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가 몬 ‘살인 택시’ 트렁크 시신의 비밀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청주 일대 밤에 술 취한 여성 노려 돈 빼앗고 성폭행 살인 트렁크에 시신 실은 채 태연하게 손님들 태우며 범행
1969년 충북에서 태어난 안남기는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보냈다. 가난에 찌든 가정에서 중학교만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플라스틱 공장과 대리운전 기사 등을 전전했다. 군대에 가기 전에는 경기도 안산에서 2년간 거주했다. 이때 만난 한 여성과 결혼해 아들 셋도 낳았다. 안씨는 청주로 내려와 택시운전을 시작했고, 이때부터 범죄의 늪에 깊이 빠져든다.
2000년 9월24일 새벽 4시쯤 상당구 내덕동에서 술에 취한 연아무개씨(여·19)가 택시에 탑승하자 흉기로 위협해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친다. 이 사건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고, 아내와도 이혼한다. 2년6개월을 복역하고 출소 후에는 청주시 흥덕구의 한 빌라에서 생활했다. 2004년 안남기는 택시운전면허 자격을 취득해 택시를 운행한다. 그는 범죄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성적 욕구가 생기거나 돈이 떨어지면 또다시 밤 시간대에 술 취한 여성을 대상으로 범행을 이어갔다.
현금인출기 CCTV에 포착된 용의자
2004년 9월말 밤 범행 대상을 물색하던 안남기는 청주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전아무개씨(여·24)를 태운다. 그는 흉기로 위협해 전씨를 자신의 집으로 끌고 간다. 손과 발을 노끈으로 결박하고 전씨가 소지하고 있던 현금 등을 빼앗았다. 겁에 질린 전씨가 “살려 달라”고 애원했으나 성폭행하고 목 졸라 살해한다. 시신은 침대 커버에 두 번 감싼 후 택시 트렁크에 싣고 다니다가 인적이 드문 곳에 유기했다. 전씨의 시신은 10월15일 오전 7시45분쯤 충남 연기군 전동면 송성리 1번 국도 개미고개 도로변에서 발견된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전씨가 청주시외버스터미널 화장실에 들른 것을 마지막으로 행적이 끊긴 사실을 확인한다. 그러나 수사는 용의자를 좁히지 못한 채 제자리만 맴돌며 장기화된다. 안남기는 전씨를 살해한 후 택시회사를 나와 2005년 11월까지 대리운전 기사로 일했다. 이어 이듬해 11월까지 1년 동안 셔틀버스 운전기사로 근무했다. 2007년 1월에 다시 택시회사에 들어간 안남기는 또다시 같은 범행에 나선다.
2009년 9월21일 밤 11시쯤 안남기는 청주 상당구 용암동의 한 사거리에서 김아무개씨(여·41)를 태운다. 김씨는 직장 동료들과 회식을 하고 술집을 나선 길이었다. 안남기는 김씨가 술기운에 잠들자 인적이 드문 골목에 차를 세운 후 성폭행했다. 손발은 청테이프로 결박하고 김씨를 위협해 신용카드 비밀번호를 알아낸다. 그런 다음 김씨의 얼굴을 청테이프로 감은 후 비닐봉지를 머리에 씌워 트렁크에 실었다. 결국 김씨는 질식해 숨진다. 다음 날 아침 안남기는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의 한 편의점 현금인출기에서 김씨에게 빼앗은 카드로 현금 22만원을 인출한다. 김씨의 시신은 무심천 장평교 아래 하천에 유기했다.
