 보복 가능성을 어떻게 보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지표가 국제유가다. 국제유가는 하니예 암살 당일인 7월31일 약간 뛰었지만 하루 이틀 만에 정상을 되찾았으며 일부 지역산은 오히려 떨어지기도 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대표적인 6대 유종과 멕시코산 원유를 합쳐 산출하는 OPEC 바스켓 유가의 경우 7월30일 배럴당 79.58달러였지만 암살 소식이 전해진 7월31일 80.65달러로 소폭 상승했다. 하지만 8월2일부터 하락해 8월6일 75.34달러에 이르고 있다. 두바이유나 미국산 서부텍사스유도 마찬가지로 안정세이거나 하락세다. 이란이 지난 4월처럼 자국의 미사일이나 드론을 동원하거나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 예멘의 시아파 후티 반군, 이라크의 시아파 군사조직 등 대리세력을 앞세워 이스라엘을 군사적으로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를 무색하게 하는 시장의 반응이다. 

 

이란, 복수 다짐에도 확전이 부담스러운 이유

눈여겨볼 대목은 이란이 중동·아프리카·중앙아시아·동남아시아 등 57개 이슬람국가로 이뤄진 이슬람협력기구(OIC)에 요청해 8월7일 외무장관 긴급 특별회담이 열렸다는 점이다. 회원국 외무장관들은 “하니예 암살은 이스라엘의 책임이며 이란의 주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는 성명을 냈다. 명분을 앞세운 립서비스다. 중요한 것은 실질적인 지지와 지원이다. 이란은 이슬람협력기구 회원국들에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의 정당성을 지지해 달라고 호소했지만 실질적인 협력은 얻지 못했다. 

이슬람 세계, 특히 중동국가들이 이란에 시큰둥한 이유는 첫째, 중동 지역에서 이란은 주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동 세계에서는 아무래도 석유·군사 강국 사우디아라비아와 군사·인구 대국 이집트 등 이슬람 수니파 국가가 주류다. 이들은 22개국으로 이뤄진 아랍어 사용권 국가를 묶은 아랍연맹을 통해 지역 정치를 좌우하고 있다. 이란은 아랍어 사용 국가가 아니어서 아랍연맹 회원국이 될 수조차 없다. 

둘째, 이란은 이슬람권에서도 소수파다. 이슬람권은 전체 인구의 80~90%를 차지하는 주류 수니파와 10~20%를 차지하는 소수 시아파로 나뉜다. 이란은 인구의 90% 이상이 시아파로 시아파 종주국으로 불린다. 중동에선 이란과 군사적 동맹관계인 레바논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 이라크의 시아파 무장세력 정도만 이슬람 시아파 세력이다.  

셋째, 이란과 수니 이슬람 국가 사이의 오랜 반목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군주제를 뒤집은 이란이 혁명을 중동 지역으로 확산할까봐 경계해 왔으며, 이란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소수 시아파에 관심을 보이면서 양국 간 갈등을 지속해 왔다. 산유국인 페르시아만 지역 군주국의 지도자들은 바다 건너 이란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   

넷째, 이스라엘과 수니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제휴 관계다. 이스라엘은 2020년 8월 아랍에미리트를 시작으로 바레인·모로코·수단 등 중동과 아프리카의 이슬람국가와 수교했다. 이러한 아브라함 협정으로 이스라엘은 미나(MENA·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왕정·권위주의 국가와 보안·정보 지원과 경제교류를 확대해 왔다. 여기에다 이스라엘은 4차례 중동전쟁을 벌인 이집트와는 1979년, 요르단과는 1994년 수교해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란이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과 군사적 대립을 확대하기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핵 개발 의혹에 따른 국제사회의 오랜 제재로 경제가 악화되면서 국내에서도 민심이반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러시아 요인도 만만치 않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국제시장에 원유를 헐값에 내다 팔면서 가뜩이나 위축돼온 이란의 석유 판매 수입이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란은 러시아의 요청으로 러시아에 드론과 미사일, 탄약 등을 대량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이 얼마나 이스라엘을 군사적으로 압박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물론 국제사회의 상황은 언제 변할지 모른다. 국제정세는 롤러코스트 같아서 언제나 상상 이상의 상황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란이 상당한 체면 손상에도 이스라엘에 군사적으로 보복하거나 외교적으로 압박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모자란 부분이 많은 게 현실이다. 당분간 사태를 관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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