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성범죄 빠져드는 10대들에게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본다 [배정원의 핫한 시대]

성평등 교육의 부재, 왜곡된 성의식, 편협한 남성성에 대한 강요, 공감과 소통을 경시하는 교육 시스템 등이 문제의 근원

2024-09-07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보건학 박사)

최근 국회의 한 국정감사장에서 “점점 더 멀어져 간다”라는 감성적인 노래 가사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영상 속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고(故) 김광석씨가 아니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었다. 유 장관의 얼굴과 목소리를 AI에게 학습시켜 노래를 부르게 한 딥페이크 영상이었던 것이다. ‘딥페이크 기술이 디지털 성범죄에 악용되고 있음’을 경계하기 위한 용도였으나, 얼굴과 목소리를 빼앗긴 유 장관도, 국회의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들도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며 지나갔다.

8월30일 대구 수성구 시지중학교에서 학교전담경찰관(SPO)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딥페이크 성착취물 범죄 예방 교육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프라인에선 과잉보호, 온라인에선 방임

지난 5월 서울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딥페이크 성범죄가 드러났고, 뒤이어 인하대에서도 같은 범죄 피해가 신고되었다. 주로 지인이나 아는 여성의 얼굴을 남의 성행위 장면이나 나체인 남의 몸에 입혀 성적인 모욕을 하고 ‘즐기는’ 놀이로서 텔레그램 등 SNS가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텔레그램은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노출하지 않는 SNS로 알려져, 경찰도 이에 대해 ‘서버가 외국에 있어 피의자 특정이 어렵다’고 수사상 고충을 토로한다. 이에 우쭐해진 딥페이크 성범죄 가해자들은 심지어 그런 텔레그램의 익명성에 기대 경찰과 기사를 보도한 기자들을 ‘딥페이크로 능욕해 주겠다’고 조롱하고 있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IT 강국인 한국은 딥페이크 범죄에서도 단연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경찰은 현재 자신이 알거나 좋아하는 여성의 사진, 혹은 SNS나 단체 사진 등에서 사진을 가져와 딥페이크 영상을 만들고 있다는 텔레그램 채널을 수사하고 있는데, 무려 22만 명이나 모여 있다고 한다. 미국의 한 보안업체는 지난해 딥페이크 피해자의 53%가 한국인이라고 보고했으며, 윌스트리트저널은 ‘한국이 딥페이크에 있어 세계적인 진앙지’라고 지적했다.

더 심각한 점은 지난해 경찰청 발표에 의하면, 딥페이크 허위영상물 범죄 피의자 중 75.8%가 10대였으며, 20대는 20%였다는 것이다. 결국 10대와 20대가 피의자의 95% 이상이라는 이야기다. 피해자 역시 10대가 62%를 넘었다. 여성이 주된 피해자지만, 남자가 남자를, 여자가 여자를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우리의 미래라고 할 청소년들이 딥페이크를 이용한 디지털 성범죄에 이토록 빠져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청소년기는 성적으로 호기심이 왕성해지는 시기이고, 이때 자아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역할과 이미지를 실험해 보고 싶어 한다. 또래 집단에서 인정받고 소속되고 싶어 하며, 위험을 감수하며 스릴을 느껴보려는 충동성이 강하다.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 딥페이크를 통해 쉽게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공감능력이 발달하는 중이어서 피해자의 고통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

청소년들에게 딥페이크 성범죄가 만연한 이유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콘텐츠 제작과 유통이 쉬워졌고 △과도한 입시경쟁과 학업 스트레스 탈출구나 해소 방법 △공격성과 분노 표출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상처와 보복심리 △포괄적이고 건강한 성교육 부족으로 인한 성인식 왜곡 △군대문화와 남성성에 대한 그릇된 고정관념 △동의와 프라이버시 개념 부족 △온라인 문화의 익명성 △빠른 트렌드 전파와 동조현상 △집단주의적 경향 △현실과 가상세계의 구분이 어려운 딥페이크의 특징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딥페이크 성범죄의 창궐은 우리 사회의 민낯이며 구조적인 문제들의 발현이라서 부끄럽고 또 답답하며 걱정이 크다. 사회의 어떤 문제적 현상도 하나의 원인에서만 찾을 수 없으며 사실 지금의 현상은 예전부터 우려되어온 사실이기도 했다.

