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 취재] “기업이 멈추고 부자가 떠나간다” 기로에 선 상속세

중소기업 오너들 “상속세 그대로 두면 사업 존속할 방법 없어” ‘100만 달러 이상’ 해외 유출, 한국 세계 4위

2024-07-15     오종탁 기자

기업이 멈추고 부자가 떠나가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가혹한 상속세제는 한국 경제의 허리를 직격했다. 높은 상속세 탓에 가업 승계를 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중견·중소기업이 수두룩하다. 해외로 사업장을 옮기거나 승계 포기 후 매각 또는 폐업을 택하는 사례도 있다. 설상가상으로 부동산 가격이 계속 상승하는 가운데 상속세 부담은 기업이나 고액 자산가를 넘어 중산층에까지 직격탄으로 다가온다. 

뒤늦게 정부·여당을 중심으로 상속세제 개편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최대주주 할증평가를 폐지키로 한다’는 등 제한적인 수준이다. 일부 기업인, 특히 중소기업인 대다수는 더욱 과감하고 적극적인 구제안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고 호소하고 있다. 시사저널이 직접 만나본 중소기업 오너 경영자들은 세율 인하를 넘어 상속세를 아예 폐지하는 수준의 조치가 나와야 사업 존속이 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일러스트 정찬동

경기도의 시계 제조회사 “상속세 낼 형편 못 돼 인도네시아로 이전” 

영국의 투자이민 컨설팅업체 헨리앤드파트너스가 6월18일(현지시간) 공개한 ‘2024년 개인자산 이주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고액 순자산 보유자(투자 가능 유동자산 100만 달러 이상) 순유출은 올해 1200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에서 중국(1만5200명), 영국(9500명), 인도(4300명) 다음으로 많은 것으로 관측된다. 문제는 증가세다. 2022년 400명에서 2023년 800명으로 늘어나더니 올해도 큰 폭의 증가세를 막을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은 정치적 감시와 탄압 심화가 원인으로 꼽힌다. 영국은 계속되는 유럽연합(EU) 탈퇴 여파, 인도는 낙후된 인적·물적 인프라라는 확실한 원인을 지목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이렇다 할 정치·사회 문제나 경제적 격변 없이도 부자 엑소더스가 펼쳐지는 형국이다. 그리고 산업 현장에서는 상속세 부담이 기업들의 ‘손톱 밑 가시’를 넘어 한국 경제를 덮치는 ‘퍼펙트 스톰’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사업과 자산을 정리해 해외로 떠나는 부자가 많아지면 그만큼 투자와 소비, 일자리도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경기도 상공업계에서는 시계를 제조하는 한 중소기업이 인도네시아로 옮겨갔다는 소식이 화제를 모았다. 상속세를 낼 형편이 못 돼 가업 승계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오너가 해외 이전을 결단한 것이다.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던 중소기업 오너들은 ‘올 게 왔다’는 반응이다. 가구를 만들어 연 매출 18억원을 올리고 있는 벤텍퍼니처의 한기만 대표(73)는 “나도 순전히 상속세 부담을 떨쳐 보려고 인도네시아, 중국, 베트남, 인도 등을 답사하며 해외 이전을 모색한 적이 있다”면서 “고심 끝에 외국행을 포기하고 한국에 계속 있기로 하긴 했으나, 앞으로 어떻게 아들에게 가업 승계를 할지는 여전히 막막하다”고 말했다. 

한기만 대표에게 가업 승계는 단순히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차원을 넘어선다. 한 대표는 “1989년 창업한 후 35년간 정말 고생해 제품을 생산하고 브랜드를 구축했다. 10년 전 멀쩡한 회사원이던 아들을 데려와 가업 승계를 준비한 이유는 이 일을 이어가려는 사람이 없어서였다”며 “힘겨워하는 아들을 달래가면서 기술과 운영 체계를 거의 다 전수했더니, 이제 상속세라는 일생일대의 걸림돌이 기다리고 있다”고 한탄했다. 그는 “상속 재산이라고 해봐야 공장 부지다. 1991년에 산 공장 부지의 가격이 세월이 흐르며 50억원 정도로 올라 50%의 최고세율을 적용받게 되더라”면서 “은행 대출 이자를 내고 직원 급여 주기도 빠듯한 중소기업이 감당하기엔 너무 많은 세금”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상속세는 과표구간별로 △1억원 이하 10% △1억~5억원 20% △5억~10억원 30% △10억~30억원 40% △30억원 초과분 50%의 명목세율이 각각 부과된다. 2000년 세법 개정 이후 24년째 그대로다. 경제 규모는 커졌는데, 과표구간이 그대로 적용되면서 과도한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50% 세율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일본(55%)에 이어 2위다. 주식 상속 시 최대주주에게 적용되는 20% 할증 평가를 포함하면 실질적인 최고세율은 60%가 된다. OECD 회원국의 직계 상속에 대한 최고세율 평균(약 13%)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과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의 상속세제를 놓고 그동안 ‘세계적으로도 엄격한 편이라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과 ‘부의 대물림 방지를 위해 엄격하게 운영돼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 왔다. 

