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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날의 칼’인 혁신공천…오만한 세력은 분열했고 국민은 심판했다

역대 총선을 복기해 보면 총선 판세를 결정짓는 요소는 리더십 대결, 공천 경쟁, 정책이다. 중요도는 순서대로다. 이 가운데 혁신공천은 양날의 칼이다. 그간 혁신을 빌미로 한 자기 계파 챙기기는 비일비재했다. 공천 갈등으로 선거 승패가 갈렸던 대표 사례는 2016년 총선이다. 

2016년 총선에서 공천 갈등의 첫 시작은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이 아닌 민주당이었다. 민주당엔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이라는 두 명의 유력 대선주자가 있었다. 2015년 초 전당대회에서 문 대표가 선출됐고, 친문 계열이 당 주도권을 잡게 됐다. 대선후보 입장에서 보면 2016년 총선으로 경쟁 세력은 축소, 자기 세력은 확대해야 했다. 

2016년 1월15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와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된 김종인 전 의원이 기자간담회를 위해 국회 당대표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2016년 1월15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와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된 김종인 전 의원이 기자간담회를 위해 국회 당대표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안철수 분당, 문재인 응전, 김종인 영입

안 의원은 2015년 12월초 혁신전당대회를 제안한다. 내용적으로 볼 때, 차기 대선후보로서의 지위와 지분을 보장받으려는 취지였다. 문 대표는 이 제안을 거부한다. 당시 외각에 호남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천정배 의원이 있었다. 천 의원은 이때 ‘국민회의’라는 정치조직을 만든다. 혁신전대 제안이 거부되자 안 의원은 12월13일 민주당을 탈당한다. 곧 호남 의원이었던 황주홍·문병호·유성엽 의원도 탈당한다. 안 의원은 12월21일 신당 창당을 선언한다. 그렇게 국민의당이 만들어진다. 이후 국민의당으로의 합류가 이어져 원내교섭단체 요건인 20석을 충족하게 된다. 

이 분열은 유력 대선후보가 두 명이었던 것에서 유래한다. 2017년 12월 대선이 예정돼 있었는데, 안 의원 입장에서는 문 대표의 공천 주도권을 신뢰할 수 없었다. 놀라운 점은 분열 이후 문 대표의 대응이었다. 한마디로 도전에 맞선 응전이었다. 호남 의원들이 차례로 빠져나가자 문 대표는 대표직에서 사퇴한다. 그리고 같은 날 김종인 비대위 체제를 출범시킨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보수 쪽에서 주로 활동했던 중도보수 성향의 정치인이다. 2012년 총선에서는 박근혜 비대위 구성원이었다. 노태우 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경제비서관으로 재직했다.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진보 성향’의 대표 정치인이 ‘중도보수’ 성향의 비대위원장을 영입한 사건이었다. 결과적으로 ‘진보-중도 정치연합’의 성격을 갖게 됐다. 문 대표가 지명했기에 진보 표는 이탈하지 않았다. 문 대표에게 비판적이었지만 김 위원장에게 우호적인 중도 표 일부가 추가됐다. 실질적으로는 ‘문재인-김종인 비대위’로 봐야 하는 이유다. 

승부수는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세 가지 성공 요인이 있다. 첫째, 리더십 측면에서 문재인-김종인의 정치연합을 성공시켰다. 내용적으로 진보-중도 정치연합의 성격을 갖게 됐다. 둘째, 공천 혁신을 이뤄냈다. 김 위원장은 이해찬·정청래·김현·전병헌·강기정 등을 ‘컷오프’ 했다. 문 대표 체제에서는 할 수 없는 과감한 조치였다. 이는 유권자들에게 ‘민주당의 변화 의지’로 전달됐다. 

‘민주당스럽지 않은’ 영입도 이뤄냈다. 양향자·조응천·김병기·김병관이 상징적이다. 양향자는 삼성전자 상무 출신이다. 호남 출신이며 여상 출신이다. 조응천은 박근혜 정부 청와대 비서관 출신이다. 김병기는 국정원 출신이다. 김병관은 게임업체 대표로서 재산이 수천억원이다. 이들 모두는 ‘민주당스럽지 않은’ 공천을 상징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외연 확장을 상징한다. 변화 의지도 보여줬다. 

