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의 미션, “‘뉴 보수’ 잡으려면 ‘좌클릭’ 하라” [최병천의 인사이트]
새로운 보수의 탄생으로 유권자 지형 변화 국민들은 노무현·김대중을 박근혜·이명박보다 좋아해
7월23일로 국민의힘 전당대회 일정이 잡혔다. 관전 포인트는 두 가지다. 하나는 ‘어대한’(어차피 대표는 한동훈)이 현실화할 것인가. 승리한다면 얼마나 압도적인 격차로 승리할 것인가. 다른 하나는 대표로 당선될 경우 국민의힘과 보수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여부다. 여기서 더 주된 관심은 후자(後者)다. 후자의 관심 때문에 전자의 관심도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한동훈 대표 체제가 등장할 경우 그는 과연 보수와 국민의힘을 살릴 수 있을까? 2027년 대선까지를 내다볼 때, 중요한 포인트는 ‘유권자 정치지형’을 다시 점검해 보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번 4월 총선과 2020년 총선 모두 약 180석에 가깝게 압승했다. 2회 연속 압승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한국의 정치 운동장은 진보 쪽으로 기울어졌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럴까?
이념 성향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우리가 언론을 통해 접하는 대표적인 여론조사는 한국갤럽, 전국지표조사(NBS), 리얼미터 조사 등이다. 리얼미터 조사는 자동응답시스템(ARS) 방식인데, 다른 조사에 비해 민주당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편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국민의힘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오는 조사다.
‘민주화’를 사랑하는 보수 유권자의 등장
[표1]은 리얼미터 조사를 기준으로, 이념성향별 추이를 정리했다. 리얼미터 조사는 보통 1000명을 샘플로 한다. 2023년 12월 1주 차를 보면 보수 286명, 진보 250명이다. 비율로 표현하면 보수 28.6%, 진보 25.0%다. 보수가 3.6%포인트 더 많다. 1월 1주 차는 보수가 1.3% 더 많고, 2월 1주 차는 보수가 2.5%포인트 더 많다. 민주당에서 ‘비명횡사 논란’이 가장 심했던 2월 5주 차는 그 격차가 8.2%포인트까지 벌어졌다. 3월 1주 차는 보수가 4.9%포인트 더 많았다. 4월 1주 차는 4·10 총선을 바로 앞둔 시점이었다. 이때는 뒤집어진다. 진보가 1.1%포인트 더 많아진다. 총선 참패 이후인 5월 1주 차 역시 진보가 0.6%포인트 더 많다. 2023년 12월 1주 차부터 2024년 6월 2주 차까지 기간을 평균해 보면 보수는 283.8명(28.4%)이고, 진보는 255.8명(25.6%)이었다. 중도는 366.8명(36.7%)을 차지했다.
결론인즉, 민주당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여론조사에서도 보수층 유권자가 진보층 유권자보다 더 많다. 총선이라는 불리한 국면임을 감안해도 보수 유권자층이 2.8%포인트 더 많았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보수’가 더 많았는데, 총선은 ‘참패’했으니 말이다. 도대체 이런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역사적 해석이다.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9년이 됐다. 그간 한국 현대사는 네 가지 업적을 이뤘다. ①나라 만들기 ②압축 산업화 ③압축 민주화 ④압축 복지국가다. 이러한 네 가지 업적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선진국’이다. 나라 만들기(Nation building)는 자본주의를 할지, 사회주의를 할지, 미국과 한편이 될지, 소련과 한편이 될지, 농지개혁을 할지 말지가 핵심 쟁점이었다. 이 중에서 나라 만들기와 압축 산업화는 보수가 주도했고, 압축 민주화와 압축 복지국가는 진보가 주도했다.
그런데 ‘새로운 보수’ 유권자가 출현했다. 이들은 진보가 주도했던 압축 민주화와 압축 복지국가를 적극 인정하는 유권자층이다. 연령으로 보면, 20대부터 40대 중반까지의 유권자들이다. 이들 새로운 보수 유권자를 우리는 ‘민주 보수’로 표현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대통령 호감도 조사’를 통해 알 수 있다. 한국사람연구원 정한울 박사는 2020년 총선과 2022년 대선의 투표층을 대상으로 유권자 변동을 조사했다. 2022년 《동향과 전망 통권 115호》에 ‘5년 만의 정권교체와 탄핵정치연합의 해체 요인 분석: 이탈민주와 뉴보수층의 지지변동 요인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실었다.
이 중에서 ‘올드 보수’와 ‘뉴 보수’의 비교가 흥미롭다. 올드 보수는 2020년 총선과 2022년 대선 모두 국민의힘 후보를 찍은 유권자다. 뉴 보수는 2020년 총선은 찍지 않고,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를 찍은 유권자다.
역대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를 물었다. 괄호의 숫자는 호감의 강도다. 올드 보수 유권자들은 박정희(0.90), 박근혜(0.62), 이명박(0.53), 이승만(0.51) 순으로 좋아한다. 그다음 순서가 노무현(0.45), 김대중(0.35), 문재인(0.05)이다. 전형적인 보수층이다.
흥미로운 것은 뉴 보수의 답변이다. 1순위는 박정희(0.69)다. 다만 강도가 다르다. 올드 보수는 0.9였는데, 뉴 보수는 0.69다. 2순위부터가 재밌다. 2순위는 노무현(0.61), 3순위는 김대중(0.54)이다. 박근혜(0.31), 이명박(0.29), 이승만(0.25)은 4~6순위로 밀린다. 뉴 보수는 박정희 다음으로 노무현과 김대중을 좋아했다. 심지어 박정희(0.69)와 노무현(0.61)의 호감 수치도 비슷하고, 3순위인 김대중(0.54)과 박정희의 호감 수치도 별로 차이가 안 난다.
‘경제성장’과 ‘탈권위주의’ 동시에 중시하는 보수층 늘어나
박정희는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노무현과 김대중은 탈권위주의와 민주주의를 상징한다. 뉴 보수는 한마디로 ‘민주 보수’다.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경제성장을 중시하되 민주주의와 탈권위주의를 중시하는 보수’다. 이들의 다른 표현은 ‘중도에 가까운 우파’다.
경제성장을 중시하되, 민주주의와 복지국가를 사랑하는 ‘민주 보수’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수’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들은 노무현, 김대중을 박근혜와 이명박보다 좋아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전 위원장이 대구를 많이 방문하고, 박근혜를 많이 만날수록 ‘민주 보수’ 유권자들과는 더 멀어질 것이다.
반대로 윤 대통령과 한 전 위원장이 ‘광주’를 더 많이 방문하고, 민주화 세력과 복지국가의 역사적 업적을 더 적극적으로 인정할수록 ‘민주 보수’ 유권자들과 중도층을 자신들의 편으로 만들게 될 것이다. 한동훈 전 위원장이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보수’를 사랑하려거든, 역사의 왼쪽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