“아들로의 가업 승계 포기…회사 매각·파산신청 검토” 

해외로 이전했거나 이전을 고려하는 업체, 상속세 재원 마련에 골몰하는 업체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건축재를 생산하는 대한플라테크의 박창환 대표(70)는 “별다른 대비를 못 하고 승계 시기를 맞아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며 “아들이 대기업에서 근무하다가 가업을 이으려 우리 회사에 들어왔는데, 후계 수업을 하며 상속세를 추산해 보고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현재 40%대 후반의 세율이 적용되는 상속세를 낼 만한 유동자금이 전혀 없어 회사를 매각하거나 파산을 신청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32년 동안 내수, 수출 할 것 없이 열심히 뛰며 연 매출 50억원 수준의 작지만 건실한 회사를 일궜다. 국가경제에도 나름대로 보탬이 됐다고 자부한다”면서 “앞만 보고 달려온 결과가 세금 폭탄으로 인한 폐업 위기라니, 어찌 이럴 수가 있나”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5월26일 발간한 ‘상속세제 문제점 및 개선 방안’ 보고서를 통해 높은 상속세율이 직접적으로 기업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저해해 경제성장을 제약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상의는 ‘1965년부터 2013년까지 OECD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상속세수가 1조원 늘어날 때 경제성장률은 0.63%포인트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의 연구 내용을 인용했다. 실제로 국내 투자가 정체되는 상황에 상속세 및 증여세 징수액은 1997년 1조5000억원에서 2022년 14조6000억원으로 9배 가까이 증가했다. 

상의는 기업 가치 상승(밸류업)에도 상속세가 영향을 준다고 분석했다. 상속세율이 최고 60%인 현행 제도는 최대주주로 하여금 밸류업보다 세금 납부 재원 마련, 절세 등에 더 집중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조병선 전 중견기업연구원장은 “승계를 앞둔 중소·중견기업 다수는 새로운 투자를 주저하고 혁신 활동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투자 확대를 통해 기업 가치가 커지면 승계 과정에서 더 많은 상속세를 납부하게 될 거란 부담 때문”이라며 “가업 승계와 관련한 상속세 과다 부담은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커가고 중견기업이 글로벌 전문기업으로 성장하는 성장 사다리 작동을 저해하는 요인의 하나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특수필름을 제조하는 중소기업인 삼화켐의 윤금영 회장(83)은 10여 년 전 가업 승계를 완료했다. 윤 회장은 “창업 초기인 1986년에 행정상 문제로 공장이 철거되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으며 자구책을 마련하다가 상속세 등 세금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며 “공장을 짓고 운영하는 데도 이렇게 많은 세금이 징수되는데, 나중에 상속세까지 내려면 회사가 이중, 삼중으로 어려워지겠다 싶더라”고 회상했다. 이후 자녀에게 부지를 증여한 후 그들 이름으로 허가를 내고 대출을 받아 공장을 짓는 등 법의 테두리 내에서 세금 리스크를 피해 가는 일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고 그는 전했다. 

한때 100억원을 넘보던 삼화켐의 연 매출은 세금 문제와 노동환경 변화,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여러 요인에 부닥쳐 60억~70억원대에 머무르고 있다. 윤 회장은 “최대한 회사와 상속인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지분 정리까지 마치고 나니 ‘상식적인 세제 아래에서 이런 고민과 고생 없이 회사 경영에만 매진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짙게 남았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상속세제 개편을 논의 중인 정부와 정치권에 대해 “기업인이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납세 의무와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세금 때문에 일군 부가 거덜 나고 사업 발전이나 승계가 가로막히는 현 상황은 반드시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6월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최 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상속세율 개정 법안, 거대 야당 의식해 ‘주춤’ 

