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은 환자 몫”…휴진 혼란 없지만 등 터진 환자·시민들 ‘한숨’

[르포] 상당수 병원 휴진·진료축소 광주 의료 현장 가보니 동네병원마저 ‘휴진’…맘카페 “동참 의원 불매” 여론 폭발도 의정 갈등 장기화에 애타는 시민들 “환자 우선 생각해야”

2024-06-18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의료계가 집단 휴진에 돌입한 18일 오전 11시쯤 전남대학교병원 본관 1층 진료접수 창구. 휴진의 여파인 듯 평소보다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각 진료과별로 마련된 대기실마다 5~6여명의 환자가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경과 등 일부 진료과는 진료를 완전히 중단한 듯 의사와 환자 없이 간호사만 남아 텅 빈 진료실을 지켰다.

의료계가 집단 휴진에 돌입한 18일 오전, 전남대학교병원 본관 1층 진료접수 창구. 휴진의 영향인 듯 평소보다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시사저널 정성환

이날 병원에선 평소와 달리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을 찾아 볼 수는 생경한 풍경도 연출됐다. 대신 환자와 보호자들만 의료진을 찾아 바쁘게 돌아다니는 모습이었다. 평소 같으면 입원 환자들과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 보호자들로 북적였던 병원 입구 벤치도 뜸했고, 링거를 꽂은 채 산책하던 환자들도 도통 보이질 않았다.

길 건너편 조선대병원 진료 접수창구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곳을 찾은 환자 가족들의 표정에서 조바심이 묻어난 반면 창구는 대기 줄이 없어 차분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진료 혼란도 없었다. 대부분의 교수는 응급 및 중환자 수술과 입원환자 진료 등에 참여하고 있어서다. 휴진에 불참한 것으로 보이는 일부 의료진들이 모여 얘기를 나누다가 환자 보호자들의 진료 신청을 도와주는 모습도 포착됐다. 

전남대병원은 이날 진료가 예정된 교수 87명 중 30%에 달하는 26명이 휴진했다. 조선대병원에서도 외래 진료를 계획했던 교수 62명 가운데 37.5%(24명)가 오전 진료를 중단했다. 다만, 조선대병원 휴진 교수 24명 중 절반 정도인 12명은 이날 오후에 진료에 복귀할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가 집단 휴진에 돌입한 18일 오전, 전남대학교병원 본관 1층 진료접수 창구. 이날은 유달리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병원은 평소와 달리 환자와 보호자들만 의료진 찾아 바쁘게 돌아다니는 모습이었다. ⓒ시사저널 정성환

다행히 상급 병원들은 예약 환자들에게 전날까지 미리 문자 등을 통해 일정 조정을 알려 휴진으로 인한 큰 혼란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 전남대병원 관계자는 “오늘 휴진을 하는 교수들은 미리 환자들에게 연락해 진료 날짜를 조정했다”며 “응급 및 중환자 수술은 진행되고 있는 만큼 큰 혼선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개원의 한두 명이 진료를 보는 소규모 동네 병원도 집단 휴진으로 인한 의료 공백은 크지 않았다. 광주 지역 전체 의료기관 1053곳 중 11.7%에 해당하는 124곳이 이날 진료를 쉬겠다고 보건당국에 신고했지만, 완전히 문을 닫은 곳은 찾기 어려웠다.

오전 휴진하고 오후에 문을 여는 등 진료 시간을 축소하거나 여러 명의 의료진 중 일부만 휴진하는 방법 등으로 진료를 이어갔다. 휴진에 대한 시민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진료 시간을 축소한 일부 병원에서는 ‘의료기기 수리’ 때문이라거나 ‘원장 개인 일정’ 때문이라고 안내하는 곳도 있었다.

18일 오전, 조선대학교병원 1층 진료접수 창구 앞. 휴진에 불참한 것으로 보이는 일부 의료진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비록 휴진 혼란은 적었지만 의정 갈등 장기화로 등 터진 셈인 환자와 시민들은 불만을 표했다. 전남대병원에서 만난 한 환자는 “의사들도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환자를 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의술을 펴는 의료인들이 이런 방식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전남대 1층 로비에는 ‘백년을 이어 온 의술’ ‘천년을 이어갈 희망’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현수막이 나란히 걸려있다. 

보호자로 이곳을 찾은 시민 김 아무개(65)씨는 “국민 상당수가 찬성하는 의대 증원을 의사들만 반대하고 있는데도 전공의 집단사직에 이어 의대 교수와 개원의들이 집단휴진에 들어갔다”며 “휴진 참여 규모와 관계없이 넉 달 가까이 불안과 고통 속에 참고 버텨온 환자와 시민들은 그저 절망스러울 뿐”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휴진 참여 병원이 적기는 하지만, 필수 의료에 속하는 소아청소년과 병원이 문을 닫으면서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주민들이 불편함 또는 서운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평소에도 진료가 어려운 소아청소년과의 휴진 소식에 지역 맘카페 등에서는 아쉽다는 성토가 쏟아졌다. 

18일 오전, 조선대병원 정문 출입문에 전공의 진료 공백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시사저널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집단휴진에 동참한 병원에는 가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광주 맘카페 회원은 “개인병원이든 대학병원이든 집단휴진에 참여하는 병원이 (어디인지) 공지가 있느냐”며 “이런 곳은 보이콧하고 싶다”고 말했다.

네티즌들도 “아프면 대체 어느 병원에 가야 하느냐”며 “불편함은 모두 환자 몫”이라고 답답해했다. 또 ‘의사 휴진은 중증 환자들에게 사형선고와 다름없다’는 한 의사의 언론 기고 글을 공유하거나, ‘휴진하는 병원들을 공유해 앞으로 이용하지 않아야 한다’며 불매를 언급하기도 했다.

광주시와 전남도는 이날 오전 9시를 기해 전체 병·의원에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고, 동네 병원의 진료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전북자치도 또한 정부 지침에 따라 개원의 휴진 여부를 파악하며 집단휴진에 대응하고 있다. 전북도 관계자는 “전화를 받지 않거나 휴진하는 병원이 많으면 현장 점검 등을 나설 예정”이라며 “휴진에 따른 불편을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