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의심 사고 낸 채 집에 간 공무원, 만취 수치에도 ‘무죄’…이유는?
운전 중 이륜차 추돌…이륜차주 측이 “술냄새 났다”며 신고
자택 찾아온 경찰과 음주측정 두고 실랑이…만취 확인돼
재판부 “퇴거 요구 불응한 경찰의 음주측정은 위법”
2024-09-12 박선우 객원기자
음주운전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사고를 내고 귀가한 공무원이 자택서 이뤄진 음주측정서 만취였음이 확인됐음에도 법원으로부터 무죄를 선고받았다. 경찰의 음주측정 등 증거수집 과정에 절차상 위법이 존재한다는 판단이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지방법원 형사5단독(지혜선 부장판사)은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광주시 남성 공무원 A(46)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작년 6월7일 밤 광주 남구의 모 술집 앞 도로에서 자택까지 약 1㎞를 혈중알코올농도 0.128%의 만취 생태로 운전하다 사고를 낸 혐의를 받았다. 당시 귀가 중이던 A씨는 운전 중 길가에 서있던 이륜차를 추돌했는데, A씨는 이륜차 차주의 지인에게 연락처를 건넨 후 그대로 귀가했다.
같은 날 오후 11시3분쯤 경찰에 ‘주차된 이륜차를 추돌한 차량이 도주했다. 운전자에게서 술 냄새가 났다’는 취지의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차량 번호 조회를 통해 A씨의 집주소를 특정하고 찾아갔다.
당시 경찰관들은 아파트 공용현관에서 인터폰으로 A씨가 거주중인 세대에 “음주 측정을 위해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인터폰을 받은 A씨의 아내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에 경찰관들은 다른 입주민을 따라 공용 현관에 진입한 뒤 A씨가 사는 세대 현관 앞까지 찾아갔다. 이번엔 A씨의 아내도 문을 열어준 뒤 A씨가 수면중인 안방으로 경찰들을 안내했다.
이때부터 경찰과 A씨 간의 실랑이가 시작됐다. 잠에 서 깬 A씨는 “어떻게 온거냐. 신고자를 믿을 수 없다”며 음주측정을 거부했다. “나가달라”며 경찰관들에 퇴거 요청도 했다. 경찰관들이 “음주측정 거부 혐의 적용 및 현행범 체포가 가능하다”는 취지로 경고했음에도 A씨는 “차라리 음주 측정 거부로 처리해 달라”며 맞섰다. 결국 경찰관들이 집으로 진입한지 약 1시간만인 자정쯤에야 음주측정이 이뤄져 그의 만취 사실이 확인됐다.
A씨 측은 1년 이상 이어진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경찰관들이 명시적 퇴거 요청에 불응하고 불법적으로 음주 측정을 했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법원도 경찰이 A씨의 자택까지 들어가 음주측정을 시도한 건 임의 수사에 해당해 위법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음주 측정은 이미 이뤄진 음주운전이라는 범죄행위에 대한 증거 수집을 위한 수사 절차”라면서 “음주 측정 요구를 위해 피고인의 집에 들어가려면 형사소송법상 절차에 따라야 하며 영장이 필요한 것이 원칙이다. 그렇다고 A씨가 형사소송법이 명시한 ‘현행범인’ 또는 ‘준현행범인’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재판부는 “A씨는 명시적으로 퇴거를 요구하면서 음주 측정을 오랜 시간 거부해 임의 수사로서 적법하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이처럼 적법 절차를 어긴 수사를 거쳐 획득한 ‘음주운전 단속 사실결과 조회’ 등의 증거는 위법 수집 증거에 해당한다”면서 “배제된 증거를 뺀 나머지 증거들만으로는 공소사실과 같이 A씨가 음주운전을 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