‘오프라인에서는 과잉보호, 온라인에서는 방임’이 우리 부모들의 교육 방식이었다. 학부모는 온라인 세계를 모르고 청소년들은 오프라인 세계를 알지 못한다. 오프라인인 현실세계에서 청소년들은 남들과 소통하는 법, 좋은 관계를 쌓는 법을 경험으로 배우지 못했을 뿐 아니라, 여성을 만나고 생활하는, 생각할 줄 아는 인격체로서의 존재로 대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 초·중·고 학창 시절은 무성적인 존재여야 하고, 건강한 이성교제라 하더라도 환영받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여기서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많은 청소년이 일상적으로 즐기는 게임의 폭력성과 여성의 성적 대상화다. 사람을 죽이면 점수가 쌓이는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게임, 또 그 게임 속에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채 등장해 성적 대상으로만 소비되는 여성 이미지 등의 문제들은 이미 오프라인 속 현실에서 청소년 간 따돌림·폭력·성범죄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지 않았던가. 

이러한 콘텐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현실에서의 폭력과 성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무뎌질 수밖에 없다. 여성이라는 인격적인 존재에 대해 고의로 모욕함으로써 그의 일생, 또 인간성에 대해 얼마나 깊은 상처와 불신을 남겼는지 공감하지 못한다. 또한 온라인 공간의 익명성은 책임감 없는 행동을 부추기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이 쌓여 기술적 능력을 덧입고 드디어 디지털 세계의 어두운 면을 사이버불링(Syberbulling: 디지털 기기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이루어지는 괴롭힘)으로 장악하게 된 것이다. 이 사이버불링은 24시간 시간과 장소에 제약됨이 없이 지속 가능하며, 괴롭힘의 내용이 온라인을 통해 빨리 확산된다. 또 온라인에 남는 기록으로 인해 피해가 장기화된다는 문제가 있다. 현재의 딥페이크 성범죄는 사이버불링에 온라인 성폭력이 맞물려 진화하는 셈이다.

 

10대, 통제 대상 아닌 변화 주체로 인식해야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청소년들이 딥페이크 성범죄나 사이버불링 같은 범죄에 쉽게 가담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이는 단순한 장난이나 스트레스 해소 수단으로 인식될 뿐, 그 행위의 심각성과 피해자의 고통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청소년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온라인 세계는 오프라인 세계를 반영한다. 우리 현실 속 성평등 교육의 부재, 왜곡된 성의식, 편협한 남성성에 대한 강요, 공감과 소통을 경시하는 교육 시스템 등이 이 문제의 근원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다각도의 접근이 필요하다. 먼저 교육 시스템의 전면적인 개편이 시급하다. 디지털 윤리와 딥페이크를 포함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강화하고,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는 교육과정을 도입해야 한다. 또한 포괄적 성교육을 통해 건강한 성 인식과 관계 형성 능력을 키워주어야 한다.

법제도적 측면에서는 디지털 범죄에 대한 처벌을 엄정하게 하고, 피해 당사자에게 진정한 사과를 하도록 해야 하며, 피해자 보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동시에 예방적 차원의 정책도 필요하다. 게임과 SNS 등 미디어 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과도한 폭력성과 성적 대상화를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청소년들을 단순히 통제의 대상이 아닌, 변화의 주체로 인식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또한 남성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건강한 성평등 문화를 조성해 나가야 한다.

이제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중요한 것은 이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고 관리하느냐다. 우리 청소년들이 디지털 세상에서도 윤리의식을 갖추고 책임감 있는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세대의 책임이자 의무일 것이다.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