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DJ 사저, 역사적 공간 지키기 위해 매입…11월 기념관 개관”
동교동 사저 사들인 박천기 대표 “6개월 넘게 기념관 구상…카페 개업 억측” “‘김대중 다이얼로그’ 콘셉트로 과거-현재-미래 연결…DJ 정신 담아낼 것” “민주당·의원 연락 없었다…기념관 운영 주체, 기념사업회·재단에 열려 있어”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서울 동교동 사저를 100억원에 매입한 박천기 퍼스트커피랩 대표(51)가 논란이 불거진 이후 처음으로 언론에 모습을 나타냈다. 시사저널의 인터뷰 요청에 답한 것이다. DJ 사저 매각 논란으로 정치권과 여론이 요동친 지 약 한 달 만이다. 긴 침묵을 깬 박 대표는 파장을 불러온 결정에 대해 “출발점은 ‘연결’이었다”고 말한다. DJ의 시간 그리고 삶의 궤적이 시민의 일상과 단절되지 않도록 디딤돌을 놓고 싶다는 의지가 사저 매입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2024년 9월 현재, 동교동 사저 벽면에는 2019년 6월에서 멈춰진 종이 달력이 덩그러니 걸려 있다. 이희호 여사가 작고한 후 이 달력을 넘긴 이는 아무도 없었다. 돌파구를 찾지 못한 김 전 대통령의 자제와 적통을 자처하면서도 뾰족한 해법이 없던 동교동 가신들, 그에 대한 우려를 떨쳐낼 수 없는 국민 앞에 DJ의 시간은 그렇게 멈췄다. 사저 바깥은 매각 논란으로 뜨거웠지만, 그 시각에도 김 전 대통령의 정치 일생을 담아낸 공간은 싸늘히 식어가고 있었다.
9월2일 기자는 적막에 휩싸인 DJ 사저를 뒤로하고 도보로 2분 거리에 있는 박 대표의 사옥을 찾았다. 잡초가 무성해진 공간을, 찢긴 벽지 위로 켜켜이 쌓인 먼지가 자리한 전직 대통령의 공간을 사업가는 ‘왜’ 주목했던 걸까. DJ의 공간에 ‘사람’과 ‘역사’를 숨 쉬게 하겠다는 구상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정치권에서는 사저를 되찾아 어떻게든 공공의 영역으로 남겨 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온다. 혼돈이 거듭되는 상황에서 그의 입장과 계획을 들어봤다.
“역사적 공간, 이대로 둬선 안 된다 생각…김홍걸 의원과 개인적 친분 없어”
DJ 사저를 매입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동교동 사저가 매각 위기에 놓였다는 걸 인지한 시점은 1~2년 전이다. (DJ 셋째 아들인) 김홍걸 전 의원 측 관계자로부터 세금 때문에 사저를 내놓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김 전 의원과는 개인적 친분이 없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사정이 있는지 몰랐다.
시간이 흐를수록 존재감이 흐릿해져 가던 DJ 사저와 그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동교동을 중심으로 사업을 펼쳐온 저와 직원들 입장에선 안타까움이 컸다. 역사적 의미를 지닌 공간이 잡풀이 무성한 채로 장기간 방치된 모습을 보며 ‘이대로 둬선 안 된다’는 생각을 했고, 매입 결정으로까지 이어졌다. 역사적 공간을 잘 보존해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기업에도, 개인에게도 큰 의미와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사저가 개인사업가에게 팔렸다는 점에서 국민 사이에 우려와 반발이 뒤따랐다.
“국민의 우려를 이해한다. 처음부터 사저 보존과 유지 방안이 잘 도출했다면 민간이 나설 필요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저 역시 아쉬움이 있다. 정당과 (동교동계) 정치인들의 반발은 언론을 통해 확인했다. 사재 출연을 선언하고 민간에 넘겨선 안 된다는 목소리를 낸 정치인도 있지만, 정작 직접 연락해온 분은 단 한 분도 없었다. 정당 차원에서 사저 재매각 의사나 이후의 구체적인 계획을 물어온 적도 없다.
분명한 건 역사적 가치를 지닌 사저를 상업적 목적으로 활용할 의도는 처음부터 없었고, 지금도 없다는 점이다. 사저를 허물거나 내부를 완전히 개조해 ‘노벨카페로 만들 것이다’ 등 여러 추측이 나오던데 모두 사실과 다르다. DJ의 발자취가 새겨진 사저를 최대한 시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무료 기념관으로 만들어내겠다는 게 목표다. 이 구상이 현실화하면 우려도 잦아들 것이라고 본다.”
“AI로 구현한 DJ 과거·현재·미래 담을 것”
구체적인 기념관 개관 시기와 운영 방안은 어떻게 되나.
“기념관 개관 시점은 오는 11월로 예상하고 있다. 올해 3월 동교동 사저 매입을 결정하고 현재까지 6개월 넘게 직원들과 ‘김대중 기념관’ 운영을 구상해 왔다. 매입 사실이 알려진 시점(7월말)은 이미 공간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기획하고 논의하는 단계로 접어든 뒤였다.
