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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고 관심 속 양국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다

9월1일 서울월드컵경기장 남측 스탠드가 오후 무렵부터 노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국과 중국의 경기가 시작되기 두 시간 전 무렵이었다. 원정경기를 치르는 중국은 자신들이 가장 선호하는 붉은색이 한국의 홈 유니폼과 겹치는 바람에 노란색 원정 유니폼을 입었다. 8000여 명의 중국 응원단도 노란색 티셔츠를 맞춰 입고 남측을 메웠다.당초 중국축구협회는 1만5000장의 티켓을 대한축구협회로부터 선구매했다. 초기에는 5만 장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1만5000명의 절반 정도만 왔다. 한국이 홈에서 치른 A매치 중 1998년 일본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원정 응원단이었다.

 

중국 미디어의 관심도 비상했다. 5개의 중계사와 총 150명의 취재·사진 기자가 경기장을 찾았다. 최근 중국 미디어의 신흥 강자로 떠오른 러(LE)TV는 양국의 훈련을 자체 사이트를 통해 이원 생중계했고, 중국 현지에서는 800만 명 이상이 동시 접속했다.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첫 경기에 대한 중국의 기대가 그만큼 컸다는 얘기다. 러TV의 천이퉁 기자는 “중국의 기대가 크다. 승점 1점 이상을 가져갈 거라 본다”며 이 경기에 대한 관심을 전했다.

 

9월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국과 중국의 경기에서 중국 응원단 치우미가 대형 오성홍기를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


中 “한국만 이기면 보너스 5억원”

 

 하지만 중국 대표팀이 맞은 현실은 기대치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들은 이번 최종예선에 간신히 진출했다. 2차 예선에서 카타르에 밀려 조 2위를 차지했다. 홍콩과의 두 차례 경기에서 모두 비기며 2014 브라질월드컵에 이어 또 한 번의 2차 예선 탈락 위기에 몰렸었다. 2차 예선 마지막 2경기를 모두 승리한 중국은 북한이 필리핀에 2대3 역전패를 당하는 바람에 와일드카드 최하위로 최종예선에 오를 수 있었다. 

 

중국의 기대심리는 최근 불고 있는 국가정책에서 비롯됐다. 축구광으로 유명한 시진핑 국가주석은 축구를 통한 사회통합을 기대하며 정부와 기업이 거대한 투자를 하는 ‘축구굴기(축구로 우뚝 선다)’를 내세웠다. 그 투자가 집중되고 있는 자국 프로리그인 슈퍼리그는 비유럽권 국가로서는 유례없는 이적료와 연봉을 쓰며 세계적인 스타를 불러 모았다. 슈퍼리그의 강자인 광저우 헝다는 2013년과 2015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아시아 최고 클럽에 등극했다. 그 성과는 역대 월드컵 본선에 단 1번밖에 출전하지 못한 중국 대표팀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중국이 2002 한·일월드컵 이후 16년 만에 다시 세계무대로 가기 위해서는 한국을 넘어서야 했다. 중국과 한국은 이란·카타르·시리아·우즈베키스탄과 함께 최종예선 A조에 속했다. 그 1차전이 서울에서 벌어진 한·중전이었다. 중국은 마치 국가총력전이라도 하듯 엄청난 돈과 시간을 대표팀에 투자했다. 리그 일정을 세 차례나 중단하며 대표팀 합숙을 보장했다. 한국이 중국전을 앞두고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대로 사흘간 준비를 한 반면 중국은 총 24일의 합숙을 했다. 중국축구협회는 한국전 승리에 보너스 5억원, 본선 진출 시에는 100억원을 풀겠다고 공약했다. 전세기를 타고, 명품 단복을 입은 채 입국해 서울 시내 최고급 호텔로 향하는 중국 대표팀의 모습은 과거와의 결별을 의미하는 듯했다.

 

 

공한증과 축구굴기 공존

 

경기 외적으로 소란스러운 중국과 달리 한국은 차분히 31번째 한·중전을 준비했다. 역대 전적 17승 12무 1패의 우위는 중국 언론 스스로 ‘공한증(恐韓症)’이라는 표현까지 만들게 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중국이 외국인 선수 영입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지만 대표팀은 별개의 문제다”라고 말했다. 주장 기성용은 “중국이라서가 아니라 최종예선 첫 경기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긴다는 생각”이라며 중국 취재진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23명의 엔트리를 모두 채우지 않고 20명만으로 중국전에 나섰다. 

 

이날 저녁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슈틸리케호는 공한증의 유통기한이 아직 남아 있음을 증명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시즌 리그에서 단 1골도 넣지 못해 선발 자체에 대해 언론과 팬들이 의문을 표한 지동원을 최전방에 세웠다. 지동원은 많은 우려와 의심에 맹활약으로 답했다. 전반 21분 한국의 선제골은 프리킥 상황에서 지동원의 헤딩슛이 중국의 최고참 정쯔의 발을 맞고 들어갔다. 후반 18분과 21분 터진 이청용과 구자철의 연속골을 도운 것도 지동원이었다. 후반 25분까지 한국은 3대0으로 앞섰다. 수비수만 5명을 배치해 노골적으로 무승부를 노린 가오홍보 감독의 전략이 완벽하게 분쇄되는 순간이었다.

 

승리를 의심치 않던 그때 중국의 반격이 시작됐다. 가오홍보 감독은 수비의 핵인 장린펑을 과감히 빼며 승부수를 던졌다. 선수들도 선수비 후역습을 버리고 한국 진영으로 돌격했다. 후반 29분 위하이가 추격의 골을 터트렸고, 3분 뒤 하오쥔민의 프리킥 골이 나왔다. 3분 사이 스코어는 3대0에서 3대2로 요동쳤다. 3실점에 침묵하던 중국 응원단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경기 결과는 공한증과 축구굴기의 공존을 보여줬다. 한국은 1978년 중국과의 첫 대결 이후 이어온 절대 우위의 역사를 이어갔다. 가오홍보 감독은 “한국의 경험이 중국보다 한 수 위였다”라며 패배를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는 자신감을 얻어 간다. 아직 9경기가 남았다. 오늘 막판에 보여준 경기력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말로 패배 속의 의미를 강조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쉽게 이길 수 있는 경기를 어렵게 마무리했다. 중국 축구의 성장을 봤다”며 경기 전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한국 대표팀의 3득점은 한·중전의 현재이자 공한증의 역사를, 2실점은 한·중전의 미래이자 축구굴기의 잠재력을 알렸다. 승리는 한국의 차지였고, 박수는 중국의 것이었다. 분명 한국과 중국 축구의 격차는 좁아지고 있음을 보여준 31번째 한·중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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