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 샴푸’를 주방용 세제나 살충제로 쓴다고?

생활용품 속 화학물질, 사용법 안 따르다 큰 위험 당할 수 있어

2024-08-04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풋 샴푸라는 낯선 생활용품이 새로 등장했다. 온종일 신발 속에서 혹사당한 발에 거품 형태의 풋 샴푸를 뿌리고 물로 씻어내면 고약한 악취와 성가신 각질이 말끔히 제거된다고 한다. 그런데 풋 샴푸에 대한 소비자의 인터넷 후기가 엉뚱하다. 기름기로 범벅이 된 프라이팬이나 에어프라이어의 설거지에 탁월한 효과를 낸다는 후기도 있고, 성가신 벌레 퇴치에 유용하다는 창의적인 후기도 있다. 발 관리용이라는 제조사의 권고를 무시하고 풋 샴푸를 주방용 세제나 살충제로 사용하는 소비자가 있다는 뜻이다.

일부 언론이 그런 후기를 마치 확인된 팩트처럼 퍼나르고 있고, 제조사도 소비자의 엉뚱한 후기를 은근히 즐기고 있다. 그런데 낯선 생활용품에 대한 소비자의 엉뚱한 호기심이 언제나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자칫하면 뜻밖의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생활용품의 오용과 남용에 따른 위해성을 확인하려면 상당한 전문성이 필요하다. 제조사가 알려주는 사용법을 함부로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Stable Diffusion

풋 샴푸와 같은 생활용품이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고 깨끗하고 위생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사실이다. 생활용품은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가 사용할 수 있도록 안전을 충분히 고려해 개발·생산·판매된다. 의도적으로 생활용품의 부작용을 무시하는 제조사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생활용품을 함부로 사용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생활용품에 들어있는 화학물질이 소비자의 생명·신체에 예상치 못한 위해나 재산·환경 피해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화학물질에 의한 부작용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생활용품은 언제나 ‘편익’과 ‘위해’의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 같은 것이다.

실제로 생활용품에 들어있는 ‘화학물질’을 거부하는 ‘케모포비아’(화학물질 혐오증)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 심지어 ‘화학물질이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비현실적인 주장도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인체에 암을 일으키는 발암물질이 치명적인 복어 독(테트로도톡신)보다 훨씬 더 무서운 유해물질로 알려지게 된 것도 지나친 케모포비아가 만들어낸 황당한 일이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가 생활·전기용품의 안전관리를 소홀히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 생활용품의 안전성을 관리하는 법과 제도는 충분히 갖춰져 있다. 산업부가 관리하는 ‘전기 생활용품 안전법’도 있고, 환경부의 ‘화학제품 안전법’도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화장품법’과 ‘식품 표시광고법’도 생활용품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이다. 공산품과 관련한 소비자의 안전을 관리하는 국가기구도 넘쳐난다. 식품의약품안전처·국가기술표준원·소비자원 같은 전문기관도 있고, 경찰·검찰·관세청·지자체 등 사법·행정기관도 있다. 생활용품의 안전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일은 국가의 막중한 책무라는 뜻이다.

생활·전기용품의 안전관리에 관한 관심은 제품의 구조·재질·성분에 집중돼 있다. 그래서 생산·유통 과정에서의 품질관리를 위한 ‘기준’이 소비자의 ‘안전’을 지켜주는 것으로 착각한다. 소비자와 언론이 온통 정부의 기준과 규격에만 매달리고 있다. 기준을 만족하기만 하면 반드시 안전하다고 믿고, 기준을 넘어서기만 하면 당장 재앙이 닥쳐올 것처럼 야단법석을 떤다. 생활용품의 ‘사용법’에 대한 관심은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생활용품이 전시돼 있다. ⓒ연합뉴스

생활용품의 흡입·섭취는 최대한 피해야

흔히 ‘락스’로 알려진 하이포염소산 소듐은 산화력과 인체 독성이 매우 강한 예외적 생활용품이다. 참고로, 차아염소산 나트륨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일본식 이름이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4% 락스 제품은 적어도 80배 이상 묽혀서 써야 하고, 환기에도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락스를 실내 공기 중에 분무하는 일은 절대 금물이다. 락스가 눈이나 피부에 닿으면 즉시 물로 씻어내야 하고, 흡입해서 복통이나 메스꺼움 같은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 락스는 소비자가 사용법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하는 생활용품이다. 더욱이 락스가 식초와 같은 산(酸)과 반응하면 치명적인 ‘염소’ 기체가 발생한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락스를 뜨거운 물로 희석하면 염소가 발생한다는 인터넷의 정보는 과학적으로 확인된 사실이 아니다. 다만 락스를 뜨거운 물로 묽히면 하이포염소산이 증발하면서 냄새가 심해지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다행히 락스처럼 ‘급성’ 독성 물질을 사용하는 생활용품은 많지 않다. 그렇다고 생활용품을 마음 놓고 함부로 사용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발암물질 같은 ‘만성’ 독성 물질도 확실하게 경계해야 한다. 물론 생활용품에 들어있는 발암물질 탓에 누구나 당장 암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장기간에 걸쳐 지속·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일은 피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기준치를 초과한 생활용품이 있다고 호들갑을 떨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생활용품을 호흡기로 흡입하거나 입으로 삼키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특히 밀폐된 좁은 실내에 방향제를 지속·반복적으로 분무하거나 향초를 피우는 일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어쩔 수 없이 사용할 때는 환기에 신경을 써야 한다. 호흡기는 우리 몸에서 면역력이 가장 취약한 곳이기 때문이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교훈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는 사실 세정·살균 효과를 전혀 기대할 수 없는 ‘맹물’에 가까운 엉터리 제품이었다. 그런데도 끔찍한 참사가 발생한 것은 ‘가습기 물에 살균제를 넣고 가습기를 작동하라’는 제조사의 살인적인 엉터리 사용법 때문이었다. 가습기에는 반드시 깨끗한 생수를 사용하고, 세척 후 사용한 세제·살균제가 남아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천연물은 모두 안전하고, 인공 합성물은 모두 인체에 유해하다는 인식도 대단히 잘못된 엉터리 상식이다. 실제로 인체에 유익한 약(藥)과 해로운 독(毒)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용량이 독을 만든다’는 파라셀수스(1500년대 스위스 의학자·화학자)의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면 치명적인 독이 되고, 치명적인 독이라도 충분히 적은 양이면 훌륭한 약이 되기도 한다. 기준치를 지키는 생활용품이라도 잘못 사용하면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문지식을 갖추지 못한 소비자가 생활용품을 직접 만들어 쓰는 일도 바람직하지 않다. 유해 성분을 확실하게 제거하기도 어렵고, 사용 과정에서 부패·변질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결국 믿을 수 있는 제조사의 생활용품을 선택해 제조사가 권장한 사용법에 따라 사용하는 것이 소비자에게 필요한 건강한 상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