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과유불급] ‘학력평가원’의 새 역사 교과서를 응원하는 이유

2024-09-06     전영기 편집인

2025년부터 청소년들이 배울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전면적으로 등장한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최근 국가 검정을 통과한 9개 출판사의 고교 한국사가 모두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기술하고 있다는 것. 그 가운데서도 ‘한국학력평가원’이 제작한 한국사는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하였다”라고 서술했다. 이 간결하고 당연한 역사적 사실을 수용함으로써 학력평가원 교과서는 한국 정치체제의 자유민주주의적 성격을 가장 명료하게 부각한 것으로 평가된다.

새 교육과정(2022개정 교육과정) 적용으로 내년부터 학교 현장에서 사용할 새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검정 결과가 공개됐다. ⓒ연합뉴스

자유민주주의 사관으로 한국 현대사 긍정적으로 묘사

기존 교과서들 중 일부는 ‘자유’에 적극적 의미를 부여하는 데 인색하다. 어떤 교과서는 한반도 북쪽에서 김일성이 공산주의 정권을 실질적으로 먼저 세운 분단의 제1책임자라는 사실을 외면한 채 남한 지역에서만이라도 자유민주주의 정부 수립을 성공시킨 이승만을 분단의 원흉인 듯 암시했다. 따라서 학력평가원의 새 교과서는 기존 교과서가 부분적으로 갖고 있던 ‘비자유민주주의’ 혹은 ‘친북적 세계관’을 극복하고 청소년들이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게 하는 자유민주주의 사관에 입각해 만든 한국사라 할 수 있다.

민주당과 역사학계 일각에서 학력평가원 교과서를 향해 “미래세대를 뉴라이트에 물들이려 하고 있다…위안부는 축소하고 독재는 장기집권으로 분칠하고, 친일파를 옹호하는 주장까지 포함했다”는 식으로 비난했는데 수긍하기 어렵다. 오히려 새 교과서에선 자유와 공정, 개방의 활달한 가치관이 느껴진다. 위안부가 양적으로 축소됐는지 모르지만 일본제국주의의 포학성은 충분히 서술됐다. 이승만 정치를 장기집권이라고 표현했다 해서 독재성까지 부인하는 취지는 어디에도 없다. “친일파 옹호”는 사실을 왜곡한 주관적 판단일 뿐이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새 역사책에 대한 공격의 이면에  우리 현대사를 태어나선 안 될 독재정권의 연속으로 치부하고 친일 세력이 득세하는 과정으로 몰아붙여 재미를 좀 본 이념과 역사 기득권 세력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사상 기득권 세력의 다음 수순은 아마 학력평가원 한국사를 채택하려는 학교들을 찾아가 친일·뉴라이트로 싸잡아 매도하고 실력행사로 무산시키는 일일 것이다. 이런 폭력은 21세기 들어 한국의 역사와 이념을 ‘반일 민족주의’ ‘친북 민중주의’ 사관으로 독점적·배타적으로 해석하는 세력에 의해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민주당의 ‘친일인사 공직 임명 방지법’, 일제 고등경찰과 닮아

역사·이념 기득권 세력들이 상대방을 친일·독재로 낙인찍어 표현의 자유조차 불허하는 전체주의 성향을 드러내는 점은 우려스럽다. 민주당이 8월28일 이재명 대표가 참석한 의원총회에서 소위 ‘친일인사 공직 임명 방지법안’을 당론으로 채택하는 것을 보면서 소름이 끼쳤다. 국무총리 소속으로 소위 ‘헌법부정·역사왜곡 방지위원회’를 만들어 공직 후보자에게 가치관 심사를 거치게 하겠다는 내용이다.

권력에 임명된 11명 위원회가 개별 시민의 역사관을 시험하고 ‘반헌법적’ 또는 ‘역사왜곡적’이라고 감별하면 공직 취임을 금지시키겠다는 것. 일제 때 한국인 사상범을 잡던 고등경찰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다. 아니면 현재 중국 공산당이 자국민을 상대로 시행하는 ‘디지털 전체주의’ 즉, 중공당을 비판하는 시민들을 솎아내 제거하겠다는 속셈인지.

역사와 이념 문제를 ‘검증된 사실과 과학’ ‘사상의 자유경쟁 시장’에 맡겨두지 않고 법과 권력으로 규율하겠다는 민주당의 오래된 습관은 역설적으로 지금부터라도 한국 청소년에게 자유민주주가 ‘양보할 수 없는 불멸의 가치’임을 교육해야 한다는 학력평가원의 정신을 정당화하고 있다. 이것이 적절한 균형감을 갖춘 학력평가원 새 교과서를 일선 고교가 많이 채택해 주길 바라는 이유다. 

전영기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