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일 전쯤, 한 모임에서 대학병원 의사이자 교수인 친구와 자리를 함께했다. 가까이 앉아 대화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국민들의 관심이 쏠려있는 의-정 갈등 사태가 화제에 올랐다. 그는 자기도 병원장에게 사직서를 제출한 상태인테 수락은 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내 의료 현장을 떠나있는 제자들에 대한 걱정을 쏟아냈다.
그는 아직 자신이 재직하던 병원에 그대로 남아있지만, 지금 대한민국 병원은 위태롭다. 의사들이 하나둘 병원을 떠나고 그 빈자리에는 환자들의 한숨소리가 채워지고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월6일 ‘의사인력 확대 방안’ 긴급 브리핑을 통해 의대 정원을 2025학년도부터 2000명 증원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갈등이 시작된 지 벌써 석 달째다. 병원과 환자 모두 진통 속에 갇힌 시기다. 문제는 이 사태가 언제 해결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정부는 증원 원칙을 고수하고, 의사들은 절대 반대를 외치는 상황이 완강하게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쪽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아 마치 서로 마주 보고 달리는 기차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의사 증원은 다수의 국민이 원하는 방향이다.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그런 국민들의 바람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원칙에 대한 지지이지 방법에 대한 지지와는 다를 수 있다. 지금 이 시간 많은 국민이 바라는 방향은 의사의 수를 늘리되 그 과정이 원만하게 이루어지는 쪽일 것이다. 정부와 의사들이 서로 승부를 하듯 이 문제를 다루면 국민만 더 크게 피해를 볼 것은 불을 보듯 빤하다.
그런데도 상황은 누그러지지 않고 오히려 더 꼬이는 형국이다. 신임 의사협회장은 “의료를 사지로 몰아가는 정책은 죽을 각오로 막아내겠다”며 강경한 태세로 일관하고, 최근에는 간호사들까지 단체행동에 나서 “간호사에게 의사 업무 전가하는 일을 중단하라”고 외쳤다. 또 법원은 정부를 향해 의대생 2000명 증원과 관련한 대학의 인적·물적 시설에 대한 엄밀한 심사 여부를 포함한 과학적 근거자료를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법원의 최종 결정이 날 때까지는 2025학년도 의대 모집 정원 계획을 최종 승인하지 말라고도 했다. 거기에 더해 의정협의체 회의록 논란, 일부 대학교의 의대 증원 관련 학칙 개정안 부결·보류가 이어지면서 혼돈은 끝이 없다.
의대 정원 확대를 서두르는 정부에 대해 속도조절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의사나 법원뿐만 아니라 여권 내에서도 나온다. 의사 출신인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현재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올해는 정원 규모를 현행대로 선발하고, 내년부터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의대 증원 규모와 시기를 정하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주장했다. 좀 더 차분하게 준비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라는 주문이다.
윤 대통령은 4·10 총선 직후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고, 경제와 민생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국민이 몸 아플 때 제약 없이 진료·치료를 받는 행위는 그야말로 민생 중의 민생, 목숨도 걸린 민생이다. 정부가 민생 안정을 최우선으로 여긴다면 의-정 갈등 사태를 이대로 끌고 가서는 안 된다. 정부나 의사들 모두 끝내 이기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앞세워야 한다. 이 시점에서는 영수회담에서 의대 증원에 동의한 국회 다수당 민주당의 사태 해결 노력도 함께 필요하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힘없는 민생의 희생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먼저 손을 내미는 쪽이 더 용기 있게 보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