사저는 일부 보수를 거쳐 ‘김대중 다이얼로그(Dialogue·대화)’를 콘셉트로 한 기념관으로 재탄생한다. 김대중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려 한다. 구체적으로 사저 1층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김대중이라는 한 인간이 꿈꾸고 이뤄낸 시대의 풍경을 조명한다. 2층은 ‘미래’를 다룬다. 만일 DJ가 우리 곁에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전해 줄지, 그의 꿈을 들어보는 공간이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DJ의 음성과 영상을 복원해 시민과 상호 작용할 수 있는 체험형 공간도 조성하려 한다. DJ 이미지를 띄운 화면 앞에 전화기를 놓고 그의 공간 속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며 모든 세대와 소통한다. 1·2층 모두 DJ와 이희호 여사의 유품과 기록물, 가구, 액자와 사진을 최대한 보존하고 살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김대중이희호기념사업회’ 측과도 협의를 마친 상태다. 지하는 ‘가능성’의 공간이다. ‘평화’와 ‘인권’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DJ를 기억하며 신진 작가들에게 제공 방안을 모색하는 등 미래세대를 위한 곳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운영비는 어떻게 충당하나.
“쉽지 않은 문제고, 이 부분에서 고민이 컸다. 사저 본동은 개방된 기념관으로 운영하고, 마주 보고 있는 주차동을 증축해 운영 중인 회사의 사옥으로 사용하면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란 결론을 냈다. 기념관은 특히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4월 사저 바로 앞 평화공원 내 북카페 운영권 입찰권을 확보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는 평화공원 내 북카페도 비활성화된 상태인데 이곳을 되살려 카페로 운영하면 이곳에서 사저로, 또 사저에서 이곳으로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이어질 수 있다. 결국은 브랜드 가치와도 연결되는 부분이고, 여기서 얻은 수익을 기념관 운영과 보수·관리에 투입할 방침이다.”
평화공원은 2016년 10월 홍익대 주변 한류관광 활성화를 위해 DJ 사저와 김대중도서관 맞은편에 준공된 시설이다. 사저·김대중도서관과 6m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해있다. 원래는 사유지였지만 국비와 서울시비 약 68억원을 투입해 매입한 뒤 공공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기념관 운영의 ‘지속 가능성’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역사적 의의가 있는 장소가 물리적으로 조성돼 있더라도 시민들이 찾지 않으면 살아있는 곳이 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경기도 일산에 있는 김대중 사저도 지자체가 매입했지만, 현재는 예산이 줄면서 사실상 2년째 방치된 상태고 전국적으로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많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기념관 운영을 위한 지속 가능성을 자체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사저와 붙어있는 김대중도서관만 해도 도심 속 시민들이 접근하기 좋은 위치에 있지만, 방문객이 많지는 않다. 투입 가능한 인력과 운영상 한계로 예약제로 하고 있는 데다, 인원 충족 조건 등 방문에 걸림돌이 되는 요소가 있어서다. 사저 본동을 온전한 기념관으로 지키는 동시에 긴 호흡으로 시민과 함께할 수 있는 방안을 계속 강구해 나갈 계획이다.”
기념관 운영 로드맵을 매각 논란 직후에 밝히지 않은 이유가 있나.
“DJ 사저가 아들 손을 떠나 외부에 팔리는 것이고 민간기념관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논란이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다. 그런데 우려와 비판의 강도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셌다. 모든 비난의 화살이 우리를 향했다. 직원이 300명 안팎에 달하는 회사가 순식간에 타격을 입는 상황이었기에 섣불리 나서기가 더 어려웠다. DJ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역사적 인물의 가치를 지키려 시작한 프로젝트가 곧바로 정치화되고 재해석을 거듭하면서 대응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장기간 불필요한 정치적 해석에 휘말리는 것은 원치 않았다.”
김대중재단이나 민주당과의 협업 가능성은?
“모두 열려 있다. 김홍걸 전 의원 및 그가 고문으로 있는 ‘김대중이희호기념사업회’ 측과는 이미 기념관 운영을 비롯한 여러 사안을 함께 논의하며 진행 중이다. 민간인인 우리보다는 기념사업회나 ‘김대중재단’이 기념관 운영 주체를 맡는 것이 명분과 취지에 더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기념사업회나 재단, 민주당 등 기념관 운영에 뜻을 공유하는 곳과 함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저희 쪽에서 ‘김대중 다이얼로그’ 콘셉트로 기념관을 구현하고 차후 운영은 기념사업회나 재단이 맡는 등 여러 방안을 놓고 탄력적으로 접근할 계획이다.”
‘재매각’ 가능성은 전혀 없나.
“특정 재단이나 정부, 서울시, 마포구, 민주당 등에서 소유권 매각을 원하고 저희가 준비해온 기획 방향을 잘 살려 동등한 수준으로 보존·유지를 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 재매각도 고려할 수 있다. 다만, DJ의 공간을 지키기 위해 수개월에 걸쳐 준비해 왔고 현재도 준비 중인 만큼 단순히 현시점에서 비판을 의식해 매각할 의향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