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연신 고개 숙였던 20년차 권익위 공무원 사망 후폭풍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사 총괄하며 주변에 괴로움 호소 사망 전 “처리 잘못돼 걱정…죄송”, 국회서도 “죄송하다” 권익위 침통…野 “정권 무도함에 죄없는 공무원 사망” 규탄
국민권익위원회 부패방지국장 직무를 대리해 온 고위 인사의 사망을 둘러싼 후폭풍이 커지고 있다. 20년 간 부패방지 업무를 담당해 온 고인은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사건 조사를 총괄했고, 지인들에게 해당 사건의 수사기관 송부 불발과 관련한 괴로움을 호소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고인은 지난달 국회에 출석해서도 대통령실 관련 질의에 굳은 표정으로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9일 경찰 등에 따르면, 전날 오전 세종시 종촌동의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된 권익위 소속 김아무개 국장은 가족에게 A4 용지에 짧은 메모 형식의 유서를 남겼다. 유서에는 심신의 괴로움을 호소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진다.
"명품백 사건 처리 잘못돼" "실망드려 죄송" 괴로움 호소
김 국장은 청렴 정책과 청렴 조사 평가, 부패 영향 분석 등을 총괄하는 부패방지국의 국장 직무 대리를 수행했다. 20년 동안 부패방지 업무를 맡아오며 관련 분야 전문가로 통하는 김 국장은 사망 직전까지 김 여사 명품가방 수수와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응급헬기 이송 등 민감한 사안 조사를 이끌었다.
특히 김 국장은 생전에 지인들에게 김 여사 사건 처리 결과에 대해 상당한 스트레스와 압박을 호소했다고 한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김 국장은 최근 부패방지 관련 업무를 함께 했던 지인과의 통화나 문자에서 "최근 저희가 실망을 드리는 것 같아서 송구한 맘(마음)이다" "참 어렵다" "심리적으로 힘들다"고 호소했다.
김 국장과 메시지를 주고 받은 지인 A씨는 "6월27일엔 김 국장이 전화를 걸어와 '권익위 수뇌부에서 김 여사 명품가방 사건을 종결하도록 밀어붙였다'는 취지의 괴로움을 토로했다. '내 생각은 달랐지만 반대할 수 없었다. 힘들다'고 털어놓았다"고 전했다.
김 국장은 권익위 업무를 잘 알고 있는 지인들과 연락하면서 여러 차례 "명품백 사건 처리가 너무 잘못돼서 걱정이다" "죄송하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앞서 권익위는 지난 6월9일 김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에 대한 청탁금지법 위반 여부 조사 결과 배우자 처벌 규정이 없다는 점 등을 내세워 '위반 사항 없음'으로 종결 처리했다.
김 국장의 상급자였던 정승윤 부위원장은 당시 긴급 브리핑을 통해 "청탁금지법상 공직자 배우자에 대한 제재 규정이 없기 때문에 종결 결정했다"는 전원위원회 의결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사건 종결 처리에 반발한 최정묵 비상임위원이 "법리적으로 충분히 다툼의 여지가 있고, 국민이 알고 있는 중요한 비리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혐의 없음으로 종결됐다"며 항의성 사퇴를 하는 등 잡음이 이어졌다. 의결권을 가진 일부 권익위 위원들은 알선수재 혐의 적용이 가능한 사안임에도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반발했다.
권익위 홈페이지에는 '영부인에게 300만원 엿 선물을 줘도 되나' 등 조롱성 질의가 이어졌고, 인터넷과 전화 등을 통해 항의성 문의도 빗발쳤다.
정치권에서도 여진이 이어졌다. 야권은 권익위가 논란의 디올백을 회수해 확인하거나 김 여사 등 관련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조사를 벌이지도 않고 종결 결론을 낸 것은 '정권 눈치보기'로 볼 수밖에 없다며 특검법 도입을 주장했다.
쏟아지는 질타 속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김 국장은 지난달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면서도 '죄송하다'는 말을 남겼다.
당시 김 국장은 '대통령실에 청탁금지 업무를 담당하는 담당자가 누구인가'라는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청탁금지법 제도 운영과 관련된 차원에서 파악은 하고 있지만 이번 사건(김 여사 명품백 수수) 조사와 관련된 부분이기 때문에 말씀 드릴 순 없다.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권익위 안팎에서는 김 국장이 민감한 사건 처리 과정에서부터 결과 발표, 후속 처리까지 모두 감당해왔고 최근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 추진까지 겹치며 상당한 괴로움을 겪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권익위 소속 공무원들도 김 국장 사망에 비통함과 충격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김 국장의 빈소는 세종시 한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권익위 동료 공무원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가운데 유족들은 전날 빈소를 찾은 부위원장 등을 향해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지검은 김 국장 사망과 관련해 범죄 혐의점이 없는 것으로 보고 유족 의견을 반영해 시신 부검은 하지 않기로 했다.
"尹정권 무도함이 끝내 공무원 목숨 앗아가"
야당은 윤석열 정부가 공무원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며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명품백 수수 사건을 담당했던 부패방지국장이 '수뇌부로부터 사건 종결처리 압박을 받았으나 반대를 못 해 심리적으로 힘들었다'는 생전 지인과의 통화 내용이 드러났다"며 "철저히 진실을 규명하겠다"고 예고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숨진 권익위 국장은 명품백 사건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고 이를 막지 못해 죄송하고 아쉽다고 토로했다고 한다"며 "윤석열 정권의 무도함이 끝내 아까운 공무원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비판했다.
전은수 최고위원도 "청렴 정책을 총괄했던, 20년 넘게 이 일을 해왔던 공직자로서 사건 종결처리는 매우 고통스러웠을 것"이라며 "그의 죽음으로 명품백 사건 종결 처리 과정이 얼마나 부패했는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게 됐다"고 직격했다.
전 위원은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바로 사과했다면 이렇게까지 죄 없는 사람을 괴롭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덮으려 하면 할수록 의혹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그가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국민들 앞에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