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걸즈’의 응원이 선사하는 ‘보편의 힘’
영화 《빅토리》의 진득한 증명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축구 강호들을 꺾고 4강 신화를 이룰 수 있었던 여러 이유 중 하나로 꼽히는 건 광장을 가득 메웠던 ‘붉은 악마’의 열혈 응원이다. 실제로 응원의 효능은 여러 연구에서도 입증됐다. 응원이 동기를 부여해 선수들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각성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빅토리》는 이러한 응원이 지닌 보편의 힘을 전달하는 영화다. 주목할 건 단순히 타인에게 보내는 응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누군가를 응원하는 일이 나를 응원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영화는 진득하게 증명해 보인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지구 멸망설과 밀레니엄을 향한 기대가 뒤섞여 있던 1999년. 힙합에 빠진 고교생 필선(이혜리)은 거제도를 떠나 서울에서 댄서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산다. 단짝 미나(박세완)와 춤을 마음껏 출 수 있는 연습실을 찾던 필선은 연습실을 얻을 목적으로 서울에서 치어리더를 하다 전학 온 세연(조아람)에게 치어리딩 동아리를 제안한다. 동아리 창단을 위해 학교에 내세운 명분은 축구부 응원. 축구부에 관심이 많은 교장은 동아리 창단을 허락하고, 오디션을 거쳐 9명의 멤버가 ‘밀레니엄 걸즈’라는 이름으로 모인다.
약점을 돌파해 내는 사랑스러움
영화 《빅토리》의 시작은 신문에 작게 실린 기사였다. 1984년 거제고등학교 축구부 응원을 위해 결성된 대한민국 최초의 여고 치어리딩 팀 ‘새빛들’. 기사를 발견한 제작진은 영화화 작업에 돌입했다. 실화에서 출발했지만, 줄기만 유지한 채 시대상과 디테일에서 여러 각색을 거쳤다.
아이디어가 참신한 각색은 아니다. 영화는 악기나 무용, 스포츠 등을 그린 청춘 영화들이 달려온 노선을 크게 이탈하지 않고 따라간다. 좋게 말하면 안전한 각색이고. 매정하게 말하면 다소 빤하다. 오합지졸들이 모여서 투닥거리며 성장해 나가는 서사는 《스윙걸즈》 《훌라걸즈》 등 숱한 영화들이 이미 밟고 지나간 익숙한 길이니 말이다.
1990년대 감성 역시, 대중문화가 10년째 끊임없이 사용하는 아이템인지라 딱히 개성으로 작용하진 못한다. 무엇보다 이야기 흐름과 편집이 매끄럽지 못하다. 시나리오 디테일이 떨어지는 편이라 제대로 봉합하지 않고 넘어가는 에피소드들이 있고, 인물의 감정선 변화를 극에 제대로 녹이지 못한 구간도 엿보인다. 일회적인 아이디어를 위해 빠르게 끓어올랐다가 별다른 대안 없이 식어버리는 인물 관계도 있다.
그럼에도 이 약점을 품은 이야기가 마음을 적잖이 울리고 웃긴다. 신선함은 없지만, 캐릭터들의 사랑스러움과 밝은 에너지가 내내 손목을 낚아채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캐스팅도 기대 이상이다. 사실 과거 향수를 끄집어내는 영화라는 점에서 《응답하라 1988》의 덕선 이미지가 강한 혜리를 기용하는 건 영화에 감점 요소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혜리는 덕선의 장점은 흡수하고 새로운 기운을 필선에게 불어넣는 데 성공한다. 박세완 역시 거제여상 댄스 스포츠 동아리를 기록한 다큐멘터리를 드라마화한 《땐뽀걸즈》 주연으로 활약한 바 있기에 이미지가 겹쳐 보일 수 있었으나, 이러한 함정을 스스로 돌파하며 극에 성공적으로 안착한다.
