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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 군산공장서 도장작업 하던 30대 A씨, 백혈병 발병…법원 “업무와 관련성 있다”

30대의 한 젊은 노동자가 병상에 누워 있다. 그는 하루 종일 위험물질에 노출된 곳에서 일하다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자신의 병이 회사 책임이라는 것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는 병상에서 길고 긴 법정투쟁을 해야 했다. 소송은 2013년 7월 시작돼 3년을 넘겼다. 올해 2월10일, 마침내 1심 결론이 나왔다. 결과는 ‘원고 승소’. 한국GM 군산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A씨(37)가 얻은 백혈병이 산업재해(산재)에 해당된다는 판결이 나왔다. 한국GM 작업장에서 발병한 백혈병이 산재로 인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씨의 사례는 한국GM 노동자 전체가 ‘위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우려를 낳을 전망이다.

 

A씨에게 발병한 백혈병이 산재로 인정받기까지는 자그마치 4년이 걸렸다. 서울행정법원 판결에 따르면, A씨는 2008년 3월 한국GM에 입사했다. 첫 3개월은 창원공장에서 일했다. 이후 그는 근무지를 군산공장으로 옮겼다. 군산에서 맡은 일은 도장(塗裝)작업이었다. 그는 자동차 차체의 오염물을 제거하고, 철판 부위에 시너를 뿌리는 일을 했다. 로봇이 도색하지 못하는 차체 부분에 직접 들어가 페인트를 칠하는 작업도 맡았다.

 

A씨는 2011년부터 2012년 초까지 도장작업이 된 차량을 보완해 손질하는 ‘재도장’ 작업을 했다. 역시 시너와 도료 등을 써야 했다. 이렇게 A씨는 하루에 적게는 12대, 많게는 20대의 차량을 다뤘다. 하루 8~10시간 가까이 시너·페인트를 활용하는 작업을 한 셈이다. 일부 도장작업에 활용되는 시너와 도료에는 벤젠 등 발암물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게 일하던 A씨는 2012년 3월 백혈병 진단을 받게 된다. 당시 그의 나이 32세였다.

 

한국GM 군산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에게 백혈병이 발생했다. 사진은 한국GM 군산공장에서 작업 중인 노동자들 © 연합뉴스

한국GM서 도장작업 4년 만에 백혈병 진단

 

A씨는 자신에게 발병한 백혈병이 작업장의 유해물질 때문이라는 것을 입증하려 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우선 근로복지공단이 제동을 걸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심의결과를 근거로 들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A씨의 발병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한국GM에서 사용하는 시너 종류가 11개다. 이 중에서 벤젠이 검출되지는 않았다. 벤젠이 불순물 형태로 포함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A씨가 근무하는 과정에서 벤젠 노출 수준은 높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한다. A씨의 백혈병은 업무관련성이 낮아 보인다.”

 백혈병 발병을 산재로 판단하지 않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A씨는 2013년 7월 행정소송을 냈다. A씨의 변호인 측은 의학적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016년에 A씨 주치의(가톨릭대학교성모병원)와 법원이 감정을 의뢰한 대한직업환경의학회의 의학 소견이 증거로 제출됐다. 내용은 앞선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의견과 판이하게 달랐다.

 

 

▶A씨 주치의 

“A씨는 도료·시너·솔벤과 같은 물질에 노출됐다…(위험)노출 방식은 스프레이 도장을 통한 흡입, 시너 등 용제(물질을 용해시키는 데 쓰는 액체)를 천에 적셔서 쓰는 동안의 피부노출 등이다. 더욱이 적절한 피부보호구를 착용할 수 없는 노동환경에서 유해물질의 노출 가능성은 매우 높다.”

▶대한직업환경의학회 전문의 

“벤젠이나 포름알데히드가 백혈병을 유발한다는 것은 수많은 역학적·실험적 연구문헌을 통해 입증된 사항이다. 시너에는 제조과정에 벤젠이 소량 불순물로 포함돼 있는 제품들이 있다. 벤젠은 매우 낮은 농도에서도 3년 이상 노출될 경우 백혈병 발생 위험이 있다. 한국GM 도장공장에서 4년 근무한 A씨가 벤젠 등 유해물질에 노출돼 백혈병이 발생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뒤집힌 의학적 판단을 근거로 서울행정법원 행정2단독 박준석 판사는 “A씨의 백혈병이 업무와 관련성이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박 판사는 A씨가 한국GM에서 일했을 때 백혈병 발병과 관련성이 있을 정도의 벤젠에 노출됐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벤젠은 도장작업에서 쓰는 물질에 들어 있는 경우가 많고, 이 성분이 쉽게 인체에 흡수된다는 이유에서다. 또 박 판사는 A씨가 일한 한국GM 군산공장의 작업장에서, 공기 중에 벤젠이 불순물 형태로 존재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봤다.

 

인천시 부평구 한국GM 본사 © 연합뉴스

“안전점검 나올 때만 안전 매뉴얼 따라”

 

아울러 A씨에게 백혈병이 발병한 시점도 법원 판단의 주요 근거가 됐다. A씨가 병을 확진받은 2012년 3월은 그가 시너를 활용해 도장작업을 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박 판사는 A씨가 방독마스크 등 제대로 된 보호구를 착용하지 못한 점도 판단의 이유로 들었다. 박 판사는 이런 판단을 종합해 “A씨에게 백혈병을 유발할 수 있는 특별한 다른 요인이 없고, 비교적 젊은 나이에 발병에 이르렀다. 위험물질 노출 누적량이 법적 기준보다 적더라도, 업무 중 노출된 벤젠이 백혈병 발병의 원인이라고 추단할 수 있으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할 수 있다”면서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은 위법하다. A씨의 청구는 이유 있어 인용한다”고 밝혔다.

 

사건을 진행한 권동희 노무사는 “한국GM 노동자에게 백혈병이 발병해 산재가 인정된 첫 번째 사례”라면서 “이전 사안들보다 A씨의 작업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았는데도 산재가 인정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2만 명에 달하는 한국GM 노동자의 작업환경에도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한국GM의 허술한 노동자 안전관리 체계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지적도 나온다. A씨와 같은 부서에서 도장작업을 했던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한국GM군산 비정규직지회 관계자는 “도장공장 내부에 들어서면 화학물질 냄새가 많이 난다. 벤젠 노출이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는 하루 종일 위험물질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매년 공인된 기관에서 나와 위험물질 수치를 검사한다”면서도 “평상시 작업하면서는 작업자가 위험물질에 노출되다가도 안전점검이 나올 때만 안전 매뉴얼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안전점검이 끝나면 다시 위험물질에 노출되는 일상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GM 측은 “상황을 확인하는 중이다. 근로복지공단 측에서 아직 회사 측에 통보가 오지 않았다”면서 “현재로서는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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