이틀 후인 9월23일 김씨의 남편은 아내가 귀가하지 않고 연락마저 두절되자 경찰에 미귀가 신고를 한다. 김씨의 회사 동료는 “회식을 마치고 택시 타고 가는 걸 봤다”고 증언했다. 실종 닷새 후인 26일 오후 청주 무심천에서 낚시하던 낚시꾼이 장평교 아래에서 김씨의 시신을 발견해 신고한다. 경찰은 살인 사건으로 전환하고, 김씨의 금융거래 내역을 확인했더니 현금인출기에서 돈이 빠져나간 내역이 나왔다. 해당 편의점 폐쇄회로(CC)TV에는 실종 다음 날 아침 7시쯤 야구모자를 쓰고 돈을 인출하는 남성의 모습이 포착됐다. 용의자는 보통 체격으로 짙은 색 점퍼를 입고, 베이지색 계열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있었다. 경찰은 신고보상금 500만원을 걸고 현금을 인출하는 모습을 담은 전단지를 제작해 배포했으나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2차 살인이 일어난 지 넉 달 후인 2010년 1월20일 새벽 안남기는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에서 이아무개씨(여·33)를 택시에 태운다. 술에 취한 이씨가 잠들자 주택가 골목에 택시를 세운 후 테이프로 손발을 묶고 10만원짜리 수표 1장과 현금 6만원, 신용카드를 빼앗았다. 안남기가 성폭행하려고 하자 이씨는 기지를 발휘한다. 그는 “지금 임신 중인데 하혈이 시작된 것 같다. 유산할 것 같으니 병원 앞에 내려 달라”고 애원했다. 안남기는 갑자기 동정심이 들었던지 이씨의 얼굴에 비닐봉투를 씌운 채 산부인과 앞에 내려놓고 도주했다. 이씨는 순간적인 기지 덕분에 성폭행을 모면하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약 두 달 후인 3월26일 금요일 밤 11시쯤 안남기는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의 한 쇼핑센터 앞에서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 이때 친구 생일파티를 마치고 나오던 송아무개씨(여·24)가 안남기의 택시에 올라탄다. 송씨는 국립대학 졸업 후 관공서 인턴사원으로 취업해 첫 주를 보내고, 친구와 만나 술을 마신 후 귀가하던 길이었다. 안남기는 뒷좌석에 탄 송씨에게 “손님, 학생이세요, 직장인이세요?”라고 물었다. 학생이면 돈이 없을 것으로 판단해 범행 대상에서 제외하고, 직장인이라면 범행할 생각이었다. 송씨가 “얼마 전에 인턴으로 취업했어요”라고 답하자 범행 대상으로 점찍는다.
미제사건 용의자 DNA와 일치해 덜미
안남기는 송씨를 태우고 인적이 드문 대성동 아파트 단지 뒷골목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미리 준비한 흉기를 꺼내 위협해 현금 7000원과 신용카드 등이 들어있는 손가방을 강제로 빼앗았다. 카드 비밀번호를 알아낸 후 손발을 결박하고 입을 포함해 얼굴을 청테이프로 여러 차례 감았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송씨의 상의 일부를 벗겨 추행한 후 트렁크에 가뒀다. 빼앗은 카드로 현금지급기에서 돈을 인출하려고 했으나 비밀번호 오류로 실패한다. 안남기는 이것을 따지기 위해 송씨의 입을 막았던 테이프를 벗겨냈지만 이미 질식해 숨진 후였다.
안남기는 송씨의 시신을 트렁크에 그대로 둔 채 집으로 가서 잠을 잤다. 다음 날 오후 2시부터 밤 11시까지 평상시처럼 택시영업을 하며 손님을 태웠다. 이때까지 송씨의 시신은 트렁크에 있었다. 3월28일 일요일 새벽 안남기는 대전 대덕산업단지로 이동해 공터에 세워져 있던 대형 트럭과 담벼락 사이에 택시를 정차한다. 그는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트렁크를 열고 시신을 유기한 후 황급히 차를 몰고 떠났다. 이 모습은 주변 CCTV에 고스란히 찍힌다. 안남기는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이날 오전 10시쯤 자전거를 타고 마트로 가던 외국인 노동자는 바닥에 있는 심상치 않은 물체를 발견한다. 언뜻 보기에 쓰러진 사람 같았다. 점점 물체 곁으로 다가가던 그는 이내 소스라치게 놀란다. 한 여성이 등 뒤로 손이 묶여 있고, 양쪽 발목도 노끈으로 결박된 채 죽어있었던 것이다. 시신은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있는 자세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지문조회를 통해 시신이 청주에서 실종된 송씨라는 것을 확인한다. 현장에 설치된 CCTV에 시신을 유기하는 용의자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차종은 NF쏘나타였고, 청주 지역 택시라는 것도 파악됐다.
