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文은 회고록 바라지 않았다…한반도 외교·안보 상황에 심각성 느껴 메시지 낸 것”

[인터뷰] ‘文의 복심’ 윤건영 의원이 밝히는 문재인 회고록의 진의 “현 정부 오로지 명분만 내세우면서 실익 없는 ‘공갈빵’ 외교만 펼쳐” “선진국 되려면 외교 다변화는 필수…어렵게 구축한 중·러 관계 무너질 위기” “대결은 대결을 불러…한반도 평화 지키기 위해 서로 자제할 필요 있어”

2024-06-12     박나영·박성의 기자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절치부심, 우리 운명을 남의 손에 맡기지 않겠다는 절치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조건 속에서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될 절치부심입니다.”

5월20일 발간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첫 외교·안보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에 담긴 핵심 내용 중 하나다. 문 전 대통령은 이 책 표제에 ‘회고록’이 붙는 걸 탐탁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지나간 일을 돌이켜 기록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상황에 심각성을 느끼고 현 정부와 국민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의도가 컸다. 이에 책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도보다리 회동, 한미 정상회담, 남·북·미 판문점 회동 등 문재인 정부의 외교사적 변곡점을 조명하는 동시에 국제 및 남북 정세에 대한 고민과 앞으로 있을 도전과 변화에 대한 조언을 함께 담았다. 

책을 펴낸 의도와 달리 여권의 김정숙 여사 인도 순방에 대한 의혹 제기로 여야 간 공방이 커지면서 끝내 문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서 관련 논란을 해명하기에 이르렀다. 당초 문 전 대통령은 책을 통해 어떤 생각과 메시지를 밝히고 싶었던 걸까. 시사저널은 6월7일 ‘문재인의 복심’으로 불리는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만나 이 논란에 가려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문 전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물었다.

윤 의원은 적임자였다.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그는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그중에서도 특히 남북 관계를 가장 잘 복기하고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대북특사와 남북정상회담에서 활약한 그는 문 전 대통령 말고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가장 많이 만나고 가장 많이 이야기해본 인물이다. 아울러 그는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첫 국정상황실장으로 972일간 일했다. 윤 의원은 지금도 문 전 대통령과 가장 많은 소통을 하는 최측근이다. 문재인의 생각을 복심의 입을 통해 내밀하게 들여다보고자 했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월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이 질문부터 하자. 문 전 대통령이 외교·안보 관련 회고록을 펴낸 계기는 무엇인가.
“문 전 대통령은 ‘회고록’이라는 제목을 쓰는 걸 저어하셨다. 대통령께서는 한반도의 외교와 안보 상황이 정말 심각하다고 느끼셔서 관련해서 말씀을 하시고 싶었던 거다.”
 
하나씩 살펴보자. 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윤석열 정부의 ‘편중외교’를 비판하고 다자외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좋은 말로는 가치외교, 거칠게 표현하면 아무런 실익이 없는 ‘공갈빵’ 외교다. (우리에게는) 실질적으로 한미동맹이 제일 중요하다. 일본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그러나 선진국이 되려면 외교 다변화가 필요하다. 전임 정부들이 신남방·신북방 정책을 과제로 제시하고 집중했던 이유다. 현 정부는 오로지 명분만 내세우면서 (필요한) 말도 못한 채 퍼주는 외교를 하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은 한‧미‧일 협력 강화를 강조하면서도 대중 관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대한민국 외교는 한미 동맹을 근간으로 한·미·일 협력 관계를 유기적으로 형성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한·미·일 협력관계가 공고화될수록 북·중·러라는 삼각축도 단단해진다. 그래서 역대 정부는 보수 컬러든 진보 컬러든 한미 동맹을 강화하면서 북·중·러가 뭉치지 않도록 그 틈을 뒤집고 들어가는 북방정책을 추진해왔다. 한미 동맹을 더 단단히 하기 위해 북방 정책이라는 키(key)를 쓴 거다. 지금은 북방정책이 완전히 사라지고 한·미·일 협력 관계만 남아 있다. 더 나아가 한·미·일 군사동맹까지 맺는 것은 동북아 전체가 화약고가 되는 길이다. 어렵게 구축한 러시아, 중국과의 관계가 무너질 위기다. 빨리 정신 차려야 한다.”

