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엄친아 정치’ 벗어나 민심 껴안는 리더십 필요 [유창선의 시시비비]
보수 혁신 비전 선보이고 실천해야
2024-07-26 유창선 시사평론가
‘변화’라는 키워드 강조한 ‘당대표 한동훈’
한 대표는 수락 연설에서 여러 가지 좋은 말을 꺼냈다. “민심 이기는 정치 없다. 민심과 싸우면 안 되고 한편이 돼야 한다. 국민의 마음과 국민 눈높이에 더 반응하자”고 했다. 또 “건강하고 생산적인 당정 관계와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서 민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때그때 때를 놓치지 말고 반응하자. 그래서 민심의 파도에 우리가 올라타자”고 말하기도 했다. 한 대표가 내놓은 말대로만 한다면, 그래서 민심과 한편이 되는 여당이 된다면 국민의힘이 민심을 되찾는 일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가 말대로만 되면 무엇인들 못 할까. 한 대표가 꺼낸 말들의 성찬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이 달라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최악의 참패를 당하며 민심 이반을 확인했다. 당시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참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고 그 뒤로 국민의힘이 의미 있는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특히 이번 전당대회를 치르면서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들은 새로 태어나기 위한 보수정당의 비전은커녕 이전투구의 늪에 빠져 여론의 준엄한 비판을 자초했다. 특히 친윤계의 간접 지원을 받은 원희룡 후보는 야당을 능가하는 온갖 의혹을 제기하며 ‘한동훈 네거티브’에 올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원 후보는 김건희 여사 문자 ‘읽씹’(읽고 무시) 논란으로 시작해 비례대표 사천 의혹, 법무부 장관 시절 여론조성팀(댓글팀) 운영 의혹, 금융감독원장 측근 추천 의혹 등을 파상적으로 제기했다. 급기야 전당대회장에서 지지자들끼리 몸싸움을 벌이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결국 컨벤션 효과는 고사하고 진흙탕 싸움으로 얼룩진 여당의 낯 뜨거운 전당대회가 되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에 조국혁신당은 7월20일 전국당원대회를 열고 99.9%의 찬성률로 조국 신임 당대표를 선출했다. 조 대표는 당대표 선거에 단독 출마했고 조국혁신당은 찬반 투표로 당선 여부를 결정했다. 애당초 당명에 ‘조국’이라는 개인의 이름이 들어간 것도 ‘사당(私黨)’이라는 시선을 피하기 어려운데, 이런 찬성률은 북한의 조선노동당이 아니면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역시 당대표 선출을 위한 경선을 진행 중인 더불어민주당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재명 후보는 제주·인천에서 득표율 90.75%를 기록한 데 이어 강원에서도 90.02%를 기록하는 등 압승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과거 당의 노선을 놓고 뜨거운 경쟁을 벌이곤 하던 야당의 전당대회에서 더 이상 경쟁의 의미는 사라지고 개인의 정당이 돼버린 모습만 남았다. 아무리 정권퇴진이라는 명분을 내걸었더라도 당내 민주주의가 실종된 이런 야당들의 모습이 정상일 수는 없다. 여당이라도 미래를 내다보는 모습으로 당권 경쟁을 벌였다면 야당의 그런 전당대회와 차별화되면서 민심을 다소라도 회복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 법하다. 그러나 보수정치를 되살리기 위한 비전을 말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각자도생만 하려 했다. 개인과 계파의 기득권에 갇힌 국민의힘이 다시 한번 드러낸 한계다. 좀처럼 변화를 수용하려 하지 않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우선하는 의원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당내 환경에서 과연 한 대표가 자신이 공언한 변화를 실제로 가져올 수 있을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한동훈 정치’는 이제 검증의 시간
한 대표를 둘러싼 환경은 녹록지 않다. 야당들은 한 대표의 취임과 동시에 ‘한동훈 특검법’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했다. 22대 국회 개원 직후에 조국혁신당이 발의했던 법안을 굳이 한 대표 취임에 맞춰 상정한 광경에서 한 대표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야당의 정치적 적의를 읽을 수 있다. 야당의 이 같은 ‘한동훈 때리기’에서 단지 눈앞의 여야 관계를 넘어 차기 대선의 유력 경쟁자에게 상처를 입히겠다는 결의를 읽을 수 있다. 또한 민주당은 ‘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 수용, 방송 장악 중단, 국회 운영 정상화, ‘윤명하복(윤석열 대통령이 명령하고 한 대표가 복종)’ 당정 관계 거부 등 ‘5대 요구안’을 한 대표에게 제시하며 파상적인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대표가 당내의 전폭적인 지원을 얻기 어려운 현실은 그의 발목을 잡는 큰 요인이다. 이번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한동훈 대표를 향한 친윤계의 시선이 어떠한지는 분명하게 드러났다. ‘반윤’ 심지어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을 정도로 한 대표를 대하는 대통령실과 친윤계의 감정은 냉랭했다. 이런 현실은 윤석열 대통령이 곧바로 여당 신임 지도부와 ‘삼겹살 만찬’을 갖고 “우리는 다 같은 동지”라고 말했다고 해서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물론 당장은 대통령실도 ‘윤·한 관계’가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막고 개선을 원하겠지만 앞으로 양측의 갈등이 불가피한 사안은 차고 넘친다. 한 대표 입장에서도 윤 대통령과의 불편한 관계를 해소하지 않으면 당내 화합조차 어렵기 때문에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의식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윤 대통령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여당의 길을 가다가는 당의 변화는 구두선(口頭禪·실행이 따르지 않는 실속이 없는 말)에 그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갑자기 여당의 비대위원장으로 등판했던 한 대표지만, ‘한동훈 정치’에 대한 검증과 평가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옳은 말도 많이 하기는 했지만, 그것을 얼마나 실행에 옮겼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말과 논리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한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똑똑하고 잘난 ‘엄친아’가 아니라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 시대 많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껴안을 수 있는 넓고 깊은 리더십이다. 정치는 성적순이 아니다. 그래서 한동훈 정치에 대한 검증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아직까지 우리는 한동훈이 가겠다는 미래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 여당을 어떻게 혁신하겠다는 것인지도 듣지 못했다. 이제는 그것들을 말하고 실천에 옮길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