상속세제 개편 논의는 6월16일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종합부동산세를 사실상 전면 폐지하고 상속세 최고세율을 30%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밝히면서 불이 붙었다. 이어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는 7월3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과 ‘역동경제 로드맵’을 발표해 상속세 개편을 공식화했다. 상속세 최대주주 할증평가를 폐지하고 기업상속공제 대상과 한도를 확대하는 게 골자다. 과도한 상속세 부담이 원활한 가업 승계를 막아 결국 중산·서민층의 피해로 이어져 왔다는 게 당정의 인식이다. 최근 들어 주택 가격 급등으로 중산층의 상속세 부담이 커졌다는 문제의식도 무겁게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번에 기재부가 발표한 계획에 상속세 세율 인하와 과표구간 조정은 담기지 않았다. 기재부는 해당 내용을 7월말 내놓을 세법개정안에 반영하지 않고 중장기 과제로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이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세율 인하와 과표구간 조정까지 포함한 개정안을 통과시키긴 쉽지 않을 거란 점을 고려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소기업인들은 특단의 대책이 신속하게 나오지 않는다면 기업이 멈추고 부자가 떠나가는 흐름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박창환 대한플라테크 대표는 “상속세 최고세율을 30% 수준으로 낮춘다는 최초 정부안이 실현되더라도 막막한 우리 회사 현실을 타개하기는 어렵다. 상속세가 사라져야 겨우 숨통이 트일 거라 본다”면서 “이미 다른 세금을 충실히 내며 고군분투하고 있는 중소 제조업체들이 승계하지 못해 줄줄이 멈춰설 경우 해당 산업이 무너지고, 결국 국가 경쟁력에 치명타를 가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기만 벤텍퍼니처 대표는 “한국 가구산업의 자존심을 지켜낸다는 마음가짐으로 외국으로 나가지 않고 버텨왔으며 승계도 어떻게든 해보려 하고 있다”며 “우리 같은 중소기업의 승계에 세금을 물릴 게 아니라 오히려 지원해 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 UAE·미국·싱가포르에 해외 기업과 부자가 몰려드는 이유 

헨리앤드파트너스의 ‘2024년 개인자산 이주 보고서’를 보면 고액 순자산 보유자들이 중국, 영국, 인도, 한국 등에서 유출되는 반면 아랍에미리트(UAE), 미국, 싱가포르, 캐나다, 호주 등으로는 유입되는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부자들을 끌어들이는 5개국은 모두 세금 부담이 적다는 공통점이 있다. 

올해 투자 가능 유동자산 100만 달러 이상 자산가가 가장 많이(6700명) 순유입될 것으로 관측되는 UAE에선 개인 소득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세금 메리트와 더불어 UAE가 글로벌 기업 유치를 위한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점도 부자들을 모으는 요인이다. 미국(3800명), 싱가포르(3500명), 캐나다(3200명), 호주(2500명)로도 부자들이 몰리는 추세다. 

우리나라의 부자들이 주로 향하는 나라로 분석되는 미국, 캐나다, 호주는 사실상 상속세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미국의 경우 상속세 최고세율은 40%다. OECD 국가 중 일본(55%)과 한국(50%), 프랑스(45%)에 이은 4위다. 그러나 현재 미국에서 상속세를 납부하는 비중은 0.07%에 불과하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 재임 당시 이뤄진 세제 개편으로 1361만 달러(약 188억원) 이상을 상속받을 때만 과세하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개인 최고 한계 세율이 22%, 법인세 단일 세율이 17%에 불과하다. 각각 49.5%, 26.4%인 한국에 비해 현격히 낮다. 여기에 외국인 투자자를 우대하는 분위기가 더해지며 싱가포르는 어느덧 아시아의 금융 허브로 자리매김했다. 싱가포르개발청(EDB)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싱가포르의 고정자산투자는 225억 달러(약 23조원)로 10년 새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아일랜드의 법인세율은 싱가포르보다 더 낮다. 다만 아일랜드는 일자리를 창출하는 제조업에 대해서는 12.5%, 적극적으로 사업을 추진하지 않는 기업엔 50% 정도의 법인세율을 차등 적용하고 있다. 낮은 법인세를 비롯한 해외 투자자 친화 정책에 힘입어 아일랜드는 애플, 구글 등 주요 IT 기업의 유럽 본부와 거대 제약회사를 비롯해 1000여 개 외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 밖에 독일은 상속세 최고세율이 50%지만, 기업을 배우자나 자녀 등 직계비속에게 상속 또는 증여할 때 최고세율을 30%로 낮춰 적용한다. 일본은 중소·중견기업 승계 시 세금 부담을 대폭 덜어주는 특례사업 승계 세제를 2018년 도입했다. 

조병선 전 중견기업연구원장은 “국제적 흐름과 달리 우리나라는 기업 승계를 부의 대물림으로 보는 이념적 논쟁 단계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며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승계를 제약하는 현행의 조세제도를 혁신하지 않을 경우, 다수의 중소·중견기업이 적기에 승계를 추진하지 못하고 어려움에 직면함으로써 많은 일자리가 없어지고 경제의 활력이 저하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