문 전 대통령은 외교·안보 정책을 ‘이어달리기’라고 표현했다. 현 정부의 이어달리기를 평가한다면.
“외교·안보는 역대 정부에서 이어달리기를 나름 충실하게 해왔던 영역이다. 사회·경제 이슈는 진보·보수 정부에 따라 정책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외교·안보는 진보·보수 정책이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의 외교·안보 정책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과 같다. 그런데 현 정부는 너무나 다른 궤도로 달려가고 있다. 전임 정부를 지우려고 하는데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문 전 대통령이 급작스럽게 집권을 시작한 시기는 한일협정 관련 합의로 시끄러울 때다. 문 전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 시절 재임한 윤병세 외교장관을 불러 합의 과정이 어떠했는지 등을 소상히 들었다. 이후 취할 건 취하고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건 못하는 걸로 정리했다. 이것이 이어달리기다. 현 정부가 조금이라도 외교·안보 관련 정상적인 정책을 펴려면 전 정부의 국방·외교부 장관, 국정원장 정도는 만나야 한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 의원 책장에 2018년 9월 백두산 천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찍은 사진이 놓여 있다. Ⓒ박은숙 기자

북방외교의 중요성을 외교 관계자들은 알고 있을텐데.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평생 검사로 일한 대통령은 외교·안보에 대해 모를 수 있다. 그러면 주변에 외교·안보와 관련된 능력 있는 사람을 둬야 하는데 그러지를 않는다.”

문재인 정부 남북 정책의 공과는 무엇이었다고 보나.
“문 전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인수위도 없이 바로 대통령이 됐다. 당시는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서로 누구의 핵 버튼 크기가 더 크냐를 두고 자랑하던 시기다. 그런 위기에 문 전 대통령은 평창 동계올림픽, 싱가포르 회담, 하노이 회담 등을 통해 한반도의 긴장과 갈등을 평화로 풀어내려 노력했다. 그 과정은 매우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다만 비핵화라는 구체적인 성과를 끄집어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점은) 아쉽다. 특히 하노이 노딜 이후 코로나19로 남북 관계와 북미회담이 막혔던 건 대단히 아쉽다.”

‘하노이 노딜’이라는 결과는 충격이었다.
“당시 북한은 영변을 내놓고 비핵화 과정으로 들어가자고 했고, 미국은 그것만으론 부족하다는 입장이었다. 당시 미국은 국내 이슈가 굉장히 많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빅딜, 스몰딜, 노딜 중 노딜이 당시 국내 정치에 더 합당하다고 판단했다는 게 저희 분석이다. 차려놓은 밥상을 (미국이) 걷어차버리면서 한국이 피해를 봤다. 이후 북미 관계는 비핵화 프로세스가 어긋나 잘 안 됐다 하더라도 남북 관계는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등 우리가 끌고 갈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 끌고 갔더라면 일종의 범퍼 기능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 의원 탁자에 놓인 문재인 전 대통령이 최근 출간한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

‘하노이 노딜’ 전 문 전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서로 신뢰가 있었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있어 언급하기 조심스러운데 문 전 대통령과의 관계는 굉장히 좋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여러 차례 문 전 대통령에게 ‘수석 협상가’라고 말하면서 한반도 문제에 대해 ‘당신이 역할을 해야 된다’라고 얘기했다. ‘립서비스’가 아니라 미국 입장에서도 한국이 주도권을 쥐는 게 미국 이익에 부합했다고 본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바이든과 트럼프 중 어느 대통령이 되는 게 한국에 유리할까. 
“미국은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한반도 전략은 똑같다. 미국 국익 우선이다. 어떤 대통령이든 철저히 자국의 이익에 맞게 일한다. 이것이 한반도 문제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쥐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 때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개입하는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세웠다. 현 정부는 운전할 능력이 없어 운전대를 일본이나 미국에 넘겨버리려 한다. 심지어 조수석에도 안 앉고 뒷좌석에 타려고 한다. 다른 나라에 의존할수록 우리 결정권은 없어진다.”

최근 남북 갈등도 확산 일로다. ‘대북 전단’이 ‘오물 풍선’으로, 그게 다시 ‘대북확성기 재개’로 이어지고 있다. 대북정책의 해법은 무엇일까.
“대결은 대결을 부른다. 우리가 대북 전단을 날렸을 경우에 접경지역 주민들이 피해를 받을 수 있다. 이로 인해 한반도에 평화가 깨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한반도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서로 자제할 필요가 있다. 남북 간 소통과 합의를 통해 풀어가야지, 강대강 대결로 가면 손해가 클 것이다.”