혜리, 박세완과 함께 ‘밀레니엄 걸즈’로 뭉친 최지수, 백하이, 권유나, 염지영, 이한주, 박효은 등 신인들의 기운도 연신 샤방하고 사랑스럽다. 《닥터 차정숙》으로 얼굴도장을 찍은 조아람은 스크린에도 어울리는 얼굴을 보여주며 미래를 밝힌다. 필선을 짝사랑하는 거제상고 골키퍼로 분한 이정하는,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냐’ 정신을 시연해 보인다. 《무빙》에서 확인한 바 있는 이 배우의 사랑스러움이 이번에도 바이러스처럼 스크린에 번져 나간다.
‘우정’ 못지않게 빛나는 ‘부녀 케미’
그럼에도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밀레니엄 걸즈나 이정하의 몫은 아니다. 그것은 의외로 필선 아빠 용우(현봉식)에게서 나온다. 필선과 용우 사이에 흐르는 ‘부녀 케미’가 강한 파장의 감동을 선사하는 까닭이다. 필선을 묵묵히 홀로 키워온 용우는 거제도 조선소에서 일하는 작업반장. 중간 관리자인 용우는 하청업체 직원들의 ‘쉴 권리’를 묵살하는 악덕 업주와 그런 악덕 업주에게 반기를 드는 동료 사이에 낀 난감한 상황에 놓여 있다. 그가 동료들 편에 서서 선뜻 힘을 실어주지 못하는 이유는 ‘남자 용우’보다 ‘아빠 용우’로서의 마음이 강해서다. 그렇게 그는 딸을 위해 자존심을 죽이고 산다.
아직 사회가 얼마나 살얼음판인지 알 리 없는 필선은, 자존심을 죽이는 아빠를 깊게 이해하지 못한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 희망에 눈길을 줄 여유가 없었던 아빠는 그런 딸이 애석하다. 영화는 둘 중 누구의 말이 더 맞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갈등하던 아빠와 딸이 서로를 응원하며 울고 웃는 모습을 통해 가족이라는 이름을 환기하는 데 주력한다.
특히 흰 쌀로 지은 밥을 사이에 두고 아빠와 딸이 나누는 장면이 먹먹하다. 밥을 입안 가득 욱여넣고 반찬 대신 눈물의 짠내를 삼키는 혜리가 어여쁘고, 그런 딸에게 응원을 보내는 현봉식의 연기가 눈물겹다(현봉식 최고의 연기가 여기에 있다). 아마 필선은 커나가면서 아빠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울겠지. 아빠의 마음을 뒤늦게 이해한 게 미안해서. 그리고 고마워서.
다만 필선과 용우의 감동 케미와는 별개로 극에 깊게 침투해 있는 조선소 이야기가 밀레니엄 걸즈 행보의 맥을 종종 끊어버리는 면이 없지 않다. ‘나, 악역이야’를 얼굴에 써 붙이고 나타난 듯한 악인 캐릭터들도 촌스럽게 활용됐다. 모든 캐릭터를 돌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조금 더 깊은 고민이 따랐으면 영화 전체적인 완성도가 크게 향상되지 않았을까 싶다.
앞서 주지했다시피 《빅토리》는 응원의 힘을 보여주는 영화다. 치어리딩의 목적이 여타 영화에서처럼 ‘경기’나 ‘경쟁’의 형태가 아니라, 축구부 ‘응원’의 형태를 띤다는 것이 《빅토리》의 특이점이다. 그래서 이 영화엔 패배자가 없다. 응원을 함께 나누며 성장하는 아이들과, 그런 아이들을 통해 조금 더 밟은 내일에 응답하는 어른들이 있을 뿐이다. “지금 같은 응원이 필요한 시기에 가장 가까운 주변 사람을 응원하고 자기 자신도 응원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는 감독의 연출 의도가 더하고 뺄 것 없이 구현됐다.
음악 선곡도 《빅토리》에서 빼놓을 수 없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를 시작으로 디바의 《왜 불러》, 조성모의 《아시나요》, 듀스의 《나를 돌아봐》, 터보의 《트위스터 킹》, 김원준의 《쇼》 등 1990년대를 추억할 수 있는 명곡들이 쉬지 않고 등장한다. 음원 사용료가 상당했겠다 싶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웬만한 주연배우 섭외 비용 뺨치게 들었단다. 확실한 건 추억의 노래들이 주연배우 1인의 몫을 충분히 해낸다. 노래의 힘은 추억만큼 강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