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결정치만 판치는 22대 국회…새로운 리더십이 절실하다 [유창선의 시시비비]

상대를 ‘악’으로 간주하는 ‘증오의 정치’ 판쳐…힘의 대결만 남은 한국 정치 민주당의 무차별적인 ‘탄핵 공세’ vs 尹 대통령의 ‘무한반복 거부권 행사’로는 희망 없어

2024-08-09     유창선 시사평론가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8월2일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들만 표결에 참여한 채 가결 통과됐다. 반면 여당인 국민의힘은 반발하며 국회 본회의장에서 퇴장해 표결에 불참했다. 이에 따라 이 위원장은 취임한 지 이틀 만에 직무 정지 상태에 들어갔다.

윤석열 정부 들어 더불어민주당은 방통위원장에 대해서만 탄핵소추안을 4건 발의했다. 이동관·김홍일 위원장과 이상인 위원장 직무대행은 자신의 탄핵안이 국회에서 표결되기 전에 자진 사퇴했고, 이 위원장만이 버티다가 탄핵소추안이 의결된 것이다. 이에 따라 방통위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선고가 있기까지 최장 180일간 김태규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 1인 체제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방통위법에 따르면, 방통위 회의를 소집할 수 있는 최소 인원은 ‘2인’이기 때문에 현재 김 대행이 ‘나홀로’ 위원으로 있는 방통위는 각종 안건을 의결할 수 없게 됐다. ‘식물 방통위’가 된 것이다. 민주당의 공세는 이 위원장 탄핵소추에 그치지 않는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 위원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 등으로 경찰에 고발했고, 8월 임시국회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언론 장악·통제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7월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야당의 ‘방송 4법’ 강행 처리를 규탄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7월25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야당 의원들이 ‘채 상병 특검법’에 여당의 찬성표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이진숙 강행한 尹, ‘묻지마 탄핵’ 반복하는 野

이진숙 위원장 탄핵 소추안 가결에 대해 대통령실은 “반헌법·반법률적 행태”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북한이 오물 풍선을 보낸 것과 야당이 오물 탄핵을 하는 것에 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지 되묻고 싶다”고까지 했다. 이 위원장 자신도 “거대 야당의 탄핵소추라는 횡포에 당당히 맞서고자 한다”면서 “탄핵소추의 부당함은 탄핵 심판 과정에서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직무 정지 상태에 들어갔지만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끝까지 구하겠다는 입장이다. 방통위원장으로 출근한 단 하루 동안 탄핵당할 만한 헌법이나 법률의 중대한 위반이 없었다며 결과를 자신하는 모습이다. 

과거 보수정부 시절 MBC 간부로 있으면서 ‘강경파’ 경영진에 속했던 이진숙 위원장이 방통위원장에 적절한 인물인가는 충분히 비판할 수 있는 문제다. 새로운 인물을 찾을 생각은 하지 않고 보수정부 시절의 ‘강성 보수’ 인사들을 중용하는 윤 대통령의 인사는 과거 회귀가 맞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방통위원장이 공영방송 이사진 개편을 하지 못하도록 위원장만 임명되면 몇 번이고 탄핵을 추진하는 민주당의 행위가 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민주당의 무차별적인 탄핵 공세의 대상은 방통위원장만이 아니다.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 들어 탄핵을 추진한 인사는 이진숙 위원장을 포함해 모두 14명, 횟수로는 18건에 이른다. 방통위원장·방통위 직무대행 등 4명 이외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검사 9명이 대상이었다. 이 중 검사 2명에 대해서는 민주당이 탄핵안을 자진 철회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헌재에서 탄핵 결정이 내려진 경우는 단 1건도 없다. 헌재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 심판에서는 10·29 이태원 참사 당시의 대응 실패를 인정하면서도 “중대한 법 위반은 없었다”며 기각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정치적으로 비판받을 행위가 있더라도 헌법과 법률을 위배하지 않는 한 탄핵 요건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헌재의 판단인 것이다. 그럼에도 무한 반복되고 있는 민주당의 탄핵소추 발의는 ‘묻지마 탄핵’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각종 법안에 대한 야당의 단독 처리와 이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도 무한 반복되고 있다. 정부는 8월4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윤 대통령에게 ‘방송 4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기로 의결했다. 조만간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확실시된다. 그렇게 되면 윤 대통령 취임 후 국회에서 이송된 법안에 대해 모두 19번째 거부권을 행사하게 된다. 여기에 역시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른바 ‘노란봉투법’과 ‘25만원 지원법’ 역시 다음 국무회의에서 거부권 건의가 논의될 것이 유력하니 모두 21개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야당이 밀어붙이고 여당은 반대하던 법안이라고 해서 번번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정부와 대통령의 모습도 좋은 선택은 아니다. 하지만 거부권 행사를 뻔히 예상하면서도 오히려 더욱 강화된 내용의 법안을 두 번, 세 번이라도 다시 통과시키려는 야당도 정치를 하는 모습은 아니다. 국회를 운영하고 정치를 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법안을 최대한 합의 처리하려는 정신이다. 법안에서 여야의 입장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입장 차이를 좁히고 합의를 이루기 위해 협상을 하고 내용과 자구를 조정하는 것이 국회에서 하는 정치의 역할이다. 

 

사라진 공존의 정신, 실종된 협상의 정치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협상의 여지조차 사라진 것이 국회의 모습이 됐다. 야당은 절대 다수의 의석을 갖고 있으니 여당의 입장이 무엇이든 개의치 않고 자신들의 법안을 일방통행식으로 통과시킨다. 여당은 반대하고 표결에 불참할 뿐, 그렇다고 합의 가능한 제3의 수정안을 내놓는 것도 아니다. 여론의 높은 동의를 얻고 있는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서까지 국민의힘이 한동훈 대표가 거론했던 ‘제3자 추천’ 수정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시간을 끌고 있는 것이 단적인 사례다.

22대 국회가 개원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지금까지 지켜본 22대 국회의 모습은 절망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1대 국회도 여야 간의 정치가 사라진 대결정치만으로 점철되었는데, 새로 시작한 22대 국회는 그를 능가하는 모습을 이미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는 민주당에서는 ‘이재명 일극체제’를 떠받쳐주는 강경파 의원이 대거 당선된 배경이 있고, 국민의힘에서는 수도권에서의 궤멸적 참패로 영남권 의원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게 된 현실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공존의 정신 위에서 협상과 절충을 미덕으로 하는 정치는 부재하고 상대 진영을 악으로 간주하며 박멸하려는 증오의 정치만이 각 당에서 판치고 있다. 22대 국회 시작과 함께 전개되고 있는 이같이 참담한 현실은 여야 정치권의 새로운 리더십이 절실함을 말해 준다. 이대로는 우리 정치가 달라지려야 달라질 수 없다. 

유창선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