‘민주당스러운’ 사람도 영입한다.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TV토론 스타 이철희, 정의로운 이미지의 표창원 등을 영입한다. ‘민주당스럽지 않은’ 사람과 ‘민주당스러운’ 사람의 순차적 영입 역시 진보-중도 정치연합의 효과를 발휘하게 했다. 

유승민 공천 배제와 진박 감별 논란 ‘거대한 분열’

박근혜 정부는 2013년 2월 출범한다. 2014년 전당대회에서 김무성 의원이 대표로, 2015년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로 선출된다. 두 명 모두 자기 캐릭터가 강한 소신형 정치인이다. 동시에 차기 대선후보였다.

2015년 유 원내대표는 취임 이후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박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언론의 주목을 받음과 동시에 박 대통령에게 미운털이 박히게 됐다. 결국 청와대 압력에 의해 원내대표에서 강제로 쫓겨나게 된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는 소위 ‘진박(眞朴) 감별 논란’이 발생한다. 진박, 찐박, 참박 등 기상천외한 명칭이 언급됐다. 

박 대통령을 호가호위하던 친박계 정치인들은 이한구 전 의원을 공천관리위원장으로 만들었다. 김무성 대표는 대표임에도 공천권을 뺏기고 공관위원장에게 공천심사를 받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친박에서는 유승민 의원의 정치적 매장을 추진하며 공천을 주지 않으려 했다. 유 의원은 새누리당을 탈당하며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곧 뜻밖의 반전이 벌어진다. 김 대표가 ‘공천 의결’을 거부하며 부산 영도다리로 가버렸다. 이른바 ‘옥새 파동’이 벌어졌다. 최종적으로는 유 의원 지역구를 ‘무공천’하는 것으로 타협을 보게 된다. 진박 감별 논란, 유승민 찍어내기, 김무성 옥새 파동은 새누리당의 공천 갈등을 보여주는 키워드였다. 

진보 유권자층처럼 보수 유권자층도 동일 성향이 아니다. 일종의 ‘스펙트럼 연합’ 성격을 갖는다. 한국 보수는 ‘권위주의에 비판적인’ 보수와 ‘권위주의를 지지했던’ 보수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는 부산·울산·경남(부울경) 보수가 대표적이다. 후자는 대구·경북 보수가 대표적이다. 박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거부감을 느낀 ‘부울경 보수’는 2016년 총선에서 지지를 철회한다. 일부는 투표장에 가지 않았고, 일부는 국민의당에 투표했다.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123석으로 원내 1당, 새누리당은 122석으로 원내 2당이 됐다. 국민의당은 38석을 얻었다. 국민의당은 호남과 부울경 일부, 수도권의 중도 성향 지지를 동시에 받으며 뜻밖의 선전을 했다.

정리해 보자. 2015년 연말~2016년 초 민주당의 분열이 있었다. 위 표에서 볼 수 있듯, 대통령 지지율은 실제로 높았고, 새누리당 정당 지지율도 민주당에 비해 2배 가까이 됐다(현재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은 30%대 초반).

당시 새누리당에는 ‘초대박 압승론’이 팽배했다. 지나친 낙관론은 오만함으로 연결됐고, 진박 감별 논란, 유승민 찍어내기, 김무성 옥새 파동으로 확대됐다. 반면 민주당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문재인-김종인 비대위’를 통해 돌파했다. 사력을 다해 혁신하고, 외연을 확장했다. 결과는 민주당의 신승이었다. 민주당이 원내 1당이 됐기에 국회의장은 민주당 몫이 됐다. 2016년 12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역시 4월 총선이 발단이 됐다. 

오만과 분열은 패배의 지름길이다. 지난해 10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압승 이후 민주당에는 ‘초대박 압승론’이 팽배하다. 민주당에 지금 거대한 위기의 기운이 맴돌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지도부를 포함해 아직 ‘위기’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는 점이다. 선거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좋은 불평등》 저자)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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