대덕산업단지에서 청주로 가려면 신탄진 나들목(IC)을 거쳐 현도교를 넘어가야 한다. 경찰은 이곳에 설치된 CCTV를 분석해 이날 오전 1시 이후 다리를 지나간 택시가 모두 67대라는 것을 확인한다. 이 중 송씨 시신 유기장소에 찍힌 용의차량과 동일한 차종의 택시가 한 대 있었다. 경찰은 이 택시 운전사인 안남기를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하고 그의 집을 급습했다. 안남기는 집에 있다가 경찰에 체포됐고, 저항은 없었다. 그가 몰던 택시 운전석에서 범행에 사용된 식칼 등이 나왔고, 트렁크 매트에서는 송씨의 혈흔이 검출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송씨의 가슴에서 발견된 타액과 안씨의 DNA가 일치했고, 안남기는 범행 일체를 자백한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경찰은 안남기의 여죄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범죄 데이터 분석을 통해 DNA를 비교했다. 그랬더니 청주 지역 미제사건인 2004년 9월 전씨 사건과 2009년 9월 김씨 살인 사건의 용의자 DNA와 안남기의 것이 일치했다. 이로써 청주 일대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안남기의 연쇄살인 행각도 마침표를 찍는다.
경찰은 안남기를 상대로 사이코패스 검사를 진행했으나 사이코패스로 분류되는 25점(40점 만점)을 넘지는 않았다. 안남기는 살인과 강간, 시신유기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그는 재판에서 “살인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법원은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했으나,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아울러 20년간 전자발찌 부착을 명령했다. 안씨는 현재 청주교도소에서 15년째 복역 중이다.
■청주 40대 주부 실종 사건과 ‘판박이’ 수법에 경찰 주목
연쇄살인범은 일정 정도의 범죄 패턴에 따라 움직인다. 범행 대상, 범행 시간, 범행 주기, 범행 수법을 답습한다. 안남기의 범행을 보면 밤 시간대에 주로 술에 취한 여성을 노렸고, 흉기로 위협해 결박한 후 성폭행하거나 돈을 빼앗는 등 같은 유형이 반복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교도소에서 나온 후 1차 범행인 2004년 9월 20대 전씨를 살해한 후 2차 범행인 2009년 9월 40대인 김씨를 살해하기까지 5년 동안의 공백이 있다는 점이다.
안남기는 김씨를 살해한 후 4개월 만인 2010년 1월 흥덕구 개신동에서 이씨를 위협해 돈을 빼앗으며 3차 범행에 나섰고, 다시 2개월 후인 같은 해 3월 같은 수법으로 송씨를 살해하면서 4차 범행을 저지른다. 출소 후 1차 범행까지 채 1년도 걸리지 않았다. 더욱이 2·3·4차 범행이 6개월 동안에 이뤄진 것을 감안하면 이전 5년의 공백 기간에 추가 범행이 있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었다. 경찰 프로파일러들 역시 안남기의 ‘심리적 냉각기’가 너무 길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공백기에 청주에서 미해결 사건이 하나 있었다. 수법이 안남기와 아주 비슷했다. 경찰은 이 점을 주목했다.
2005년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36번 국도에 위치한 버스정류장에서 주부 조상묵씨(48)가 실종된다. 조씨는 이날 부녀회원들끼리 회식을 한 후 오후 8시10분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사라졌다. 범인은 택시운전사일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그런데 조씨가 실종된 당일 그의 카드에서 50만원의 현금이 인출된다. 돈을 인출한 것은 후드티를 푹 눌러쓴 신원 불상의 남자였다. 다음 날 오전에도 두 번에 걸쳐 조씨의 카드로 9만원이 인출됐다. 밤 시간에 술 취한 여성을 납치해 카드로 돈을 인출하는 것이 안남기의 범행 수법과 아주 비슷했다. 다만 이 사건은 조씨의 시신 등이 발견되지 않아 현재까지 미제로 남아있다.
경찰은 안남기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관련 여부를 추궁했으나 그는 강력히 부인했다. 이전에도 안남기는 경찰이 증거를 확보한 후 추궁하는 사건 외에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결국 조씨를 납치해 그의 카드로 돈을 인출한 남성이 누구였는지는 지금도 여전히 의문점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