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어 1분기 실적도 부진 전망
게임 업계, 해외시장으로 눈 돌려…신작 흥행 여부에 촉각
엔씨소프트, 넷마블, 넥슨 등 한국을 대표하는 1세대 게임 업체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실적 부진에 시달리며 최악의 한 해를 보내더니, 신작 부재와 확률형 아이템 표기 오류 등 이슈로 암울한 1분기 성적표를 받을 전망이다.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국내 게임 업계는 급속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엔데믹 이후 좀처럼 실적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 게임 흥행 실패, 신작 부재 등의 영향으로 풀이되고 있다.
게임 3사, 1분기 예상 수익 빨간불
게임 산업을 대표하는 ‘3사’(엔씨, 넷마블, 넥슨) 모두 1분기에 부진한 실적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 먼저 넥슨을 보자. 탄탄한 실적을 기반으로 유일하게 호실적을 이어오던 넥슨은 올 1분기에는 실적 둔화가 예상된다.
넥슨은 최근 발표한 ‘IR’(투자자들에게 기업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문서) 자료에서 올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14~22%, 영업이익은 61~80%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지난 1월 공정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과 116억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받은 부분이 컸다. 과징금은 업계 최대 규모였다. 확률형 아이템을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고도, 이를 알리지 않고 기만했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엔씨소프트는 어떨까. 지난해 하반기부터 실적 둔화로 위기를 맞고 있는 엔씨소프트도 1분기 영업이익이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엔씨소프트는 1분기 매출 4198억원과 영업이익 162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3%, 80.1% 감소한 수치다.
지난해 12월 국내에 첫선을 보인 ‘TL(쓰론 앤 리버티)’이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MMORPG(온라인역할수행게임) 장르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리니지’ 시리즈가 전과 같은 매출을 올리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국신용평가도 최근 엔씨소프트의 신용등급 전망을 기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넷마블도 88억원의 영업손실을 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188억원의 흑자를 내며 7분기 연속 적자에서 벗어났지만, 다시 분기 적자를 기록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다만 지난해 9월 출시한 ‘세븐나이츠 키우기’가 성과를 보이면서 전년 동기보다 적자 폭을 줄일 것으로 보인다. 1분기 총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3%가량 오른 6207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된다.
게임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게임 업계는 업황이 위축된 데다 확률형 아이템 규제 등의 이슈로 공정위 조사까지 더해지면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며 “이번 1분기 성과를 보면 게임 업계 모두 다소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게임 업계에는 확률 조작부터 슈퍼 계정까지 ‘불공정 조작 의혹’이 일고 있다. 넥슨은 2010년 5월 자사 게임인 ‘메이플스토리’에 확률형 아이템인 ‘큐브’를 도입했다. 큐브는 캐릭터가 장착하는 장비에 부여된 잠재 옵션을 변경하거나 상위 등급으로 올릴 수 있는 확률형 상품이다. 출시 이후 메이플스토리 수익을 견인하는 대표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공정위에 따르면 큐브 매출은 메이플스토리 전체 매출액의 약 3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컸다. 넥슨은 큐브 상품 도입 당시 ‘옵션 출현’ 확률을 균등으로 설정했다. 그러나 2010년 9월15일부터 큐브 사용 시 ‘인기 옵션’이 덜 나오도록 가중치를 설정하는 방식으로 확률 구조를 변경했고, 이를 이용자에게 알리지 않았다.
2013년 7월14일 넥슨은 장비의 최상위 등급(레전드리)을 만들고, 장비를 해당 등급으로 만들 수 있는 블랙 큐브를 출시했다. 넥슨은 최초 블랙 큐브의 등급 상승 확률을 1.8%로 설정했으나, 이후 5개월(7~12월)에 걸쳐 그 확률을 1.4%까지 조금씩 낮췄다. 2016년 1월에는 확률을 다시 1%로 낮추고도 그 사실을 이용자에게 또 알리지 않았다.
공정위는 이러한 넥슨의 행위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전자상거래법)의 거짓된 사실을 알리거나 기만적 방법을 사용해 소비자를 유인, 또는 소비자와 거래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시정명령과 더불어 과징금 116억원(잠정)을 부과키로 했다.
엔씨소프트 또한 공정위의 조사를 받고 있다. 관리자 계정인 ‘슈퍼 계정’을 이용해 모바일 게임 ‘리니지M’과 ‘리니지2M’에서 유저 간 경쟁에 몰래 참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유저 간 경쟁이 핵심인 MMORPG에서 관리자가 만든 슈퍼 계정이 일반 이용자와 몰래 경쟁하는 것은 기만적인 방법으로 소비자를 유인한 불공정행위에 해당한다는 게 골자다. 이들이 의도적으로 실제와 다르게 확률을 고지한 점이 사실로 드러나면 이 역시 ‘전자상거래법 위반’이 된다.
이 밖에도 공정위는 확률형 아이템 조작 의혹을 받는 위메이드(나이트 크로우), 그라비티(라그나로크), 웹젠(뮤 아크엔젤) 등 일부 게임사에 대해서도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대형 신작 출시해 글로벌 시장 노릴 것”
침체의 늪에 빠진 국내 게임 회사들이 실적 개선을 위해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K게임 창업 1세대도 마찬가지다.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그간 우리 기업들이 큰 성과를 내지 못하던 북미나 유럽 등 서구권 공략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선 넥슨은 자회사 네오플이 제작한 2D 액션 RPG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을 5월21일 중국에 출시할 계획이다. 넥슨게임즈가 개발한 ‘히트 2’는 4월17일부터 일본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끝이 아니다. 넥슨은 최근 국내 신생 게임 개발사 그레이게임즈와 가칭 ‘프로젝트T’ 글로벌 배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 프로젝트는 국내 인기 웹소설 ‘템빨’ IP를 활용한 MMORPG로 개발되고 있다. 이번 계약을 통해 프로젝트T의 국내와 글로벌 서비스 판권을 취득한 넥슨은 그레이게임즈와 협력해 해외시장을 집중 공략한다.
엔씨소프트도 글로벌 게임사로 거듭나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고 있다. 대표적인 기대작으로 아마존게임즈와 함께 준비 중인 MMORPG TL은 PC뿐만 아니라, 플레이스테이션 5(PS5), 엑스박스 시리즈 S|X 등 콘솔 플랫폼에서 글로벌 CBT(클로즈 베타 테스트)를 우선 진행했다. 올해 안에 북미 등 글로벌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넷마블도 신작을 출시했다. 4월24일 신작인 ‘아스달 연대기: 세 개의 세력’을 대만, 홍콩, 마카오 등에 동시 출시했다. 또 5월8일에는 웹소설 기반인 ‘나 혼자만 레벨업: 어라이즈’를 국내와 글로벌 시장에 동시적으로 선보인다.
게임 수요 감소 및 경기 불황 등의 여파로 지난해 침체기를 겪은 국내 게임 업계. 특히 올해 흥행 신작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게임 창업 1세대 기업의 반등을 통해 흑자 기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