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② 강원 철원
강원도 철원군은 대도시였다. 한반도 정중앙에 위치한 이곳엔 서울과 원산을 연결하는 철도가 놓여 있었고, 각종 농수산물과 축산물이 모여들었다. 금강산으로 가는 여행객들이 철원역을 거쳐 갔으며 이들을 위한 여관과 식당이 거리에 즐비했었다.
그렇게 번성했던 시가지의 일부는 이제 민간인통제구역 안에 있어 쉽사리 가볼 수도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그 옛날 이 곳에 기차가 달렸고, 학교가 있었으며, 백화점과 극장을 비롯한 각종 상점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런 도시가 존재했었다는 기억조차 이제는 가물가물해질 시간이 흘렀다. 출입통제소 바로 앞, 전쟁으로 파괴되었을지언정 그 위용은 여전한 노동당사만이 대도시였던 과거 철원의 위상을 증명하고 있다.
오늘날 많은 관광객들과 학자들, 예술가들이 철원의 기구한 역사와 역설적으로 보존하게 된 생태환경에 매력을 느끼고 철원을 찾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군사분계선에 의해 절반이 잘려나간 채 옛 도시의 일부분만 겨우 남아 있는 남한의 변방지역 뿐이다. 전쟁으로 인해 한 도시의 번성했던 역사가 송두리째 사라진 것이다.
철원 옛 시가지의 많은 장소들이 민간인 출입통제구역 내에 있다. 필자는 민통선 출입을 열흘 남겨두고, 무슨 일로 어디를 몇 시에 어떤 경로로 갈 건지 시시콜콜 적은 출입신고서를 군부대에 제출했다. 일단 전방지역을 가니 곳곳에 보이는 방벽들이 묘한 긴장감을 준다. 출입통제소 앞에 설치해놓은 바리케이트와 ‘일단 정지’ 사인들 때문일까. 벌써 몇 번째 방문이지만 혹시 출입신고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까 매번 불안하다. 한반도 중심의 광활한 평야를 가진 도시, 사통팔달 물류의 중심지였던 도시 철원은 그렇게 삼엄한 경계 속에 갇혀 있다.
군인 한명이 우리 일행을 따라 함께 들어가겠다고 했다. 아무래도 외부인이 섞인 일행이다 보니 경계를 하는 모양이었다. 필자와 동행했던 지역주민이 뭘 굳이 그렇게까지 하냐며 너스레를 떤다.
민간인 통제구역이라고 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고, 철원 농민들의 논밭이 있다. 철원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농사일을 위해서, 혹은 그 외의 다른 볼일 때문에 민통선을 드나든다. 군인들과의 사이도 그만큼 스스럼없어 보였다. 주민들에게는 출입통제니 뭐니 하는 것들이 다 거추장스럽다.
1930년대 철원 시가지 풍경을 찍은 사진을 보면 목조건물, 석조건물, 기와집과 초가집들이 중심가로를 따라 빼곡히 들어서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일부 건물들의 흔적만 겨우 남아있을 뿐이다. 다 무너진 옛 금융조합 건물터에 금고로 사용했던 부분만 남아 있는데, 그 모습이 어딘가 실소를 터뜨리게 한다. 그 옛날에도 금고는 참 튼튼하게 지었었나 싶다.
그 옆에는 일본인 식당주인이 겨울철 호수에서 얼음을 채취해 보관해두었다가 여름에 시내의 업소들에 팔았던 얼음창고가 있다. 무더운 여름날 얼음을 사고파는 분주한 상점가의 모습이 떠오른다.
서울과 원산, 금강산으로 열차가 내달리던 철원역은 과거의 영광을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폐허가 되어 있다. 하지만 당시의 철원역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빨간 벽돌의 2층 건물이 ‘아름답고 웅장했다’고 말한다. 역 앞에는 크고 작은 나무가 심겨진 광장이 있었고 구내매점도 있는, 오늘날과 다름없는 평범한 기차역이었다.
이곳에서 4시간을 달리면 금강산이다. 금강산은 아침에 출발해서 저녁에 돌아오는 일정이 가능할 정도로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가까운 곳이었다. 전쟁을 전후로 10대 시절을 보낸 주민들에게 금강산으로 다녀 온 수학여행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은 대부분의 구간이 차도나 농로로 정비되어 옛 모습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데, 그 흔적을 따라 동쪽으로 가다보면 끊어진 철길에 다다른다. 비무장지대 내에 있는 나머지 구간은 철원의 승리전망대에서 멀리서나마 바라볼 수 있다. 아직까지는 철로의 흔적이 선명하지만, 곧 주변의 초목들로 뒤덮일 것만 같다.
오늘날 철원은 철새도래지로 유명하다. 정전 후 체제가 안정되면서 국가에서는 전략적으로 민간인 마을을 건설하였고, 강원도 내에서는 철원에 가장 많은 대북 선전마을이 만들어졌다. 경작지가 증가하였으며 논에 물을 대기 위한 인공저수지도 만들어졌다. 그러자 두루미를 비롯한 철새들에게 안정적인 먹이터와 잠자리를 제공하게 되면서 탐조지역으로 유명세를 얻게 된 것이다. 철새들이 찾아오는 11월부터 추수가 끝난 논 중간중간 두루미 가족들이 먹이를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매일 아침 저수지에서 잠에서 깬 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르는 장면은 가히 장관이다. 한 도시가 번성하였다가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자리에, 철새들이 찾아오고 생태계가 되살아나며 마치 도시가 생겨나기 이전으로 회귀하는 듯하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도 이제 ‘젊다’고 말하기 어렵게 될 만큼, 분단 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두 동강이 난 한반도의 모습이 익숙하다. 이제는 철원의 옛 모습을 기억하는 주민들도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이에 저항이라도 하듯, 지금 철원에서는 역사공원, 태봉국 테마파크 등 굵직굵직한 역사 재현 프로젝트들이 진행 중이다. 넓은 부지 위에 늘 해왔던 방식으로 식상한 그림들을 그려 넣는다. 그로 인한 생태계 파괴 문제는 굳이 말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