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사고 후 뺑소니, 운전자 바꿔치기, 사고 후 음주 위장 등 허술한 법망 피하기 수법 총동원 해
트로트 가수 김호중씨(33)와 그의 소속사 관계자들이 법망 위에서 뛰놀았다. 김씨는 음주운전으로 뺑소니 사고를 내고도 매니저를 동원해 ‘운전자 바꿔치기’를 해 수사에 혼선을 줬고, 사고가 발생한 지 17시간 만에 경찰 조사를 받아 음주 측정을 어렵게 했다. 법조계에선 범행 당시부터 자백에 이르기까지 김씨의 ‘노림수’가 숨어있다고 지적한다.
5월22일 서울 강남경찰서는 김씨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위험운전치상, 도주치상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검찰에 신청했다. 김씨의 친척이자 소속사대표인 이광득 대표에 대해서는 범인도피교사 혐의, 메모리카드를 파기한 본부장에게는 증거인멸 등 혐의를 적용해 함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에 검찰은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피고인의 거짓말, 업무방해로 될 수 있어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5월9일 오후 11시40분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 도로에서 마주 오던 택시를 들이받은 후 달아났다. 김씨처럼 사고 현장을 이탈하면, CCTV나 블랙박스 영상이 확보되지 않는 한 운전자를 잡아내기 쉽지 않다는 게 경찰 관계자의 전언이다. 특히 경찰의 정확한 음주 측정을 어렵게 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좋지 않다.
이후 김씨는 ‘운전자 바꿔치기’까지 시도했다. 뺑소니 사고를 낸 김씨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수습이 아닌 매니저와의 전화였다. 김씨와 통화한 매니저는 김씨의 옷을 입고 사고 발생 3시간 만에 경찰에 허위 자백을 했다. 이 대표는 ‘자신의 지시’라며 김씨를 감쌌지만, 입고 있던 옷을 주고 자신의 행세를 하도록 내버려둔 건 김씨다. 매니저가 경찰 조사를 받으며 시간을 버는 동안 소속사 본부장은 김씨 차량 블랙박스에서 메모리카드를 꺼내 제거했다.
김씨는 경찰의 눈을 피해 경기도 구리시의 한 호텔로 이동했다. 경찰이 차량 소유주가 김씨임을 알고 서울에 있는 자택을 찾았을 때 그를 발견하지 못했던 이유다. 호텔로 잠적했던 김씨는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산 것으로 알려졌다. 법률사무소 파운더스의 하진규 변호사는 “음주운전을 한 당사자가 또 음주를 한 이유는 혹여 범행이 발각됐을 때, 사고 전이 아닌 후에 마신 것처럼 속이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결국 사고가 발생한 지 17시간이 지나서야 경찰에 출석했다. 소변검사 역시 사고 발생 20시간 후에 했다. 통상 음주 후 8∼12시간이 지나면 날숨을 통한 음주 측정으로는 음주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김씨 혈중알코올농도는 0.03% 미만으로 나왔고, 면허정지 수치가 아니었다. 현행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운전자의 혈중알코올농도가 0.03% 이상으로 확인돼야 음주운전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마신 술의 종류와 체중 등을 계산해 시간 경과에 따라 혈중알코올농도를 유추하는 ‘위드마크(Widmark)’ 공식이 있지만, 장시간 행적을 감춘 운전자에게 적용하기는 어렵다. 경찰이 김씨에게 구체적 혈중알코올농도 수치를 입증해야 하는 음주운전 혐의 대신 특가법상 위험운전치상 혐의를 적용한 이유다. 이는 음주 또는 약물로 정상적 운전이 곤란한 상태에서 차를 운전해 사람을 다치게 한 경우에 성립된다.
자신감을 얻은 김씨는 거짓말을 했다. 김씨 소속사는 “술잔에 입은 댔지만 술은 마시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김씨의 음주 정황은 경찰의 압수수색 등 수사 과정에서 속속 드러났다. 경찰은 술자리 동석자와 주점 직원 등으로부터 ‘김씨가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본 것 같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결국 김씨는 사고 열흘 만에 음주운전 사실을 시인했다. 김씨 소속사 역시 “상황을 숨기기에 급급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이 같은 인정은 ‘자백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재판 전에 하루라도 빨리 자백해 정상참작을 호소하려는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법무법인 시우의 이용민 변호사는 “피고인의 거짓말이 상황에 따라서는 업무방해까지 될 수도 있고 구속 사유로 적용될 수도 있다”며 “처음엔 사건을 덮기 위한 행동을 하다가 정황이 어느 정도 밝혀지면서 자백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제 김씨 측은 “술은 마셨지만 사고는 술 때문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김씨는 “양주는 입에 대지 않았고 술은 소주 열 잔 정도 마신 게 전부”라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진다. 사고는 휴대폰과 차량 블루투스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발생한 것일 뿐, 음주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대검까지 나서 ‘김호중 방지법’ 건의
김씨의 이 같은 행태에 대한 사회적 비판 여론이 커지자 급기야 대검찰청까지 전면에 나섰다. 대검은 음주 사고를 내고 도주한 후 고의로 추가 음주를 한 의혹을 받는 김씨를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을 신설해 달라고 법무부에 건의했다. 이른바 ‘김호중 방지법’이다. 대검이 제출한 입법 건의안은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를 일으켰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사람이 적발을 면할 목적으로 술을 더 마시면 1~5년의 징역 또는 500만~2000만원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음주측정거부죄와 형량이 동일하다.
이원석 검찰총장도 이번 사건을 사법 방해 행위로 보고 ‘운전자 바꿔치기’ ‘계획적 허위 진술과 진상 은폐’ 등에 엄정 대응하라고 일선 검찰청에 지시했다. 이 총장은 “수사 단계에서부터 경찰과 협력해 관련 처벌 규정을 적극 적용하고 형사소송법상 증거인멸·도주 우려 등을 구속 사유 판단에 적극 반영하라”고 말했다.
이번 김호중씨 사건처럼 음주운전 범죄를 저지르고도 사고 수습보다는 사건 은폐를 먼저 시도하는 것은 ‘솜방망이’ 같은 우리나라의 처벌 수위 때문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김씨처럼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가 필요한 조처를 하지 않으면 ‘사고 후 미조치’ 혐의를 받는다. 이에 따르면 김씨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그러나 초범이거나 인명 피해가 없으면 대부분 가벼운 벌금형에 그친다.
법제처 세계법제정보센터가 2018년 발표한 ‘각국의 음주운전 처벌규정’에 따르면 일본은 음주운전의 경우 운전자뿐만 아니라 차량 제공자, 주류 제공자 및 동승자도 함께 처벌하고 있다. 중국은 만취운전으로 적발돼 형사재판으로 넘어가면, 법원이 판결할 수 있는 최고형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