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더 확대? AI로 폭증하는 전력 수요 감당 못 해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비상 걸린 전력수급기본계획…“발전 늘리고 송전 정비해야”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을 앞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이유는 전력 수급의 안정을 위해서다. 핵심은 전력 수요 전망과 공급 계획이다. 국가의 향후 전력 수요량을 예측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어떤 발전 설비를 언제 건설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담는다. 국가 중·장기 전력 수급의 안정을 위한 ‘전기사업법’에 따라 2년 주기로 향후 15년 계획을 수립한다. 이번에 수립하는 11차 기본계획은 2024년부터 2038년까지 15년간을 대상으로 전력 수급의 기본방향과 장기 전망, 발전 설비 계획, 전력 수요 관리 등의 내용을 담게 된다.
실무진이 만든 방안이 나온 것은 5월31일이다. 전력 수요는 2038년까지 연평균 발전량 1.0%, 최대전력 1.8% 증가를 예상했다. 2038년의 국내 최대 전력 수요를 129.3GW로 전망하고 발전 설비의 불시 고장, 정비 소요, 건설 지연 가능성 등을 고려해 적정한 전력 예비율로 22%를 적용하면 필요한 설비는 157.8GW가 된다. 신재생에너지 설비 보급 전망과 기계화된 화력·원자력발전 등의 건설 및 폐지 계획 등을 반영한 2038년 확정 설비는 147.2GW로 추산됐다. 10.6GW의 발전 설비가 추가로 필요하다.
모자라는 전력은 대형원전과 소형모듈원전(SMR), 그리고 LNG 열병합 등으로 충당해야 한다. 소형모듈원전에 더해 2038년까지 1기당 1.4GW인 원전 3기를 추가로 지어야 한다. 2038년의 발전원별 비중을 보면 원전 35.6%, 신재생 32.9%, LNG 11.1%, 석탄 10.3%, 수소 5.5%다. 현재 원자력 31.5%, 석탄 26.3%, LNG 29.6%, 신재생 11.1%, 기타 1.4%로 운영되는 걸 생각하면 석탄과 LNG 비중은 낮아지고, 원전과 신재생 비중은 높아진다.
현실적으로 원전 비중 높일 수밖에 없어
논란은 우선 수요 전망부터 시작된다.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전력 수요가 폭증할 일은 차고 넘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만 해도 모두 구축되면 지금 국내 전력 수요의 20% 수준이 필요하다. 대규모 전력 소비처 증가는 폭발적이다. 대표적인 것이 데이터센터다. 보통 데이터센터보다 6배의 전기가 필요하다는 AI 데이터센터는 전력을 잡아먹는 블랙홀이다. 서버를 구동하는 데 필요한 전력뿐만 아니라, 서버의 열을 식히기 위해서도 엄청난 양의 전기를 써야 한다.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2029년까지 건설을 요청한 데이터센터의 전력 용량은 총 4만9297MW 수준이다. 이 정도 전력을 공급하려면 1GW급 발전기 53기를 추가로 건설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수단은 대부분 화석연료 소비를 전기로 대체하는 일이다. 흔히 수소 경제를 말하지만, 수소나 암모니아를 생산하는 데도 전기가 필요하다.
예상된 일이지만 원자력과 재생에너지의 상대적 비중에 대한 논란도 치열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의 40%를 줄이겠다고 이미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2018년 우리나라의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은 7.3억 톤, 이 중 전력 부문 배출량은 2.7억 톤이었다. 2030년까지 감축해야 할 온실가스 배출량은 2.9억 톤이다. 전력 부문은 무려 1.2억 톤을 감축해야 한다.
탄소중립이 최우선 과제가 되면서 사실상 선택의 여지는 없어졌다. 실무안은 2038년까지 국내에서 만들어지는 전기 가운데 70% 이상을 ‘무탄소 전기’로 채운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방법은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과 함께 SMR을 포함한 원자력발전을 늘리는 것이다. 소형모듈원전에 원전 3기까지 합치면 2038년에 가동되는 원전은 30기에 이른다.
재생에너지만으로 전력을 충분히 공급할 수 없는 우리 상황에서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균형 있게 키운다는 방향은 어쩔 수 없다. 현실적으로 원전 비중을 높여 잡을 수밖에 없지만, 재생에너지를 더 많이 써야 하는 기업들은 고민이 커진다. 원자력 확대 기조는 RE100 요구에 대응하지 못한다. 특히 대형원전의 핵심 장치를 하나로 통합해 규모를 3분의 1에서 5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는 SMR은 아직 전 세계적으로 상업운전 중인 발전소가 없다. 실험 성공을 가정해 국가의 전력수급계획에 반영하는 것은 아무래도 문제가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미 재생에너지를 더 확대하는 방향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전력산업 근본적 개편’ 논의 시작할 때
그러나 재생에너지 확대는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전력망 확충의 어려움도 있다. 현재 국내에서 전력 공급에 제약이 생기는 가장 큰 원인은 발전 능력이 아니라 송전 문제 때문이다. 전력계통에 대한 투자 지연과 감소로 인한 부작용으로 송배전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송배전망 건설은 2008년부터 이어진 밀양송전탑 갈등을 계기로 전국 곳곳에서 미뤄지고 있다. 돈도 부족하다. 송전망 정상화에는 100조원 이상이 필요하다는데 누적된 한전의 적자는 전력망 투자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재생에너지가 확대되면 전력망은 더 많은 재원을 요구한다.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가장 효과적인 재생에너지는 입지와 함께 전력망 문제를 풀어야 한다. 지금은 지방 태양광 단지에서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낼 송전망도 없다. 들쭉날쭉 생산되는 전력을 안정화하는 데도 별도의 투자가 들어가야 한다. 태양광 설비가 많아지면, 발전량의 70% 이상을 저장해 놓았다가 필요한 때 공급해야 하는데 이것도 돈이 들어간다. 송배전망을 제때 구축하지 않고 재생에너지 확대나 탄소중립 실현은 불가능하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사업 주체와 부지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목표만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필요한 부지 면적, 부지 확보 방안, 부족한 부지에 대한 대응 등 국토이용계획과 송전망 확충계획이 선행돼야 한다. 전력 공급 차질은 이미 우리의 현실이다. 사상 처음으로 지난해 1000건 넘는 정전이 발생했다. 규제개혁위원회에는 수도권의 전력 공급 문제로 착공이 미뤄지고 있는 데이터센터와 관련한 민원이 쌓여 있다. 현재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낼 송전선로 건립이 지연되고 있는 강원도 동해안의 화력발전소들은 일부 가동을 멈추거나, 발전량을 낮춰 적자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에너지 문제 해결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 이 문제가 그만큼 ‘정치화’ 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가 기간산업인 발전소 운영 방침, 에너지 정책의 큰 방향이 5년마다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에너지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오로지 전력을 확보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아쉽게도 정부는 당장 한국전력의 위기도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요금 결정 체계는 물론 전력산업의 근본적인 개편 방향에 대해서도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가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