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청년들이 ‘극우’ 깃발 드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이유 [임명묵의 MZ학 개론]

프랑스 정치 돌풍의 주역 29세 바르델라 국민연합 대표 서민 공공주택의 이혼가정 출신에 이민자 혈통 지녀 청년 유전자들, 경제 불안정과 ‘문화적 자유주의’에 거부감

2024-07-05     임명묵 작가

6월30일 프랑스에서 치러진 국민의회(하원) 선거 결과는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반(反)이민 공약을 내세우며 극우 성향으로 평가받는 국민연합이 33.1%를 득표해 1당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현재 프랑스의 민심이 극우에 우호적이라는 신호가 좀 더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이번 국민의회 선거 자체도 6월6일부터 9일까지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하고 국민연합이 32.5%를 득표하며 승리하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의회 해산을 선포하고 치러진 것이다.

본래 국민연합과 그 전신인 국민전선은 1970년대부터 계속 선거에 참여했으나 프랑스 정치의 주류 세력인 중도좌파와 중도우파에 의해 정계 진출이 계속 저지되었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벌어진 이변은 극우 국민연합이 청년층 유권자로부터 상당한 득표를 얻어낸 것에 있었다. 청년층에게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정당은 좌파 야당 연합인 신인민전선이었지만, 국민연합은 18세부터 24세 유권자 사이에서 33%, 25세에서 34세 유권자 사이에서는 32%를 득표하면서 이전 선거에 비해 더 큰 성과를 얻어냈다. 진보적일 것이라 기대되는 청년층 사이에서 극우 지지가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유럽 정치 지형이 일반적으로 그렇듯, 본래 프랑스 정치 또한 중도좌파와 중도우파 사이의 타협이 일반적이었다. 1930년대 파시즘이 발호하고, 나치 독일의 괴뢰 정권인 비시 정권에 우파가 다수 참여한 결과, 1945년 나치 패망 이후 극우는 주류 정치에서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등장했다. 한편으로 소련(러시아)이 동유럽을 공산화하고 미·소 냉전이 시작되면서, 극좌 또한 프랑스 주류 정치에서는 외면받았다. 다른 전후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도 사민주의 복지국가를 기본으로 하는 중도 수렴의 정치가 등장했다.

극우 성향 국민연합의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가 5월27일 다른 정당 대표들과 함께 토론에 나서고 있다. ⓒAP 연합

“이주민들, 복지 시스템에 무임승차” 불만

1968년 프랑스에서 가장 거세게 일어났던 68혁명과 1981년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시행한 시장 자유화 개혁으로 프랑스는 커다란 변화를 겪었지만 중도 수렴이라는 큰 틀은 바뀌지 않았다. 68혁명으로 탄생한 문화 좌파는 문화적 자유주의를 주창했고, 우파들은 복지국가 개혁을 통한 경제성장을 옹호하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내세웠다. 세부적인 사항에서 논쟁이 있을 수는 있더라도 중도 좌우파가 합의해 거대한 흐름을 만드는 기본적인 경향은 유지되었다.

상황은 2010년대 들어 문화 및 경제 자유주의라는 기존 합의에 대한 반발이 심해지며 변화할 조짐을 보였다. 중동발 난민 위기, IS라는 극단주의 세력의 발호가 겹치며 2015년 파리 연쇄 테러라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다문화주의와 이주민에 대한 개방을 핵심으로 하는 문화적 자유주의가 가져온 참사로 여겨졌다. 경제적 자유주의 또한 위기에 봉착했다. 복지국가가 제공해 주는 안정적 삶을 선호하는 프랑스인들에게 각종 노동 유연화 및 시장화 개혁은 반감을 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주민들이 프랑스의 복지 시스템에 무임승차한다는 비난이 시작되며 문화 자유주의와 경제 자유주의에 대한 두 반감이 결합했다. 그 결과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집권한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는 임기 말 지지율이 4%까지 추락했다.

2016년 혜성처럼 등장한 30대의 에마뉘엘 마크롱은 중도 혁신을 내세우며 커다란 지지를 끌어냈다. 마크롱은 카리스마적 지도력을 바탕으로 경제 개혁을 뚝심 있게 추진하고 프랑스를 지정학 무대에서도 당당한 강국으로 다시 부활시키겠다는 메시지를 내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마크롱의 중도 혁신 정책이 중도 정치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근원적 불만을 전혀 해소해 주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그의 친시장·친기업 정책이나 여전히 온건한 이민 정책은 중도 대신에 극좌나 극우를 지지하기 시작한 새로운 유권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반면 2022년이 되었을 때 국민연합의 마린 르펜은 대통령선거에서 40%를 득표하는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해 있었다.

 

바르델라, ‘프랑스인 위한 복지국가’ 주창

여기에는 청년 유권자들이 프랑스 정치의 중도 수렴 경향을 따르지 않고, 극좌와 극우에 대한 강한 경계심을 가질 동기가 없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나 68혁명과 같은 옛 프랑스를 형성한 역사적 사건은 그들에게는 너무나 먼 과거의 일이었다. 대신에 경제적 불안정이나 이민자 유입에 따른 불안심리를 해소할 수 있는, ‘새로운 인물’을 원하는 경향이 짙었다.

29세의 나이에 등장한 국민연합의 새로운 당대표 조르당 바르델라는 이러한 프랑스 청년층의 불만을 완벽하게 대리해줄 존재로 빠르게 부상했다. 서민 공공주택의 이혼가정 출신에 이민자 혈통을 지닌 바르델라는 프랑스의 전통적 엘리트 대신에 그야말로 ‘서민의 얼굴’을 한 지도자로서 대중적 인기를 끌어모을 수 있었다. 젊은 데다 틱톡과 같은 SNS를 능숙히 사용하는 바르델라는 청년층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그들의 지지를 끌어모으는, 국민연합 승리의 결정적 공신이 되었다. 이러한 기세를 바탕으로 국민연합은 이민을 강력히 통제하고, ‘프랑스인을 위한 복지국가’를 회복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을 더욱 강하게 추진할 것이다.

청년층이 ‘극우’라고 불리는 주변적 정당들에 더 잘 이끌리는 현상은 프랑스만의 일이 아니다. 독일의 경우 극우 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의 성장세가 엄청나다. 2019년 유럽의회 선거만 하더라도 24세 미만 유권자 5%가 AfD를 지지한 반면, 이번 2024년 선거에서는 16%가 AfD에 투표해 중도 주류 정당에 버금가는 지지세를 모았다. 유럽의 주요 국가에서 중도 좌우파 수렴의 정치가 변화를 만들지 못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출하는 청년층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는 셈이다.

유럽은 탈냉전 시대 자유주의의 승리를 상징하는 공간이자 나머지 세계에 대한 도덕적 권위의 원천처럼 여겨질 때가 많았다. 바로 그런 곳에서 청년들이 문화적·경제적 자유주의에 염증을 느끼며 목소리를 내고 고립주의를 더욱 지지한다면, 서구 세계와 중국·러시아의 지정학적 경쟁에서도 이탈하고자 하는 흐름이 가속화될 수 있다. 한국을 비롯해 다른 서구 세계의 청년층에게도 당연히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사실 중도 수렴의 양당 정치가 민의를 대변하지 못한다며 좌우의 급진 정당이 부상하는 경향은 이미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매우 유의미한 수준으로 올라왔다. 양당 기반이 매우 강고한 한국에서 급진 정당이 새로 세력을 얻기란 쉽지 않을 테지만, 적어도 청년층이 기존 양당을 더욱 급진적으로 만들 가능성은 충분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