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전 떠돌이’와 ‘골든타임’이 생명 좌우한다
‘고령사회 건강의 덫’ 뇌졸중과 혈관치매 예방하려면 동맥경화·고혈압·부정맥·뇌동맥류 관리부터
#1. 1997년 3월11일,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렸던 최형우(1935~) 전 내무부 장관이 뇌졸중(뇌경색)으로 쓰러져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다.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던 정계의 거목이 60대 초반의 나이에 뇌졸중을 당했다는 소식은 당시 신문 1면 머리기사로 일제히 보도될 정도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는 현재 9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28년째 꿋꿋하게 투병 중이다.
#2. 2022년 5월5일, 한국의 대표급 영화배우 강수연(1966~2022)이 50대 중반의 나이에 뇌졸중(뇌출혈)으로 쓰러져 이틀 후에 별세했다. 고인의 사인은 뇌출혈의 하나인 ‘지주막하출혈’이다. 뇌를 둘러싼 지주막 아래 동맥 혈관이 터져서 생기는 지주막하출혈로 의식을 잃은 것이 늦게 발견됐다. 많은 양의 혈액이 지주막에 고여 뇌를 심하게 누르면서 뇌 기능이 망가지고, 결국 호흡정지와 심정지가 온 것이다.
얼굴·팔·다리 저리거나 마비되면 ‘의심’
위의 두 사례처럼, 뇌졸중이 중·장년기 이후의 국민 건강 특히 노년기 이후의 건강을 위협한 지 오래다. 한국은 2025년에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가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남녀 평균 82.7세다. 그러나 건강수명은 그보다 훨씬 낮은 65.8세다. 무려 15년을 이런저런 질병이나 사고로 인한 부상에 시달리다 죽게 된다는 얘기다. 그 중심에 있는 주요 질환 중 하나가 뇌졸중이다.
대한뇌졸중학회에 따르면 뇌졸중은 뇌혈관이 막혀 산소 공급의 중단으로 발생하는 뇌경색(허혈성 뇌졸중)과 뇌혈관이 파열되어 뇌 조직을 손상시키거나 눌러서 발생하는 뇌출혈(출혈성 뇌졸중)을 통틀어 말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자료를 보면, 2022년 뇌졸중 환자들의 평균연령은 남성 66.3세, 여성 72.5세로 나타났다. 환자의 약 90%가 허혈성 뇌졸중이고 뇌출혈은 약 10%다. 2017년 57만7689명이었던 뇌졸중 환자 수는 2022년 63만2119명으로 5년 만에 9.4% 증가했다. 별도로 집계하는 한방치료 뇌졸중 진료환자 또한 2020년 이후 매년 2만3000명 내외로 2022년 기준 실질적인 총 뇌졸중 환자는 65만5000명에 달한다.
뇌졸중은 발생 전에 여러 가지 전조증상이 먼저 나타난다. 대표적인 전조증상은 한쪽의 얼굴이나 팔, 다리가 저리거나 마비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입술이 한쪽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고 눈이 갑자기 안 보이는 때도 있다. 말이 어눌해지거나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기 어렵게 되기도 한다. 이처럼 평소 느껴보지 못한 증상이 발생하면 즉시 긴급 전화 119를 눌러 구급대를 불러야 한다. 가능하다면 스스로 빠른 대중교통을 이용해 병원으로 가도 되지만 직접 자가용 차량을 운전하는 것은 좋지 않다.
뇌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골든타임(3~4시간)’이다. 대한뇌졸중학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허혈성 뇌졸중 환자 중 3.5시간 이내에 병원을 방문한 사람은 26.2%에 불과했다. 4.5시간 이내 병원에 도착한 뇌졸중 환자의 42% 정도가 적절한 치료를 받았지만, 4.5시간 이후 방문한 환자는 치료받는 비율이 10.7%로 급격하게 줄었다. 이처럼 뇌졸중 골든타임은 환자의 생명과 후유 장애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뇌졸중의 4가지 대표적인 요인은 동맥경화, 고혈압, 부정맥 그리고 뇌동맥류다. 동맥경화란 동맥의 가장 안쪽을 덮고 있는 내막에 죽처럼 끈적끈적한 콜레스테롤(혈전·피떡)이 쌓이고 내피세포 증식이 일어나 혈관이 좁아지는 현상이다. 수도관이 녹스는 것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이 혈전이 떨어져 나가 뇌혈관을 막으면 뇌경색, 심장혈관을 막으면 심근경색이 발생한다.
심장의 박동에 문제가 생기는 부정맥은 돌연사의 주요 원인일 뿐 아니라 뇌경색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부정맥으로 혈관이 떨리면서 ‘혈전 떠돌이’(혈전이 떨어져 혈관을 돌아다니는 것)를 잘 유발하기 때문이다. 고혈압 또한 혈전 떠돌이의 원인이고, 뇌혈관 파열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뇌동맥류는 뇌동맥의 혈관 벽이 얇아지면서 혈관이 풍선이나 꽈리처럼 부풀어 오르는 현상으로, 뇌출혈의 가장 큰 원인이다. 뇌동맥류는 터지기 전에는 증상이 거의 없다. 전문의들은 “이러한 뇌졸중의 근본 원인이 되는 각 질환을 조기에 발견해 대처하고, 흡연과 과음을 삼가고, 꾸준한 운동과 건강한 식습관으로 비만을 예방하는 것이 항구적으로 뇌졸중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뇌졸중 관리에서, 잠시 뇌졸중이 왔다가 호전되는 ‘일과성 뇌허혈발작’(일명 미니 뇌졸중’도 매우 중요하다. 미니 뇌졸중은 뇌졸중 증세가 약하게 왔다가 원인 해소로 금방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증상이 사라지기 때문에 이를 무시하기 쉽다. 대한뇌졸중학회는 “일과성 뇌허혈발작은 당장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지는 않지만 앞으로 발생할 뇌졸중의 강력한 경고”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미니 뇌졸중을 경험한 사람은 뇌졸중 발생 가능성이 매우 크다. 5%에서 1개월 내, 12%에서 1년 내, 20%에서 2년 내 뇌졸중이 나타난다고 한다.
뇌졸중으로 혈관성 치매 위험 커져
뇌졸중은 목숨을 건지더라도 안면마비나 언어장애, 삼킴장애, 보행장애, 배변배뇨장애 같은 후유증을 흔히 초래한다. 특히 10명 중 4명에서 혈관성 치매(혈관치매)를 유발하게 된다. 혈관치매는 알츠하이머(노인성 치매)에 이어 치매의 두 번째로 흔한 원인이다.
통계청과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60세 이상 고령 인구는 1365만2453명으로, 추정 치매 환자 수는 약 101만 명(유병률 7.4%)이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946만2270명으로, 추정 치매 환자 수는 약 98만 명(유병률 10.4%)이다. 국내 치매 인구는 2030년 약 150만 명, 2040년 약 250만 명에 달하고 2050년에는 300만 명에 육박할 전망이다.
따라서 고령사회의 재앙인 뇌졸중과 치매 대책에는 알츠하이머뿐 아니라 혈관치매에 대해 더 세심한 정책과 의학적 대처가 필요하다. 그 하나가 뇌졸중에 대한 한방치료의 역할 증대다. 한의학계에 따르면, 혈관치매 해결의 주요 관건은 뇌졸중 급성기 치료 이후의 치료와 관리인데, 한방요법을 병행하면 뇌졸중 치료 및 후유증 해결, 재발 방지 등에 관한 성적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급성기 치료 이후 만성기 및 재활 그리고 퇴원 이후의 건강 관리에 특히 효과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