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들 이상해요”…‘트럼프 저격수’ 나선 해리스의 러닝메이트 월즈
“백인 노동자 잡아라”…‘금수저’ 트럼프 이미지, ‘흙수저’ 밴스로 약점 보완 노려
‘큰 바위 얼굴 찾기’ 경쟁. 역대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러닝메이트를 고르는 일이 늘 그랬다. 사람들이 모두 인정할 만한 성품과 역량을 갖추었지만 튀지 않고 겸손하며 대통령 후보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사람.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 어니스트 같은 사람을 찾는 것이 미 대선 러닝메이트 선정 작업에서 항상 중요한 일이었다.
소설 《큰 바위 얼굴》에서 어니스트는 자기가 사는 마을의 큰 바위를 닮은 위대한 인물이 나타날 거라는 전설을 믿으며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간다. 세월이 지나면서 어니스트 앞에 이 마을 출신의 엄청난 재력가, 유명한 장군, 성공한 정치가가 나타났지만 각각 탐욕, 부덕, 권력욕에 찌든 이면을 보고 그는 실망한다. 실망한 가운데서도 어니스트는 계속되는 성찰을 통해 현실에서의 부와 명예, 권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마을의 설교자이자 현인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는 노인이 되었다. 사람들은 급기야 어니스트가 ‘큰 바위 얼굴’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어니스트는 끝내 자기는 그 ‘큰 바위 얼굴’이 아니라고 말하며 조용히 집으로 향했다. 실제 사람들에게 ‘큰 바위 얼굴’이라고 평가받으면서도 다른 ‘큰 바위 얼굴’이 있다며 선거 승리를 이끌고 국정 운영의 보완재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미국 대통령 후보들이 찾는 러닝메이트다. 트럼프와 해리스는 ‘큰 바위 얼굴’ 찾기에 성공했을까?
러닝메이트의 정치학…대선후보 약점 지운다
트럼프의 러닝메이트 JD 밴스 상원의원은 대표적인 ‘흙수저’ 백인 엘리트다. 밴스는 러스트 벨트인 오하이오 미들타운에서 태어나 백인 노동자·서민층의 절망과 좌절을 온몸으로 겪는 가정에서 오갈 데 없이 자랐다. 미 해병대에서 5년간 복무하고 제대군인 지원 프로그램으로 대학을 졸업한 후 예일대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가 된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백인 상류층 출신의 트럼프와 상당히 대비되는 인생 이력이다. 트럼프가 레드넥(Red Neck·육체노동을 하며 햇볕에 빨갛게 뒷목이 탄 백인 남성 노동자)으로 상징되는 백인 노동자·서민층을 확실히 잡기 위해 선택한 카드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밴스는 1984년생으로 상당히 젊다. 나이 든 금수저 주류 백인 남성 트럼프와 그를 보완하는 자수성가한 젊은 흙수저 백인 남성 밴스라는 콤비가 완성된 것이다.
밴스의 회고록 《힐빌리의 노래》(2016)는 성공한 남자가 자기 스토리를 자랑하는 그저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담담하게 미국 백인 노동자와 서민층의 삶을 그려나가며 미국 사회의 문제를 고발한 수작으로 큰 호평을 받으며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영화화되기까지 했다. 여기까지는 트럼프에게는 필요한 ‘큰 바위 얼굴’ 같은 인물로 볼 수 있는 스토리다.
하지만 자녀를 낳지 않는 사람들이 고양이나 키운다고 한 ‘캣 레이디(Cat ladies)’ 발언이나 무자녀층 때문에 소시오패스가 늘어난다고 했던 발언 등이 알려지면서 구설에 휘말리고 있다. 빠른 성공과 명성만큼 그늘도 상당해 보인다.
해리스의 러닝메이트로 지명된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는 여성 흑인 엘리트 대통령 후보 해리스를 보완할 수 있는 푸근한 백인 동네 아저씨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민주당 엘리트 정치인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 같은 고상한 단어로 트럼프를 비난할 때 월즈는 “그 사람들 이상해요(weird)”라는 아주 쉽고 직관적인 단어로 시청자들에게 성큼 다가갔다.
급기야 7월30일 애틀랜타 유세에서 해리스가 직접 “그 사람들 그냥 이상하지 않아요?”라고 월즈를 직접 인용해 순식간에 유행어가 되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상하다’는 표현이 트럼프 캠프를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비웃음의 대상으로 한순간에 만들어버렸다고 평했고, AP통신은 월즈를 공화당의 어둡고 불길한 수사를 가벼운 손짓으로 튕겨내는 사람이라고 보도했다. 민주당 대선후보들이 고질적으로 가지고 있던 엘리트 주의를 완화할 수 있는 해리스의 ‘큰 바위 얼굴’이 등장한 것이다. 가족농장에서 농사와 사냥을 하며 지내다가 고등학교 졸업 후 군 생활을 먼저 시작하고 이후 대학을 나와 고등학교 교사와 미식축구부 코치를 지낸 이력은 어느 동네에나 있을 법한 백인 아저씨 이력이다.
부통령 후보 간 TV 토론도 주요 승부처
뉴욕타임스는 해리스의 러닝메이트 선정 과정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조시 샤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가 부통령으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질문한 반면, 월즈는 팀의 승리를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보도했다. 소식통들은 월즈가 언제든 대선에 출마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고 전했다. 해리스는 어쩌면 자기는 ‘큰 바위 얼굴’이 아니라며 집으로 향하는 어니스트의 뒷모습을 월즈에게서 봤을지도 모를 일이다.
과거 2008년 미 대선에서 흑인 엘리트 변호사 출신 상원의원 오바마가 친근한 동네 백인 할아버지 이미지의 조 바이든을 러닝메이트로 삼아 거둔 효과를 해리스도 이번에 누릴 수 있을진 두고 봐야 한다. 현재로서는 러닝메이트 발표 직후 허니문 효과를 월즈가 톡톡히 누리고 있는 양상이다. 8월6일(현지시간) 공개된 공영매체 NPR·PBS와 마리스트의 여론조사에서 해리스는 51%의 지지율로 48%의 트럼프를 앞섰다. 해리스 캠프에는 이날 오전 월즈의 러닝메이트 발표 이후 2000만 달러(약 273억원) 이상의 후원금이 추가로 들어왔다.
8월 민주당 전당대회가 끝난 후 통상적인 일정에 따르면 9월부터는 미 대선후보들의 TV 토론과 함께 부통령 후보 토론도 시작된다. 이번 부통령 후보 토론에서 전 세계는 자수성가한 젊은 변호사 출신 밴스 상원의원과 동네 고등학교 사회 선생님 출신의 월즈 주지사의 진검 승부를 보게 될 것이다. 밴스는 베스트셀러 작가 출신이고, 월즈는 구수한 입담으로 시청자를 홀리는 사람이라 두 사람이 주고받을 ‘말 대 말 격돌’이 주목된다. 또 서로 흙수저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두 백인 남성이 중도층의 표심을 얼마나 공략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지금의 미국 정치판은 소설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 어니스트가 출마한다고 해도 끝없는 정치적 공격으로 피투성이를 만들 수 있는 분위기다. 이 같은 현실에 지친 미국 중도층은 이번에 어니스트를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